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철 테크 팀장

20년 전 인기 댄스 그룹이었던 태사자의 김형준씨가 최근 TV 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등장했습니다. "나는 어른들의 산타"라는 그의 말은 인터넷에서 회자됐습니다. 한때 인기 가수였던 그는 현재 쿠팡맨(쿠팡플렉스)입니다. 뭐든 주문만 하면 하루 만에 현관문 앞에 갖다놓으니, 쿠팡맨은 진짜 어른들의 산타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테크를 취재하는 직업병 탓인지, 그보다는 "밤낮없이 일할 경우 하루 최대 200개까지 배송한 적이 있다"는 그의 말이 뇌리에 남았습니다. 한 달 전 만난 김봉진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운영사) 창업자의 "앞으로 이륜(二輪·두 바퀴)이 사륜(四輪·네 바퀴)을 넘어설 것"이라는 말과 오버랩됐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사실 미국 아마존이나 국내 쿠팡과 같은 이커머스 업체의 혁신엔 물류가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기술이야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구매한 물건을 당일 갖다주는 건, 훨씬 복잡한 물류 체인의 혁신이 필요합니다. 이커머스는 통상 소형 트럭, 그러니까 사륜구동입니다. 주요 거점 창고마다 소비자가 주문할 가능성이 큰 물건을 예측해 갖다놓고, 숱한 주문을 취합해 배송 동선을 짜고, 트럭이 돕니다. 그래야 하루에 수백개씩 배달이 가능합니다. 쿠팡이라는 신생 업체가 신세계·롯데·G마켓까지 한꺼번에 흔드는 배경엔 이런 물류의 힘이 있습니다.

여기에 배민의 김봉진 대표는 반론을 제기합니다. "검색에 이은 이커머스의 진화가 있었고, 다음 진화는 푸드 이커머스"라는 것입니다. 이런 푸드 이커머스의 물류는 이륜 배달입니다. 예컨대 이커머스는 특정 시간에 주문이 몰릴 일도 없고, 하루 이틀 내 배달하면 됩니다. 빨라도 한밤중 주문한걸 다음날 새벽에 갖다줍니다. 배민의 강점인 음식 배달은 식사 시간대 주문이 폭주하는 데다, 주문을 받으면 곧바로 갖다 줘야 합니다. 즉시성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음식 배달 시장을 접수한 배민은 이번엔 '온라인 배달'에도 도전합니다. 'B마트'라는 서비스로, 스마트폰 앱에서 편의점 물건을 시키면, 이걸 사서 갖다주는 식입니다. B마트의 선전 문구는 "배달이 내일 오는 거 봤어요? 중요한 건 타이밍"입니다.

오토바이로 음식 배달하는 '배민라이더스'의 모습.

들어보면 그럴듯합니다. 실제로 글로벌 음식 배달 시장은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음식 배달 앱 테이크어웨이가 영국의 저스트잇을 80억달러(약 9조4000억원)에 인수했고, 일본 소프트뱅크의 투자를 받은 동남아 그랩은 '그랩푸드'를 내놨습니다. 쿠팡도 쿠팡이츠를 내놓고 이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륜인 음식 배달 진영은 이커머스에 발을 들여놓고, 반대로 이커머스는 음식 배달 영역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륜과 사륜 간 배달 전쟁이 불붙기 직전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