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투자회사들이 해외 매출채권펀드, 부동산펀드 등을 역외펀드(외국펀드) 등록 절차 없이 국내에서 빨리 판매하려고 재간접펀드(펀드에 투자하는 펀드)나 파생결합증권(DLS)으로 판매했다가 사고가 터지니 현지에서 채권자 대우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만기가 연장된 해외 상품 대부분은 재간접펀드이거나 DLS 형태다. 라임자산운용 무역금융펀드가 재간접펀드이고, 독일 헤리티지 부동산 DLS와 이탈리아 지방채(의료비 매출채권) DLS, 브라질 호텔 투자 DLS 등이 모두 DLS 형태로 만들어졌다. DLS는 주가연계증권(ELS)처럼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범위 안에 머물면 당초 약속한 이자를 지급하는 금융상품으로, 이번에 문제가 된 DLS들은 펀드와 비슷한 구조다.
해외펀드 운용사가 국내에서 자금을 모아 다시 해외에 투자하는 펀드를 '역외펀드'라고 하는데, 역외펀드는 금융감독원 등록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하지만 국내 금융사들은 이 절차가 까다롭고 시간이 걸리는 데다 비용도 발생해 대부분 파생상품을 덧씌워 국내에 들여왔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긴 현장을 실사할 때도 채권자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최근 해외 부동산 실사를 다녀온 증권업계 관계자는 "우리 입장에서는 해외 현지 기업에 상당한 돈을 빌려준 채권자인데, 현지에서는 중간에 걸쳐 있는 해외 운용사만 상대하겠다고 하고 있다"면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운용사에 물어보라는 식이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3일 일정으로 현지 출장을 다녀왔는데 상대방과 딱 5분밖에 미팅하지 못했다"면서 "법적으로도 직접적으로 채권·채무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정보 요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문제가 된 해외 상품들은 대부분 직접 투자 방식이 아니었다. 독일 헤리티지 부동산 DLS의 경우 독일 시행사인 돌핀 트러스트가 발행한 전환사채(CB)를 싱가포르 자산운용사인 반자란자산운용의 대출 펀드가 인수했고, 키움증권(039490)·NH투자증권(005940)·KB증권 등 발행사가 이 대출 펀드를 기초로 DLS를 만들어 국내에 팔았다.
독일 헤리티지 DLS는 신한금융투자와 우리은행, 하나은행, NH투자증권, SK증권(001510)등이 2000여명에게 4600억원어치 팔았는데, 1300억원가량은 지난해 7월 이후 투자자에게 원금과 이자를 주지 못하고 만기가 연장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상환이 지연되고 있는 이탈리아 지방채 DLS는 이탈리아 지방정부가 병원 등 의료기관에 지급하기로 돼 있는 건강보험료 유동화 증권을 펀드로 만든 뒤 이를 기초자산으로 해 만든 DLS다. 이 DLS는 펀드로 다시 덧씌워져 DLF 형태로 하나은행에서 370억원가량 팔렸다. 처음 유동화 증권을 펀드와 DLS로 만든 곳이 라임자산운용과 KB증권이고, DB자산운용이 이 DLS를 DLF로 만들었다. 운용사와 증권사들은 정부가 돈을 떼어먹는 일이 없을 것으로 보고 앞다퉈 이 상품을 가져왔다. 이탈리아 지방채 DLS는 전체 판매액이 약 1000억원으로 추산된다.
브라질 호텔 리모델링 투자 DLS도 싱가포르의 부동산 펀드를 기초자산으로 해서 들여왔다가 문제가 된 경우다. 다만 이 DLS는 이자 지급만 유예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발행사인 NH투자증권은 브라질 시행사 측에서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이자 지급을 한달 늦추겠다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전체 판매액은 약 230억원가량이다.
원래 역외펀드를 국내에서 팔려면 금감원 등록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리고 등록하려면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하고 운용사 규모, 펀드 요건 등의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이 절차가 번거롭고 비용이 발생하는 데다 시간도 오래 걸려 대부분 재간접 펀드를 덧씌우거나 DLS 형태로 만들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재간접펀드 또한 원래는 역외펀드 등록을 해야 하지만, 해외 여러 펀드에 분산투자하는 재간접펀드의 경우 등록절차가 필요없다고 금융위원회가 유권 해석을 내린 바 있다.
역외펀드로 등록했다면 투자자들은 해외 부동산 전문 자산운용사가 모집한 펀드에 직접 투자할 수 있다. 직접 운용보고서를 받아볼 수 있고, 수익률도 확인할 수 있다. 금융투자협회 한 관계자는 "펀드로 팔렸다면 기초자산 실태가 어떤지 훨씬 빨리 알려졌을 것"이라며 "DLS 형태가 되면서 깜깜이 투자가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투자자가 내는 수수료도 비싸다. 직접 펀드 투자를 하면 운용사 한곳과 판매사에만 수수료를 내면 되지만, DLS 형태로 하면 해외 운용사 외에도 국내 발행사, 판매사 등에 추가로 수수료를 물어야 한다. 독일 헤리티지 DLS의 경우 판매사인 신한금융투자는 선취 수수료로 가입과 동시에 2.8%를 뗐다.
현장에서도 역외펀드 등록 절차를 밟았어야 했다는 후회 섞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만약 금감원에 증권신고서를 냈다면 훨씬 빨리 실태가 드러날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도 역외펀드 등록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또 OECD 가입국이 아니면 역외펀드 등록이 아예 허용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 개발도상국 개발과 관련한 상품은 아예 들여올 수 없는 것이다.
역외펀드는 2009년 말 기준으로는 15개에 불과했으나 빠른 속도로 늘어 지난해 7월 기준 1500개를 넘었다. 금감원은 문턱을 낮춰졌다고 설명하지만 현장에서는 전문투자자(기관투자자) 전용 상품만 간소화됐을 뿐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