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테크 업계의 '뉴웨이브(新潮流)' 시대가 열렸다. 이른바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로 대표되는 중국 인터넷 공룡의 뒤를 이을 신흥 기업이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BAT는 미국 구글·페이스북·아마존에 맞서 중국 내수 시장을 지켰고, 지금은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 분야의 테크 굴기(우뚝 섬)를 주도하고 있다. 2세대 중국 테크 기업들은 전 세계에 흘러넘치는 투자 자금 호황기를 배경으로, 돈 걱정 없이 중국은 물론이고 해외시장 공략에도 적극적이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는 것도 하나의 성공 코스로 여겨질 정도다. 조선일보 테크팀은 중국의 차세대 리더 9곳을 꼽았다. 2010년 이후 창업한 기업 가운데 자사의 주력 분야에서 탄탄한 뿌리를 내렸고, 앞으로 전 세계 주도권에도 도전할 저력이 있는지가 선정 잣대다.

◇中 최대 배달 앱, 메이퇀뎬핑

2010년 중국 명문 칭화대학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왕싱과 왕후이원은 소셜커머스 업체 '메이퇀'을 설립했다. 아이디어는 간단했다. 소비자들이 저렴한 도매가로 제품을 사거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예컨대 원가 19위안(약 3200원)짜리 맥도널드 버거 세트를 일정 규모 구매자를 모아 9.9위안(약 1600원)에 파는 식이다. 사명에 한자 '단(團)'을 넣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회사는 2015년엔 이 분야의 1·2위를 다투던 '다중뎬핑'과 합병해 '메이퇀뎬핑'으로 사명을 바꿨다.

현재 메이퇀뎬핑의 실적을 이끌고 있는 건 '메이퇀와이마이'라는 음식 배달 서비스다. 중국 온라인 배달 주문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다. 여행 예약 사업이나 공유 차량 호출, 공유 자전거 서비스 등 20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에서 생활하려면 메이퇀 앱(응용 프로그램) 설치는 필수"라는 말이 나온다. 홍콩증시에 상장한 메이퇀뎬핑의 시총은 28일 기준 764억6500만달러(약 90조원)다. 1세대인 'BAT' 중 한 곳인 바이두(시총 약 52조원)를 훌쩍 넘어섰다.

◇아시아 최대 승차 공유, 디디추싱

2012년 알리바바에서 영업직 매니저로 일하던 29세 청년 청웨이는 사표를 내고 나와, '샤오쥐테크놀로지'를 세웠다. 현재 중국 차량 호출 서비스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디디추싱'의 전신이다. 청웨이는 알리바바 재직 시절, 지방 출장 중 택시가 잡히지 않아 회의에 늦거나 비행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은 게 고민이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우버가 차량 공유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중국판 우버를 만들기 전에 내가 만들어야겠다"는 게 창업의 시작이었다.

디디추싱은 최근엔 중국을 벗어나, 일본·호주·중동 등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자율주행차 경쟁에도 뛰어들었다. 지난해 9월에는 상하이에서 4단계 자율주행(운전자가 탑승하지만 개입하지 않는 수준) 로봇택시를 시범 운영하기도 했다. 아직 비상장인 디디추싱은 560억달러(약 66조원) 정도의 기업 가치가 기대된다.

◇중국 시골 접수한 쇼핑몰, 핀둬둬

핀둬둬는 알리바바와 징둥닷컴이 양분한 중국 온라인 쇼핑 시장에 등장한 다크호스다. 구글 엔지니어 출신인 황정이 35세에 창업한 핀둬둬는 기존 온라인 쇼핑몰들이 제대로 침투하지 못한 중국 지방 도시를 공략했다. 알리바바와 징둥닷컴이 '고급화'와 '프리미엄'을 내밀며 대도시 주민들을 상대로 마케팅에 열을 올릴 때, 핀둬둬는 소득이 적고 가격에 움직이는 시골 소비자를 공략한 것이다. 핀둬둬라는 이름은 직역하면 '모이면 많아진다'는 뜻이다. 한 가지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가격이 싸지는 사업 모델을 그대로 표현했다. 저소득층을 집중 공략해 창업 4년 만인 지난해에 단숨에 회원 수 5억명을 돌파했다. 미국 나스닥 상장사인 핀둬둬의 시총은 425억달러다. 징둥닷컴(시총 551억달러)을 역전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

◇짧은 동영상계의 다크호스, 콰이서우

'15초짜리 동영상' 신드롬을 만들어낸 중국 틱톡의 뒤를 바짝 따라가는 기업이 바로 콰이서우다. 월간 이용자 수는 4억2500만명이다. 틱톡의 중국 버전인 '더우인'의 월간 이용자 수(5억3000명)와 큰 차이가 없다. 콰이서우의 사용자는 대부분 밀레니얼 세대(90년대 초반~2000년대 중반 출생)다. 틱톡과 차별점은 쇼핑이다. 콰이서우는 제품을 판매하는 '왕훙'을 적극 영입해 쇼핑몰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미상장인 콰이서우의 기업 가치는 180억달러 정도로 평가된다.

◇중국판 넷플릭스, 아이치이

2010년 아이치이의 탄생은 중국 네티즌들에게 '드라마·영화 등 콘텐츠를 돈 주고 본다'는 개념을 처음으로 심어준 사건이었다. 그 전까지 중국에선 국내외 드라마가 온라인 사이트에서 무단으로 복제됐다. 아이치이는 드라마 판권을 구매하고, 스트리밍 비용을 받은 후 고화질로 회원들에게 보여주는 중국 내 최대 유료 동영상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최근엔 미국 넷플릭스처럼 오리지널 드라마 제작에도 나서고 있다. 지난해 9월 유료 회원 수 1억명을 돌파했다. 나스닥 상장사다. 시총은 159억9000만달러다.

◇스타벅스 이긴 토종 커피, 루이싱커피

중국 커피 시장은 미국 스타벅스와 중국 루이싱커피의 전쟁터다. 2017년 창업한 루이싱커피가 급속한 점포 확장과 발 빠른 배달 서비스로 2년 만에 스타벅스의 위상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루이싱커피는 스마트폰 앱으로 커피 주문을 받아, 집으로 배달까지 해준다. 루이싱커피는 실시간 주문·배달 시스템을 구축·운영하기 위해 1000여 명의 엔지니어를 고용했다.

◇낯선 곳에서 운명을 만나는 상상, 모모

모모는 중국 최대 데이팅앱이다. 사용자의 위치를 인식하고, 주변 인물의 프로필과 취미 등 자료를 보여준다. 매칭이 이뤄지면, 메신저·통화부터 영상 채팅도 가능해진다. 이 업체는 2018년 최대 라이벌이었던 '탄탄'을 인수하면서, 중국 1위 데이팅앱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8월 미국 포브스가 뽑은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른 회사 톱 100' 리스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중국판 테슬라, 웨이라이

중국 전기차 산업의 선두주자인 웨이라이는 2018년 8월 중국 자동차 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뉴욕거래소에 상장했다. 이 업체가 최근 출시한 SUV 'ES6'는, 가격이 33만9700위안(약 5739만원)으로 경쟁사인 테슬라 모델 X의 반값 수준이다. 이 업체는 앞으로 전국에 전기차 전용 배터리 교체소를 설치하고, 배터리가 떨어지면 인근 교체소에서 2~3분 만에 교체하는 서비스를 내놓을 예정이다. 배터리 충전에 긴 시간이 필요한 전기차의 단점을 없애려는 시도다.

◇밀레니얼의 놀이터, 샤오훙수

소셜미디어와 쇼핑몰의 집합체인 샤오훙수는 '중국 여대생의 필수 앱'이다. 인스타그램처럼 사진으로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면서, 내가 오늘 입은 옷, 사용한 화장품 등을 판매할 수 있다. 샤오훙수의 사용자 층은 1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 밀레니얼 여성들이 주를 이룬다. 창업 4년 만에 200여 국가에서 5000만명이 넘는 회원을 갖췄다. 아직은 기업 가치가 30억달러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현지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올해 샤오훙수가 추가 투자 유치를 할 때는 기업 가치가 현재보다 최소 2배 이상 뛸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