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개봉한 영화 '스파이더맨: 파프롬홈'에서 유럽 여행 중인 주인공 피터 파커는 숨진 토니 스타크가 남긴 선글라스를 건네받는다. 인공지능(AI)과 연결된 증강현실(AR) 안경 '이디스'다. 이디스는 홍채 인식으로 피터가 주인임을 확인한 뒤 음성 지시대로 피터 친구들의 스마트폰을 해킹해 문자 메시지 내용을 피터가 볼 수 있게 안경 렌즈 화면에 올려준다.

아직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글로벌 IT(정보 기술) 기업들은 이런 AR 안경 개발에 이미 뛰어들었다. 폐쇄된 가상 공간에서 컴퓨터그래픽에 의존하는 VR(가상현실)과 달리, AR은 기존 현실 세계에 가상 사물·정보를 합성하는 식인 만큼 잘 활용한다면 서비스 확장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구글·MS·페북·애플 등 도전

지난 2014년 구글이 '구글 글라스'를 내놨을 때만 해도 금방 AR 안경 시대가 올 분위기였다. 구글 글라스는 외관이 일반 안경과 거의 비슷했다. 오른쪽 안경 렌즈 앞에 AR 영상을 볼 수 있는 초소형 프로젝터와 디스플레이를 별도로 부착했다. 2015년 이 기기가 몰카에 악용될 수 있다는 사생활 침해 논란 때문에 생산이 중단됐고, 구글은 지난해 산업 현장용인 '구글 글라스 에디션2'를 다시 내놨다. 가령 고장난 공장 내 기계를 고치는 작업을 하면서 AR 안경의 렌즈로 3D(3차원) 기계 설계도를 함께 볼 수 있는 식이다. 구글이 한 농기계 업체에서 테스트해본 결과, AR 안경으로 제품 수리 시간이 종전보다 25% 줄었다.

①한 남성이 '구글 글라스 에디션2'를 쓰고 농기계를 바라보는 모습. 농기계 관련 정보가 렌즈 앞에 제공된다. 사용자는 터치패드(안경테)에 손가락을 대고 정보 화면을 움직이거나 확대할 수 있다. ②'엔리얼 라이트', ③'홀로렌즈2', ④'매직리프 원'.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 2016년 AR 안경인 '홀로렌즈'를 출시한 데 이어, 지난해 '홀로렌즈2'를 내놨다. 스마트폰과 연동하지 않아도 작동되는 독립형 기기다. 대신 자체 소형 컴퓨터를 탑재한 만큼 부피가 크다. 외관도 머리에 쓰는 헤드셋에 안경이 달려있는 모양이다.

미국 매직리프는 2018년 수영 고글처럼 생긴 '매직리프 원'을 선보였다. 이 역시 스마트폰과 연동할 필요가 없는 독립형 기기다. 대신 엔비디아의 GPU가 장착된 '라이트팩'(소형 컴퓨터)와 연결해야 된다. 사용자는 저장 공간이 128GB(기가바이트)에 달하는 라이트팩을 허리춤에 달고 다닐 수 있다.

현재 '오리온'이란 사업명으로 AR 안경 개발 작업을 진행 중인 페이스북은 오는 2023년쯤 AR 안경을 내놓을 것으로 전해졌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는 AR 안경이 스마트폰을 대체할 것으로 보고있다.

애플도 2023년 AR안경 출시를 위해 준비 중이라고 외신들이 전하고 있다. 온종일 편하게 쓰고 돌아다닐 수 있는 AR 안경을 제작하는 것이 목표다.

◇일부는 스마트폰 부속기기 수준

관건은 일상생활에서 불편함 없이 쓸 수 있도록 실용성을 높이는 일이다. 스마트폰과 연동이 필요 없는 독립형 기기는 소형 컴퓨터가 들어가기 때문에 일반 안경보다 휠씬 무겁고 부피가 크다. 가령 매직리프원은 345g 무게의 안경 외에도 허리춤에 달고 다녀야 하는 소형 컴퓨터가 415g이다.

지난 10일(현지 시각) 영국 BBC는 "중국 엔리얼의 '엔리얼 라이트'가 기존 AR 안경의 단점들을 나름 극복해냈다"고 전했다. 이 제품은 무게가 88g에 해상도도 1920×1080이다. 하지만 무게를 줄인 대신 스마트폰과 유선으로 연결되지 않고선 AR 콘텐츠를 제대로 쓸 수 없다. 스마트폰의 부속 기기인 셈이다.

아마존이 지난해 9월 미국 시애틀에서 공개한 '에코 프레임'은 무게도 31g에 불과하고, 아마존의 음성 인식 비서인 '알렉사' 이용도 가능하다. 마이크와 스피커가 탑재돼 있어 사용자는 음성명령으로 일정 확인을 지시하거나 음원 앱을 켜도록 시킬 수 있다. 다만 이 안경만으론 AR 콘텐츠를 볼 수 없다. 중국 화웨이가 지난해 패션업체인 젠틀몬스터와 협업해 공개한 스마트 안경도 상황이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