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건물 지하 1층엔 네댓 평 규모 주방 14개가 모여 있다. 하나의 공간에 마련된 여러 독립 주방에 치킨 전문점, 태국 음식점 등 각각 다른 배달음식점이 입점하는 '배달형 공유주방'이다. 중견 건설사 우미건설은 최근 이 공유주방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고스트키친에 투자했다. 또 최근 반년간 공유주택, 핀테크, 가상현실(VR) 관련 스타트업에도 잇달아 30억~70억원씩 투자했다. 우미건설 관계자는 "공유주방은 향후 아파트 단지 내 상가 운영에 도움이 될 수 있고, 다른 곳들도 기존 사업과 시너지가 있을 것으로 보고 투자했다"며 "당장 수익을 낸다기보다는 미래 먹거리 차원"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시장 규제 강화로 위기에 처한 건설업체들이 금융·공유경제·배터리 등 신(新)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건설 시장이 얼어붙으며 새 먹거리 없이는 생존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 주택 시장은 분양가 상한제 등 규제로 침체되고 있고, 해외 건설도 지난해 수주액이 1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할 정도로 상황이 안 좋다.

◇리츠부터 배터리 재활용까지

새로운 사업 진출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GS건설대우건설이 꼽힌다. 지난 9일 GS건설은 전기차에 쓰이는 2차전지 배터리를 재활용하는 사업에 진출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3년간 총 1000억원을 투자해 경북 포항 재활용 규제자유특구 약 12만㎡ 부지에 '배터리 리사이클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2차전지에서 니켈·망간 등을 추출하는 배터리 재활용은 전기차 보급 확대에 맞춰 성장 가능성이 큰 신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임병용 GS건설 부회장은 "이번 투자를 계기로 다양한 분야로 신사업을 확장할 것"이라고 했다. GS건설은 지난해 '자이AI플랫폼'을 구축해 인공지능 사업에 진출했고, 회사 정관에 '스마트팜 설치 및 운영' 항목을 추가하며 스마트팜(첨단 기술 적용 농장) 시장 진출도 공식화했다.

건설사들의 신산업 진출이 잇따르고 있다. 대우건설은 베트남 복합단지 ‘스타레이크시티(위 사진)’를 개발하기 위해 간접투자상품인 리츠를 만들었고, 우미건설은 공유주방 스타트업 ‘고스트키친’에 투자했다. 아래 사진은 고스트키친 공유주방에서 직원이 조리하는 모습.

대우건설은 지난해 '신사업 추진본부'를 신설했다. 연말엔 국토교통부로부터 부동산투자신탁(리츠) 자산관리회사인 '투게더투자운용' 설립 인가를 받았다. 리츠는 투자자를 모아 부동산을 매입하고 임대 수익 등을 배당하는 간접 금융 투자상품이다. 베트남 하노이 복합개발단지 '스타레이크시티'를 개발하는 리츠를 첫 번째 사업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최근엔 종합생활안전 업체 SG생활안전에 투자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필터와 여과기 기술을 기반으로 한 실내공기 환기 시스템 분야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이 회사가 가진 라돈·미세먼지 저감 기술을 향후 아파트 실내 공기 정화에 접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견사들은 스타트업 투자

중견 건설사들은 자체 신사업 대신 스타트업 투자에 나서고 있다. 호반건설은 지난해 자본금 50억원을 출자해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 육성 기업) '플랜에이치벤처스'를 설립했다. 건설 사업과 연계할 수 있는 사업모델을 가진 스타트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스마트팜 플랫폼 쎄슬프라이머스, 인공지능(AI) 기반 건축설계 설루션 텐일레븐, 안면인식 보안 설루션 씨브이티 등이다.

우미건설은 공유주방 외에 공유주택 스타트업 미스터홈즈에도 투자하면서 공유경제 쪽에 주력하고 있다. 공유주택이란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새로운 주거 형태로, 방은 따로 쓰고 거실 등 공용 공간만 공유하는 주택이다. 이외에도 부동산 기반 P2P(개인 간 거래) 금융 플랫폼 테라펀딩을 운영하는 테라핀테크, 3D 공간 데이터 플랫폼 어반베이스 등 부동산 첨단기술(프롭테크) 기반 스타트업에도 투자하고 있다.

건설사들이 이렇게 신사업을 발굴하는 것은 성장동력을 찾겠다는 목적이지만, 일감 부족에 따른 생존전략이라는 측면도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국내 건설 수주는 지난해 대비 6% 감소한 140조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최근 6년 사이 최저치다. 중동 정세 불안, 중국 기업과의 경쟁 과열 등 해외 수주 상황도 녹록지 않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업 일감이 너무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어 기존 사업에 안주하다간 몇 년 후도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