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에 경기 침체까지… 中企 50%만 설 상여금 지급

부산에서 금속도금 회사를 운영하는 박모 대표는 작년에 이어 올해 설에도 떡값(명절 특별수당)을 챙겨주지 못했다고 했다. 해가 갈수록 주문이 줄고 있는데다, 2년 연속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건비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근로계약서에 명절 떡값을 주기로 명시한 기업들은 대부분 은행 대출을 받아 지급하고 있다"면서 "일감은 없는데 최저임금이 급격히 올라 떡값까지 챙겨주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구에서 염색 가공업체를 운영하는 정모 대표는 요즘 사업이 어려워 직원들의 설 상여금을 이전에 지급한 금액의 절반으로 줄였다.

경기 안산시의 도금업체에서 직원이 작업을 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경기 불황 여파로 명절 ‘떡값’을 지급하지 않거나 금액을 줄이는 중소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중소기업 협동조합 중앙회가 전국 808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번 설에 상여금(현금)을 지급할 예정인 업체는 50.1%로 조사됐다. 본격적인 최저임금 인상 전인 2017년 1월 조사한 결과(59.8%)와 비교해 상여금 지급 업체 비율이 9.7%포인트(P) 감소했다.

또 올해 '설 상여금을 지급한다'고 응답한 업체들의 평균 지급 액수는 62만4000원으로 2017년(72만8000원) 대비 10만4000원이 줄었다.

서병문 중소기업 중앙회 수석부회장은 "지난 몇년간 최저임금이 많이 올랐고, 제품 가격에도 반영되면서 가격경쟁력이 저하돼 중소기업 주문이 감소한 원인이 됐다"며 "설 상여금을 챙겨주기 어려운 업체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최복희 중소기업 중앙회 정책총괄실장은 "이번 조사에서 인건비 상승이 자금 사정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며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같은 정책환경 변화에 중소기업들이 대응하는 과정에서 상여금 지급 여력이 축소됐을 것"이라고 했다.

설 상여금 때문에 은행 대출을 받는 중소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명절 상여금을 꾸준히 지급해 온 경우 통상임금으로 볼 수 있어 회사 마음대로 지급을 중단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구미에서 식품 공장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이번 설에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주기 위해 은행에서 3000만원을 빌렸다"고 했다.

통상임금에 해당되지 않는 상품권이나 선물을 떡값 대신 지급하는 경우도 늘어나는 분위기다. 경기도에 있는 통신장비 업체 김모 대표는 "명절에 현금 대신 상품권을 선물로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 소상공인도 씁쓸한 설 연휴

소상공인도 씁쓸한 설 연휴를 보내고 있다. 명절이 대목인 떡집도 경기 침체 영향을 받고 있다. 김재현 한국떡류제조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올해 분위기가 최악"이라며 "경기가 안 좋아서 떡 주문이 줄었다"고 했다.

서울 서초구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는 홍모 대표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명절 떡값을 직원들에게 챙겨주지 못했다. 재작년까지 그는 가게가 아무리 어려웠어도 매년 설과 추석에 직원들에게 고향에 가는 차비로 쓰라고 1인당 10~20만원씩 챙겨줬다. 그런데 작년부터는 가게 운영이 어려워져 떡값 지급을 중단했다고 한다.

경기도 부천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홍모씨는 직원 설 상여금을 올해 20만원으로 줄였다. 직원 수가 3명으로 소규모 공방이지만 몇년 전만 해도 회사 사정이 좋아 1인당 100만원씩 줬는데 올해는 주문이 줄어 떡값을 대폭 낮췄다.

서울 홍대에서 문신 가게를 운영하는 조모씨는 작년 8월 직원 3명을 모두 퇴사시켰다. 불경기로 매출이 급감했기 때문이었다. 17년간 영업을 했고 유명 영화배우와 가수들도 방문할 정도로 입소문이 난 가게였다. 여름 성수기인 7~8월에는 1억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장사가 잘 됐지만 작년에는 절반 이하로 매출이 줄었다.

식당을 운영 중인 김형순 서울 중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주 52시간 근무제가 되면서 사람들이 퇴근 후 회식하는 손님이 급격히 줄어 일하는 사람도 줄였다"고 했다.

사상철 한국인테리어경영자협회 회장은 "일괄적인 최저임금 인상은 소상공인을 힘들게 하고 있다"고 했다. 김성희 한국메이크업미용사회 부회장은 "최저 임금이 급격히 오르면서 메이크업 가게 중 25% 정도는 문을 닫은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