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과 스티로폼 사용 제로(Zero)화에 도전하겠다."

지난달 11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그룹 본사 건물에서 열린 작년 마지막 경영전략회의. 정지선(48) 회장이 "친환경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밝힌 신년 포부다. 정 회장은 "고객 가치와 친환경에 동시에 도움이 될 만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해달라"고 주문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이 올해 핵심 경영 과제로 추진 중인 '녹색 포장(Green Package)'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했다.

최근 인천광역시 연수구 송도1동에 있는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송도점에 나타난 정지선(가운데)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식품관에서 팔고 있는 용과를 살펴보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정 회장의 지시로 올 설 명절 선물세트 상자의 모든 플라스틱 소재 포장재를 종이 소재로 바꾸는 '올 페이퍼 패키지'를 도입했다.

현대백화점과 현대홈쇼핑, 현대면세점 등 모든 그룹 계열사들은 2021년까지 플라스틱과 스티로폼 소재 포장재 사용을 대폭 감축하기로 했다. 연간 플라스틱 포장재 사용량만 393t, 스티로폼 포장재는 66t을 줄일 예정이다. 목표만 달성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약 1088t 줄여 30년산 소나무 16만 그루를 심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

명절 선물 상자 포장, 테이프도 종이로

'녹색 포장' 프로젝트는 정 회장이 직접 챙기고 있다. 이번 설부터 명절 인기 상품인 과일 선물 세트 상자 속 고정 틀이나 완충용 포장재 등 모든 플라스틱 포장재를 종이 소재로 교체했다. 개별 과일을 감싸는 데 쓰이던 폴리프로필렌 소재 플라스틱 완충재는 종이 소재로 바꾸고, 상자는 토양 속에 묻혀도 3개월 만에 미생물 분해가 되는 100% 사탕수수 섬유 재질로 만들었다. 이런 '올 페이퍼 패키지(All Paper Package)'는 설 명절에 판매 예정인 과일 선물 세트 3만5000개 중 1만개에 우선 적용된다. 2021년에는 7만개에 달하는 모든 명절 과일 세트 상품 포장재를 종이로 바꿀 예정이다. 종이로만 포장된 과일 선물 세트를 선보이는 건 국내 유통업계에선 최초다. 과일 선물 세트에 쓰이는 플라스틱 소재 포장재가 400~600원 수준이라며, 재활용 가능한 종이 소재는 1300~1800원 수준으로 약 3배가량 더 비싸다.

정 회장은 "좋은 취지와 관계없이 고객 불편함이 없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면서 다른 상품에 확대 적용하는 방안도 추진했다. 이에 따라 현대백화점은 고기나 생선 등 냉장 선물 세트 포장용으로 쓰이는 스티로폼 상자 10만개(약 50t) 역시 골판지 소재 상자로 바꾼다. '뽁뽁이'라 불리는 '비닐 에어캡'과 비닐 테이프 역시 종이 완충재와 종이테이프로 대체하기로 했다. 친환경 소재 사업들로 현대백화점그룹이 추가 부담하는 예산은 12억원 정도다. 정 회장은 "친환경 비용은 투자라 생각한다"며 "사회적 문제 해결에 일조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결국 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고 했다.

아이스 팩 무료 수거 재활용 공로로 '대통령 표창'까지

정 회장의 친환경 행보는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니다. 현대백화점은 이미 2018년 9월 백화점 업계 최초로 식품관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을 전면 중단시키기도 했다. 그전까지 사용되던 일회용 비닐봉투량만 연간 800만개였다. 현대홈쇼핑에선 2018년 8월부터 무료 수거 재활용 캠페인 '북극곰은 아이스 팩을 좋아해'를 운영 중이다. 현대 H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매달 선착순 4000명의 신청을 받아 집 안에 쌓여 있는 신선식품 포장용 아이스 팩을 별도의 택배 비용 청구 없이 수거해간다. 아이스 팩을 20개 이상 보내면 멤버십 포인트도 준다. 아이스 팩은 터지지만 않으면 계속 재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까지 이렇게 거둬가 재활용한 아이스 팩만 120만개에 달한다. 올해 들어선 사용하는 아이스 팩을 젤 형태의 내용물이 아닌 물과 종이 재질의 '친환경 아이스 팩'으로 교체할 예정이다. 현재 현대백화점 온라인 식품 배송에 연간 사용되는 아이스 팩은 약 20만개다. 정 회장은 친환경 공로를 인정받아 작년 11월 열린 '2019 친환경 기술진흥 및 소비촉진 유공' 정부 포상에서 저탄소생활실천부문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