로봇손이 펄펄 끓는 물에서 유리컵을 집어 올린다. 로봇 손가락은 사람 피부처럼 부드러운 고분자 재질이어서 자칫 눌어붙을 수 있다. 그런데도 아무 변화가 없다. 손가락 표면에서 흐르는 물이 온도가 높아지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로봇이나 스마트폰이 사람처럼 땀을 흘려 열을 조절할 수 있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사람이 사냥감을 쫓아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동물보다 땀을 통해 열을 잘 조절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동물이 땀을 흘리는 방식을 모방해 로봇이나 전자제품의 열을 효과적으로 식히는 기술을 잇따라 개발했다.

뜨거운 물체 집으면 땀 흘리는 로봇손

미국 코넬대의 로버트 셰퍼드 교수 연구진은 30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땀 흘리는 소프트 로봇손을 발표했다. 소프트 로봇손은 부드러운 재질로 만들어 부서지기 쉬운 물체나 생물을 손상 없이 잡을 수 있다. 로봇이 사람과 같이 생활하려면 필수적인 기술이다. 코넬대 연구진은 소프트 로봇손에 땀을 흘리는 기능을 추가해 사람이 잡지 못하는 뜨거운 물체도 다룰 수 있도록 했다. 연구진은 새로 만든 로봇손이 기존 로봇손보다 냉각 효과가 6배 높아졌다고 밝혔다.

로봇손의 재질은 하이드로겔이다. 묵이나 젤리처럼 물을 함유해 말랑말랑한 물질이다. 연구진은 로봇 손가락의 하이드로겔 표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구멍들을 냈다. 섭씨 40도 이상이 되면 구멍이 팽창하면서 열린다. 이러면 구멍 아래 연결된 관에서 물이 스며 올라와 표면으로 흐른다. 사람이 땀샘으로 땀을 흘리는 것과 같은 원리다. 연구진은 로봇손의 냉각 효과는 심지어 사람이나 말보다 3배나 뛰어나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같은 방식의 냉각 장치가 개발됐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문승언 박사 연구진은 지난 9일 사람 피부의 땀샘을 흉내 낸 방열(放熱) 소자를 개발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트 머티리얼스'에 실렸다.

방열소자는 가로세로 3㎝ 크기이며, 그 안에 인공 땀샘 2만개가 들어 있다. 온도가 사람의 피부 표면과 비슷한 31도보다 올라가면 땀샘에서 하이드로겔로 만든 밸브 구조가 물을 배출하고 수축한다. 온도가 낮으면 다시 물을 머금고 팽창하면서 닫힌다. 문승언 박사는 "향후 스마트폰 표면에 부착해 발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온도 변화에 따라 전기를 생산하는 열전(熱電)소자와 결합해 인공 피부 같은 휘는 소자의 전원으로도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본 연구진은 사람 모양 로봇에서도 땀으로 열을 식히는 효과를 확인했다. 도쿄대 아사노 유키 교수 연구진은 지난 2017년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키 1.7m, 무게 56㎏의 인간형 로봇 겐고로를 발표했다. 겐고로는 온몸 관절에 108개의 모터가 있어 사람처럼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할 수 있다. 문제는 모터가 워낙 많아 열이 많이 난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골격 표면에 미세한 틈을 만들고 그 사이로 물이 흘러나와 증발하도록 해서 열을 식혔다.

공기 중 수분 흡수해 땀으로 활용

냉각수를 자체 조달하는 인공 땀샘도 나왔다. 코넬대의 하이드로겔 로봇손은 한 번 땀이 증발하면 내부로 물을 재공급할 방법이 없다. 중국 과학자들은 공기에서 물을 뽑아내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상하이 자오퉁대의 루주 왕 교수 연구진은 지난 22일 셀 자매지 '줄'에 금속유기구조체(MOF)란 물질을 이용해 전자기기용 방열 코팅재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실험에서 방열 박막이 없는 표면은 5.2분 만에 60도까지 온도가 올라갔지만 방열 박막이 있는 표면은 20분이 돼도 같은 온도에 이르지 않았다.

MOF는 일종의 금속 스펀지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구멍 덕분에 각설탕 크기에 축구장 6배 정도의 표면적을 갖고 있다. 과학자들은 금속유기구조체로 사막에서 물을 뽑는 장치를 개발했다. 스펀지가 머금었던 수분이 낮에 온도가 높아지면서 수증기로 방출될 때 응축기로 붙잡아 물로 바꾸는 방식이다. 중국 연구진은 같은 방식으로 MOF 박막으로 공기에서 수분을 흡수했다가 열이 나면 수증기를 방출해 열을 식히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