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IBK기업은행의 통상임금 소송 심리를 재개했다. 지난해 5월 16일 최종 판결 기일을 돌연 연기한 지 8개월 만이다. 기업은행 통상임금 소송 결과는 다른 기업들의 관련 소송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금융권은 물론 재계의 관심이 집중된다.
29일 법조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대법원은 이달 기업은행 통상임금 소송 심리를 재개하고 지난 23일 원고(노동자) 측으로부터 상고보충이유서를 제출받았다. 재판부는 원고측의 상고보충이유서를 검토한 뒤 피고(기업은행)에게도 추가 서류를 제출받을지 결정하기로 했다. 소송 당사자들은 이르면 1분기 내에 판결이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소송은 홍완엽 전 기업은행 노조위원장 등 전현직 기업은행 노동자 1만1202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 상고심이다. 이들은 2014년 6월 재직요건부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수당과 퇴직금을 재산정하고 차액을 추가 지급하라며 기업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재직 요건이 붙었다 하더라도 임금의 고정성은 인정된다"며 사측이 775억여원을 추가 지급하라고 판결했으나, 2심은 고정성을 인정하지 않아 사실상 원고 패소로 결론 내렸다.
대법원은 당초 지난해 5월 16일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하루 전날인 15일 돌연 선고일을 무기한 연기했다가 8개월 만에 본격적으로 심리를 재개했다.
통상임금은 근로자가 일상적으로 근로의 대가로 받는 임금이다. 통상임금이 법정다툼으로 이어지는 것은 연장근로 등 각종 수당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연장근로수당의 경우 보통 통상임금의 1.5배 이상으로 책정되는데,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그만큼 받을 수 있는 수당이 늘어나게 된다. 근로자들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고 수당을 재산정해 지급하라고 소송을 거는 이유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되려면 몇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핵심 쟁점은 '고정성 충족'이다. 고정성은 재직 등 부가적인 조건 없이 근로자에게 지급이 확정된 임금을 의미한다. 근로자가 당장 내일 회사를 관두더라도 그동안 일한 만큼 받을 수 있는 임금은 고정성이 충족됐다고 본다. 그동안 법원은 상여금 지급 조건에 '재직자 조건'이 있으면 고정성이 충족되지 않은 것으로 봤다. '지급일 현재 재직한 근로자에게 지급한다'는 조건이 붙으면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마다 고정성에 대한 다른 판단이 계속 나오고 있어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5월 같은 쟁점이 걸린 강원랜드 통상임금 소송에서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은 고정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같은 달 서울고법은 기술보증기금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지급일 현재 재직자에게만 지급하는 성과연봉도 통상임금이라고 판결했다. 지난해 11월 부산고법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아예 상여금에 붙는 '재직자 요건'이 무효라고 판단하기도 했다.
재판부가 기업은행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줄 경우 국내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기업들은 이번 통상임금 소송 결이 노사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재직자 조건이 있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는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에 따라 보수 규정을 재정비하고 노조와 단체 협약을 맺은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법원 판결 경향이 근로자에게 불리한 기준은 무효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며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뒤집는 판례가 계속 나오면 기업들은 건전한 노사 협약을 맺을 수 없어 혼란에 빠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