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련 시절에도 상품광고 있던 露, 외국 브랜드에 포용적
中, 애국마케팅 노골적으로 전개하는 본토 회사 많고 호응도 커
두 나라 모두 체제 선전 정치광고, 공익광고를 수단으로 한 계도에 힘써

마케팅과 광고는 시장경제의 정수(精髓)라 할 만하다. 물론 시대가 바뀌는 데 따른 변화는 당연하다. 매체는 디지털 위주로 바뀌었다. 유통도 변했다. 소비자는 이제 대중(大衆)이 아니라 개인, 그리고 표적화된 분중(分衆), 소중(小衆)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에는 광고라는 자본주의의 총아가 전혀 이질적인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 또 사회주의를 함께 했으나 개혁개방 후 ‘사회주의적 상품경제’를 선언했던 중국, 그리고 구소련 해체 과정에 전면적 시장경제의 도래를 겪은 러시아에 어떤 모습으로 이식되었는지 알아보면서 두 나라의 현재 실체에 조금 더 다가서 본다.

구 소련은 세계 최초로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국가로 구현했던 곳이기 때문에 당간부나 관변 학자의 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상업광고는 부르주아 자본계급의 폐해이다. 마케팅은 상품을 팔기 위해 일부러 상품을 차이나게 한다. 인위적으로 경제를 부양하는 거품이다.’

그렇지만 일반의 상상을 초월하여 소련에 상품광고가 있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소련의 서기장을 역임한 브레즈네프 시절의 상황이다. 브레즈네프는 스탈린과 흐루쇼프의 뒤를 이은 지도자이다. 초창기 소련은 국력을 키우기 위해 중공업, 군수산업 위주의 정책을 펴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경공업과 소비재에는 힘을 쏟을 여력도 이유도 없었다. 적당히 만들어서 공급하면 되었기 때문에 상품간의 경쟁은 당연히 없었고, 상품광고는 불필요했다.

그런 가운데 브레즈네프가 소련사회에 돌연 ‘상품 광고’라는 아주 생소한 문화를 도입한 논리가 명백한 것은 아니다. 아무튼 수천 편의 광고가 만들어졌고 소련 사회에 방영되었다. 소련 방송에 광고가 나오는 시간은 별도로 수십 분의 ‘광고 띠시간대(SB)’였다. 광고에 등장하는 상품 중에 소련 국민들이 실제 상점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것, 또 아예 실존하지 않는 상품마저 있었다고 한다. 즐길 거리가 별로 없던 소련 국민들 사이에서는 광고가 재미있다며 광고를 기다려 시청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1970년대 소련에서 여성 모델이 아이스크림을 다소 선정적으로 먹는 장면과 함께 인기를 모았던 파격적 티브이 광고의 ‘펭귄(Пингвин∙핀그윈) 아이스크림(Мороженое∙마로줴나예)’은 구소련 해체 후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존재했다. 미국의 아이스크림 배스킨라빈스가 숫자 ‘31’을 강조한 데 반해 현대 러시아의 펭귄 아이스크림은 ‘33’을 내세운다.

브레즈네프가 소련 사회에 ‘상품광고’를 방영한 이유를 설명하는 몇가지 주장이 있다. 브레즈네프 집권 시기는 스탈린과는 다르게 중공업 발전이 정체되어 ‘경공업’으로 자신의 업적을 내세우려 했다는 것, 그러면서 ‘브레즈네프의 소련이 살만한 나라’라는 상징 조작을 하려 했다는 것이다. 또 브레즈네프의 성향 자체가 서구적인 문화, 제품들 즉 상품경제적 요소에 대한 기호가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라는 배경도 있다.

다른 이야기로는, 브레즈네프가 ‘광고 산업'을 잘 아는 측근의 ‘설득'에 넘어가 그에게 이권을 주었다는 것이 있다. 이 측근은 ‘에스토니아 리끌람 필름(Эстонский РекламФильм)’이라는 조직을 통해 광고를 만들고 소련에 방영했다. 러시아어로 광고는 리끌라마(Реклама)이고, 에스토니아는 훗날 구소련 해체 이후 분리독립한 발트해 연안의 국가이다. 브레즈네프는 당시 소련 소비재 규모의 약 1퍼센트라는 비교적 큰 금액을 광고 산업에 투입하도록 했다.

한편 중국에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린다’는 뜻의 사자성어 광이고지(广而告之)가 있었다. 광고(广告)는 그것의 줄임말이다. 중국에서 근대적 의미의 상업광고는 청나라 말기 제정 러시아의 영향을 받은 동북지방, 그리고 서양의 영향을 받은 상하이에서 약품, 화장품, 생활용품 등 광고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중국에서 상업광고는 사라졌다. 상업광고는 자본주의의 부패와 낭비를 상징했고, 소련을 수정주의로 비판하는 중국에서 존재할 수 없었다. 인민의 의식주에서 자본주의적 요소는 제거되었다. 예를 들어 남녀의 의생활은 황군장(黄军装)같은 남성화된 모습이었다. 다만 공산당의 이념을 커뮤니케이션하는 정치광고·선전(宣传)은 유용했다. 1960년대 들어 일부 경공업 제품을 홍콩 등지에 팔기 위해 맥주, 백주, 조미료, 차음료, 담배, 한방약 등 상품광고가 만들어졌다.

1978년 등소평의 개혁개방과 ‘사회주의적 상품경제’ 주창은 중국 사회를 일거에 바꾸었다. 갑자기 외국 상품의 광고가 등장했다. 신문광고 중에서 최초의 외국 브랜드는 스위스의 라도 시계였다. 이후 발빠른 일본 소비재 회사들이 중국 시장을 겨냥해 광고를 집행했다. 도시바가 중국에 기술 합작을 한다는 내용, 세이코 시계가 기술이 뛰어나다는 내용 등이다. 티브이에도 광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일본의 시티즌 시계, 미국 웨스팅하우스 가전제품, 그리고 콜라 광고, 청바지 광고가 이어졌다. 중국 각 지역에 옥외광고가 등장했다. 베이징 서단에 일본 산요, 동단에 일본 마쓰시타, 왕푸징에 일본 소니의 옥외광고가 걸렸다. 왕푸징 백화점 쇼윈도에 마쓰시타 세탁기, 오디오, 티브이 곁에서 웃는 주부 모습 마네킹이 연출되었다.

중국 개혁개방 당시 스위스 라도시계의 신문광고. 중국어로 레이다(雷達)는 외래어 ‘레이더’를 말하는 한자인데, ‘라도 손목시계(雷達表∙레이다뱌오)’ 브랜드와 표기가 같다. 뱌오(表∙표)는 손목시계(手表∙수표)를 뜻한다.

특징적인 것은 당시 중국인들이 거세게 반발했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외국 광고에 ‘매국주의(卖国主义)’라는 글을 붙이고, ‘서양을 숭상하고 외세에 아첨한다(崇洋媚外∙숭양미외)’는 구호를 외쳤다. 이러한 당시 중국인들의 태도가 단지 당시까지 체화된 사회주의적 의식의 발로라고만 단정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후로도 최근까지 중국 내에서 외국 브랜드들이 광고와 마케팅을 할 때 비슷한 양상의 애국주의적, 또는 국수주의적 반감이 때때로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외국 브랜드들이 중국 시장과 소비자에 대해 무지해서, 또는 실수로, 아니면 단순한 오해로 벌어지는 이런 광고∙마케팅의 역작용 사례는 개혁·개방 이후 최근까지 이어진다. 일본 토요타의 프라도(霸道∙패도) 인쇄 광고 사례이다. 프라도가 지나는 길에 한 마리의 돌사자 상이 프라도에게 경례를 하고, 또 한 마리는 프라도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이다. 광고 문안은 "너는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你不得不尊敬)". 중국 소비자들은 ‘돌사자가 중국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토요타의 사륜구동 랜드크루저(陆地巡洋舰∙육지순양함) 광고를 보자. 고산 고원에서 랜드크루저가 녹색의 낡은 트럭을 견인하는 내용이다. 중국 소비자들은 ‘녹색 낡은 트럭이 중국’이라고 보았다. 일본 페인트 입방칠(立邦漆)의 광고이다. 중국인들은 ‘중국을 상징하는 반룡(盘龙)이 잘 페인트칠된 기둥에서 미끄러지는(滑落)’ 광고에 분노했다.

나이키의 티브이 광고는 이소룡 영화를 패러디한 내용이었다. ‘미국 프로농구 선수가 공포의 방들(恐惧斗室)을 지나며 격퇴하는 돌사자 두 마리, 노인, 비천상 닮은 여인, 용 두 마리 등이 중국을 상징한다’고 중국인들은 보았다. 맥도날드의 광고이다. 중국인 소비자가 맥도날드 직원 바지를 붙잡고 꿇어앉아 할인 혜택을 달라고 "형님(大哥)" 하며 통사정하는 모습이고, 나중에 중국인은 "다행히 맥도날드는 이 호기를 놓쳐 쓰라려하는 내 심정을 헤아려 내게 혜택을 주었다(幸好麦当老了解我错失良机的心痛给我365天的优惠)"고 말한다. 중국인들은 자존심이 상했다. 돌체앤가바나의 광고이다. ‘젓가락을 서툴게 움직여 피자와 스파게티 등 이탈리아 음식을 먹는 장면이 중국을 무시했다’고 보았다. 버거킹 광고에서 ‘젓가락으로 햄버거 먹는 모습도 중국을 비하했다’고 격분했다.

이밖에도 중국의 시장경제에서 해외 브랜드들이 중국 소비자의 마음을 잡으려면 고려해야 할 것이 매우 많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중국 문화적 요소(中国元素∙중국 원소)를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색깔, 숫자의 의미, 중의적인 언어의 함의, 그리고 상서로운 상징적 길상(吉祥) 등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중국 당국은 각종 옥외광고 매체를 공익광고로 활용하는데, 선전용 정치광고가 많다. 위 사진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社会主义核心价值观)’을 계도하는 것. 12개의 단어로 되어 있다. ‘부강(富强)’, ‘민주(民主)’, ‘문화 교양(文明∙문명)’, ‘조화 총화(和谐∙화해)’는 국가 차원의 목표이다. ‘자유(自由)’, ‘평등(平等)’, ‘공정(公正)’, ‘법치(法治)’는 사회 차원의 목표이다. ‘애국(爱国)’, ‘자신의 본분을 다하기(敬业∙경업)’, ‘신의 성실(诚信∙성신)’, ‘주변과 사이좋게 지내기(友善∙우선)’는 개인이 지켜야 할 사항이다.

구소련은 1980년대 중반 이후 개혁, 개방 그리고 자유화의 역사를 맞이하고 1990년대 초에 해체된다. 즈음하여 1989년 모스크바 푸시킨 광장에 외국 브랜드 옥외광고가 설치되었다. 코카콜라의 광고이다. 이후로도 다른 나라에 비해 러시아에는 옥외광고가 상당히 많다. 옥외광고의 허가 권한을 갖고 있는 관청의 수입원이 되기 때문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외국 브랜드에 포용적이다. 상품의 ‘원산지 효과(Country-of-Origin Effect)’가 높아서 마케팅의 요소로 활용된다. 러시아의 일부 토종회사중에서도 ‘우리의 것(Наш∙나쉬)’ 대 ‘우리것이 아닌것(Не Наш∙니 나쉬)’, 또 ‘자신(Свой∙스보이)’ 대 ‘외국(Чужой∙추조이)’ 등의 테마로 애국심을 유도하는 마케팅 사례가 있지만 일반적이지 않다. 반면에 중국에서는 전자, 의류, 신발, 식음료, 인테리어 등 애국 마케팅을 노골적으로 전개하는 본토 회사가 많고 호응도 크다. 한편 중국, 러시아 당국 모두 체제의 선전을 위한 정치광고, 그리고 공익광고를 수단으로 한 계도 등에 힘을 쏟는데, 러시아보다 중국이 더 적극적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긴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사회주의를 같이한 역사 등을 공유하는 특수한 관계이다. 위에서 광고와 마케팅이라는 시장경제의 총아가 소련∙러시아 그리고 중국의 사회주의와 상품경제 상황하에서 어떻게 발현되었는지 살펴 보았다. 우리는 한국 전쟁 이후 미국과 일본에 대한 관심과 교류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관심과 교류가 적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우리는 시장경제를 운위하는 러시아, 중국과 교역하며 상호 이익을 추구해 오고 있다. 시장이 협소한 한국으로서는 지역적으로도 붙어 있고 소비자의 규모도 큰 두 나라와의 경제적 거래에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

또한 현대의 디지털 경제와 글로벌 교역이라는 두가지 테마만으로도 우리 젊은이들이 중국, 러시아 시장을 포함한 세계로 활동 범위를 넓힐 동인이 된다. 더구나 동북아의 정치, 군사적 긴장이 완화될수록 육로로 연결된 경제권은 활성화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광의의 중국어권 시장과 러시아어권 시장도 함께 묶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 필자 오강돈은...

《중국시장과 소비자》(쌤앤파커스, 2013) 저자. (주)제일기획에 입사하여 하이트맥주∙GM∙CJ의 국내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등 다수의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이후 디자인기업∙IT투자기업 경영을 거쳐 제일기획에 재입사하여 삼성휴대폰 글로벌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프로젝트 등을 집행했고, 상하이∙키예프 법인장을 지냈다. 화장품기업의 중국 생산 거점을 만들고 판매, 사업을 총괄했다. 한중마케팅(주)를 창립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졸업, 노스웨스턴대 연수, 상하이외대 매체전파학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