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앞에 다가온 2020년은 개인적으로는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 취재를 시작한 지 10년째 되는 해다. 출입처를 몇 차례 옮겨 다니기는 했지만, 경제 관료들을 만나 주요 현안에 대해 토론하고 인식을 공유하는 생활을 10년째 하고 있다.

10년 전 만난 사무관들은 이제 고참 과장으로 주요 정책을 만들고 있고, 신참 '과장님'들은 '국장님'으로 승진해 정책 추진을 책임지고 있다. 그 때 국장들 중에서 관료 생활의 최고봉인 장·차관에 오른 분도 적지 않다.

10년 전 경제 관료들은 '지켜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구분이 뚜렷했던 것 같다.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억누르는 반(反) 시장적인 금지조치는 '하지 말아야 할 것'에 해당됐다. 고가 주택에 제한 없이 전세대출을 해주는 제도가 전세난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오자, 전세보증금에 대한 주택금융공사 보증을 축소하는 간접적인 규제를 실시했지만, 전세대출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금지' 같은 무식한 단어를 어떻게 쓰냐." 당시 관료들이 습관처럼 내뱉었던 말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들이 한국 경제의 강점으로 지목하는 거시경제 건전성은 '지켜야 할 것'에 대한 경제 관료들의 집착이 만든 결과물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선물환포지션 규제, 외환건전성부담금(일명 은행세) 도입 등은 '제 2의 IMF 외환위기가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라는 집념에서 나왔고, 이 정책은 고질적인 단기 외채 의존증(症)을 고쳐냈다. 통일 비용 등을 감안할 때 국가채무비율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40% 이내로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은, 역설적으로 현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프로그램에 재정을 펑 펑 쓸 수 있는 토대가 됐다.

강산이 한 번 바뀐다는 10년이라는 세월은 경제 관료들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 최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연출한 두 가지 장면은 달라진 경제 관료들의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홍 부총리는 지난 10일 내년도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동안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 + 대안신당) 협의체'의 수정 예산안에 적극 협조했다. 그러면서 예산 부수 법안이 통과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년 예산안이 통과된 것을 옹호하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런 행보는 경제 관료들이 지키고자 했던 원칙에 맞지 않다. 정부가 지출하는 예산을 확정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한 해 동안 세금을 얼마나 거둘 수 있을지가 먼저 확정돼야 한다는 원칙 말이다. 소부장 특별법 등 예산 부수법안이 뒤늦게 통과돼 6조원 넘는 예산이 사장될 위기는 넘겼지만, 경제부총리가 법적 원칙을 무시하는 좋지 않은 전례가 생겼다.

지난 16일 홍 부총리가 "15억원 초과 고가 주택은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한다"고 발표한 것은 관료들 사이에서도 충격적인 장면으로 받아들여진다. "사회주의 국가도 아닌데 대출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말이 되냐"라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새어 나온다. '시장의 불균형은 다른 경제적 유인을 제공해서 조정한다. 경제활동 자체를 금지해서는 안 된다'는 경제정책의 오랜 원칙이 사라졌다. '시장 원리'를 목 놓아 외쳤던 경제 관료들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 됐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SS(에스에스), KK(케이케이) 아닌가요?"라고 반문하는 관료들이 제법 늘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까라면 까라는 대로'라는 의미인 이 말은 문재인 정부 관료사회를 특징짓는 표어 같다.

탐욕스러운 경제 관료들이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장면은 일부 영화에서나 나오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소신파 경제 관료들이 청와대에 바른말 하는 경우도 흘러간 이야기일 뿐이다. 오히려 현 정부는 집권층 구미에 맞지 않은 소리를 했다가 적폐로 몰려 쫓겨나는 사례를 제법 많이 보여줬다. 'SS, KK'가 아니면 출세하기 힘든 정부에 국민들이 믿음을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