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부동산 시장에 대한 새 규제 도입 가능성을 내비친 데 이어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입에서 ‘대출 제한 확대’와 ‘부동산 매매 허가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 나오자, 시장에서는 놀랍다는 반응과 함께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15일 강기정(사진) 청와대 정무수석이 CBS라디오방송에 출연해 "특정 지역에 대해서, 정말 비상식적으로 폭등하는 지역에 대해서는 '부동산 매매 허가제'를 둬야 된다는 발상도 하는 분들이 있다. 이런 주장에 정부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을 두고 각계 전문가들은 우려를 쏟아냈다.

◇ "자본주의 국가에서 찾기 어려운 발상"

강 수석의 발언은 부동산을 사고 파는 것마저 정부의 허락을 받도록 하는 방안까지 규제 카드로 들고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강 수석이 거론한 '부동산 거래 허가제'는 노무현 정부의 2003년 '10·29 부동산 대책' 이후 재건축 개발이익환수, 분양권 전매금지 전국 확대안과 함께 추가 동원 대책으로 거론된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헌법이 보장하는 재산권 침해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법조계에서는 구체적인 기준이 설정되지 않을 경우 위헌 논란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가 토지 거래 허가제를 도입하고 있기 때문에 부동산 거래 허가제를 두고 단순히 위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이를 판단하기 위해선 허가 대상 범위 등 구체적인 내용과 기준이 나와야 한다. 만약 모든 주택 거래에 대해 허가를 받도록 한다면 이는 위헌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거래 허가제가 위헌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합리적인 조건과 기준들, 가령 부동산 투기로 인한 심각한 사회 혼란 야기 등 특수한 상황 등에 관한 기준이 설정돼야 하는데 이를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학계에서는 사유재산 침해 논란과 시장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실제로 정부가 부동산 거래 허가제라는 조처를 고려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라고 전제하면서 "만약 거래 허가제가 도입된다면 이는 사유재산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가 될 뿐더러 이로 인해 주택 공급이 더욱 안 돼 시장을 더욱 교란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학계에서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이 제도를 도입한 예가 없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 거래에 대한 각국의 제도가 자유거래, 신고제, 허가제 등으로 나뉘어 있다"면서 "공산주의 국가가 아닌 이상 자본주의 국가에서 주택 거래 허가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0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에서 "부동산시장만큼은 확실히 잡겠다"며 "시장이 다시 과열되면 부동산대책을 계속 쏟아내겠다"고 밝혔다.

◇ "9억원 이하 대출 더 옥죈다고? 서민 피해 클 것"

강기정 정무수석은 매매 거래 허가제 도입 주장에 대한 검토 필요성과 함께 대출 규제를 현행보다 강화하는 방안도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집값 안정의 효과를 거두기보다는 서민 피해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놨다.

이날 강 수석은 라디오 방송에서 "지금 9억원 이상에 대해서, 15억원 이상에 대해서 두 단계로 (대출) 제한을 두고 있는데 대출 제한을 더 낮추는 문제도 고민을 해야 될 것"이라며 "15억원은 대부분 사람들이 접근을 못 할 거고 한 9억원 정도로 접근을 한다면 대출 제한을 낮춰도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작년 말 내놓은 ‘12·16 대책’을 통해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서 시가 15억원을 초과하는 아파트에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했다. 그런데 대출 제한 기준을 '9억원 초과' 주택으로 더 낮추자는 게 강 수석 주장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역시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서울 아파트의 전반적인 시세, 대출을 강화한 ‘12·16 대책’이 나온 이후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는 점, 서울 아파트 전세 물량도 충분하지 않은 점 등 현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추가로 대출 규제를 강화할 경우 전세 가격이 급등하는 등 서민들의 주거 불안을 더욱 키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남수 신한은행 장한평역 금융센터지점장은 "대출 규제 기준을 9억원으로 낮출 경우 일시적으로 시장 가격이 진정되는 효과는 있겠지만, 시장에는 주택에 대한 실거주 수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요를 억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시장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금융업계 관계자는 "이미 서울 아파트 중위 가격이 9억원에 육박한다"면서 "강 수석 주장대로라면 사실상 서울 전역의 아파트 마련에 대한 대출을 옥죄겠다는 것인데 중산층 주거 이전의 자유를 막고 주거 사다리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9억원 이하 아파트에 대한 대출 규제도 한층 강화돼 현행 LTV 40% 적용 비율보다 더 낮아질 수 있다는 해석도 나왔는데, 이 경우 서민들의 주거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서울 아파트 소형 평수, 즉 서민 주택 유형마저도 사실상 대출 규제 대상이 돼 실수요 목적 수요층들이 주택 자금 마련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는 사실상 주택 거래를 하지말라는 것과 다름 없는데, 이러한 규제로 인해 거래 시장이 냉각되는 것 뿐만 아니라 지방세수(재산세·취득세) 위축되는 문제도 있다"고 우려했다.

거래를 얼어붙게 하는 정책이 아닌 숨통을 틔우는 대책도 필요하다는 제언도 이어졌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수요를 누르고 거래를 막아 시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식의 단기 대책이 일시적인 가격 하락 등 효과로 이어질 수는 있어도 이후 누른 것만큼 튀어오를 수밖에 없다"면서 "중장기적인 로드맵과 함께 공급책도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가격 결정에 있어서 중요한 공급요인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재산권 훼손 가능성이 있는 조처가 언급되는 것 자체가 시장에 상당한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