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모빌리티 혁명의 원년이 될 겁니다."

현대차의 모빌리티 사업을 이끌고 있는 윤경림 현대차 오픈이노베이션전략사업부장(부사장)은 최근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혁신은 수많은 이해 당사자의 저항에 부딪히기 마련이지만 결국 기술과 시장이 이긴다"며 이렇게 말했다. 하나로텔레콤 마케팅본부장, CJ 경영기획 부사장 등을 역임한 그는 KT 신사업추진실장만 5년을 한 '신사업 전문가'로 꼽힌다. 작년 3월 현대차로 전격 영입된 그는 요즘 현대차의 '인재 흡입기'로 불리는 핵심 부서인 전략기술본부 산하에서 각종 해외투자와 협업, 모빌리티 전략을 총괄한다.

그는 "한국이 1998년 세계 최초로 초고속 인터넷을 도입하고, KT가 국내 처음 IPTV(인터넷TV·2006년)를 들여올 때도 이해 당사자들의 저항이 거셌고 불확실성도 높았다"며 "하지만 변화를 촉발하는 신기술과 소비자의 요구를 거스르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윤경림 현대차 오픈이노베이션전략사업부장.

본지는 국내외 모빌리티 혁명이 올해를 분기점으로 크게 확산될 것으로 보고 '2020 모빌리티 혁명' 시리즈를 연재한다. 모빌리티(Mobility·기동성)는 얼마나 빠르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느냐를 뜻하는데, 차량 공유부터 자율주행차까지 이동 편의를 높여주는 모든 종류의 혁신을 '모빌리티 혁명'으로 부른다.

올해는 우버가 LA·댈러스에서 도심 항공기 서비스를 시작하고, 도요타가 호텔·카페로 변하는 자율주행 셔틀 '이팔레트'를 도쿄올림픽에서 선보이기로 한 해다. 국내에선 현대차가 고객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수요 응답형 버스·택시' 시범사업을 본격화하고, 카카오·타다·KST모빌리티 등 주요 업체들도 각종 이동 혁신 서비스를 확대한다.

첫 회는 '자동차 제조사'를 넘어 '모빌리티 서비스 솔루션 기업'이 되겠다고 선언한 현대차 탐구다. 현대차는 그동안 그랩·올라 등 해외 차량 공유 업체에 투자하고 킥보드 공유 등 각종 시범사업을 벌여왔지만, 사업 방향을 뚜렷하게 밝힌 적은 없었다. 특히 국내에선 반(反)대기업 정서로 차량 공유 시장에 진출하지 못했고, 해외에선 우버(미국)·디디추싱(중국)·그랩(동남아) 등 현지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해 파고들 틈이 없었다. 윤경림 사업부장은 본지에 "현대차의 방향은 직접 차량 호출·공유 플랫폼 사업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제조사로서 서비스 업체들에 '서비스 솔루션'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현대차 중심의 모빌리티 생태계 조성을 주도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자동차 판이 흔들리고 있어 우리가 1등을 못 하리란 법이 없다"며 "앞으로 양(量)으로 1등 하는 건 의미가 없고, 모빌리티 생태계 내 영향력 1위가 되겠다"고 했다.

"상생형 사업 모델 찾았다"

그동안 국내 모빌리티 서비스 산업은 IT 업계의 혁신이 택시 업계의 반발에 부딪혀 갈등하는 형국이었다. 윤 사업부장은 그러나 "현대차는 상생하는 사업을 할 것"이라고 했다. 카카오·우버와 같은 차량 호출 플랫폼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이런 플랫폼 업체들과 택시·렌터카·보험·주유 등 업체에 '차량 관리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휴대폰 등 소비재를 만드는 애플의 역할뿐 아니라, 기업에 클라우드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아마존같이 B2B(기업 간 비즈니스) 사업도 하겠다는 것이다.

‘모빌리티 서비스 설루션 기업’을 선언한 현대차의 윤경림 부사장은 “차량 공유 사업을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모빌리티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사진은 현대차가 홀로그램 업체 웨이레이와 손잡고 만든 증강 현실 디스플레이. 유리창에 도로 정보뿐 아니라 건물 임대 정보, 기상 예보까지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현대차는 자동차 제조사로서 자동차 관리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수집·관리하는 능력이 비(非)제조사보다 뛰어나다. 차 제조사가 아닌 외부 업체들이 차량 내 OBD 단자(차량 진단 정보 수집 단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차량 정보는 40~60개 정도다.

하지만 자동차 제조사인 현대차는 차량 부품 내 통신(CAN통신)을 통해 쌓이는 800여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

그는 "예를 들어 일반 OBD 단자를 통하면 차량의 일반적인 속도 정보는 구할 수 있지만, '급가속·급감속' 등 운전 습관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 없다"며 "이런 정보는 보험사나 중고차 업체에 매우 유용한 정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이런 세세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분석·활용하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 첫 사례가 지난달 현대차가 발표한 렌터카 업체와의 협업이다. 현대차는 자회사 '모션'을 설립해 국내 렌터카조합연합회와 협약을 맺고, 렌터카 업체에 차량 통신 단말기와 정보 관리 시스템을 결합한 제품을 판매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렌터카 업체는 실시간 차량 모니터링·시간 단위의 차량 대여가 가능해져, '쏘카'와 같은 단기 차량 공유 사업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인도 최대 차량 공유 업체 올라와도 협업을 추진 중"이라고 본지에 처음 밝혔다. 현대차는 올라의 서비스를 최적화할 수 있는 '올라 특화 자동차'를 개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터 확보 전쟁 치열"

윤 사업부장은 현대차와 비슷한 모델로 도요타를 들었다. 도요타는 자체 데이터센터를 통해 달리는 차량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거대한 시스템 MSPF(모빌리티 서비스 플랫폼)를 구축하고 있다.

이를 통해 택시·렌터카·차량호출 등 각종 업체들에 이 정보를 해석·활용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윤 사업부장은 "모빌리티 시장에선 지금 데이터 확보 전쟁이 치열하다"며 "현대차는 모빌리티 생태계 조성을 통해 차량과 사람에 관한 정보를 축적하고, 이를 통해 미래 자동차와 서비스를 진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