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금융사, 규제에 발 묶이고 디지털 전환도 느려
미국 은행주 훨훨 날 때, 한국 금융주는 제자리걸음
한국 금융을 대표하는 4대 금융지주가 주식시장에서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4대 금융지주의 시가총액은 작년 한 해 약 58조5270억원에서 59조8270억원으로 1조3000억원, 2.2% 늘어나는데 그쳤다. 국내 최대 핀테크업체인 비바리퍼블리카(토스)의 기업가치가 작년에 1조3000억원에서 2조7000억원으로 배 이상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4대 금융지주의 덩치에 맞지 않는 성적표다.
금융지주사들은 저평가된 주가를 높이기 위해 해외 IR, 자사주 매입, 자사주 소각 같은 주가 부양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렇다할 성과는 없다. 은행에 대한 강도 높은 정부 규제와 우리 금융산업의 더딘 디지털 전환 탓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해외IR·자사주 소각… 백약이 무효
작년 12월 30일 종가를 기준으로 신한금융지주 주가는 4만3350원을 기록해 2018년말보다 9.4% 올랐다. 시가총액은 20조5566억원으로 4대 금융지주 가운데 유일하게 20조원을 넘었다.
KB금융지주는 같은 기간 주가가 4만6500원에서 4만7650원으로 2.4% 오르는데 그쳤고, 하나금융지주(086790)도 1.7%만 올랐다. 2월 13일 상장한 우리금융지주는 이후 주가가 24.1% 하락해 1만1600원에 2019년 주식시장을 마감했다. 우리금융 시총은 8조3783억원으로 10조원에도 못 미친다.
4대 금융지주의 시총을 합치면 59조8270억원으로 2018년말보다 겨우 1조3000억원 정도 늘어나는데 그쳤다. 공교롭게도 1조3000억원은 토스의 기업가치 상승폭과 비슷하다. 토스는 2018년말 투자를 유치하면서 1조3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고, 2019년 8월 추가로 투자유치를 하면서 2조7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2019년에만 기업가치가 1조4000억원 상승한 것이다. 세계 최대 핀테크 업체인 중국의 앤트파이낸셜은 기업가치가 169조원으로 4대 금융지주의 시총을 합친 것보다 3배 이상 많다.
금융지주사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올해 금융지주는 저마다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등은 직접 해외투자자를 만나며 IR에 나섰고, KB금융은 자사주 소각이라는 강도높은 주가 부양책까지 꺼내들었다. 사들인 자사주를 아예 없애버리는 자사주 소각은 기업 가치는 그대로인데 발행 주식 수는 감소하기 때문에 주가 상승효과가 크다. KB금융은 지난 12월 1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했고, 신한금융도 올해 상반기에 자사주 소각에 나설 계획이다.
이렇게 금융지주가 주가를 높이려고 발로 뛰고 있지만 이렇다할 성과는 없는 상황이다.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국내 금융사의 PBR(주가순자산비율·낮을수록 저평가)은 0.43배로 역사적인 저점에 있다. 미국의 경우 은행주의 PBR은 1.41배 수준으로 국내 금융사의 3배 이상이다.
◇규제에 붙들린 주가… 느린 디지털化도 저평가 원인
국내 금융지주 주가가 저평가된 원인 중 하나는 정부의 규제다. 부동산 시장을 잡기 위해 정부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강도 높은 대출 규제를 잇달아 내놨다. 정부는 가계대출이 아닌 기업대출을 늘리라고 압박하고 있지만, 당장 돈을 빌려갈 기업도 마땅치 않은 게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대출 규제의 강도가 높아지면서 금융지주 주가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12·16 부동산 대책 발표 직후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입을 모아 "주택 거래량 둔화와 가격조정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며 "은행권 주택대출 성장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외국인투자자도 12·16 부동산 대책 이후 은행주에 대해 매도세로 돌아섰다. 정부가 2020년에도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를 이어나간다는 방침이라 규제 여건은 계속 좋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금융회사가 디지털 전환에 소극적인 탓에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는 의견도 있다. 2019년 한 해 동안 미국 은행주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 이유 중 하나가 발빠른 디지털 전환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금융주는 2019년 한 해 동안 36% 정도 올랐다. 웰스파고가 17%, JP모간이 42.5%,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43.5%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웰스파고증권의 마이크 마요(Mike Mayo) 시니어 애널리스트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IT 기술을 은행 업무에 접목한 덕분에 지금은 기술 기업과 비슷해졌다며 미국 은행의 가치를 평가할 때도 기술 기업 수준의 밸류에이션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비하면 국내 금융사의 디지털 전환은 아직 '시늉' 수준이라는 게 금융권의 자평이다. 각 은행과 금융지주가 디지털 전문가를 영입하고 전담부서를 만들고 있지만, 본업을 대체하기보다는 지원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골드만삭스의 경우 IT 인력이 전체의 25%에 달하는데 국내 금융회사는 IT 인력비중이 3~5%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보안, 전산 설비 담당"이라고 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도 기자들과 만날 때마다 "JP모간은 1년에 1조씩 IT 분야에 투입해 지금은 IT 인력만 5만명에 달한다"며 우리 금융산업의 부족한 IT 분야 투자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