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산업 지분 매입가 3228억원
유상증자 후 지분율 HDC 61.5%, 미래에셋 15.0%

HDC현대산업개발(294870)(HDC)와 미래에셋대우컨소시엄이 금호산업으로부터 아시아나항공(020560)지분을 사들이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또 HDC-미래에셋 컨소시엄은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하는 신주를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금호산업이 보유한 지분 30.77%를 3228억원에 사들이고, 나머지 2조1772억원을 아시아나항공 유상증자에 참여해 아시아나항공에 집어넣는 방식이다.

HDC는 27일 계열사 HDC현대산업개발이 2조101억원을 들여 아시아나항공 지분 61.5%를 취득한다고 공시했다. 이날 공시는 금호산업이 가진 아시아나 지분 30.77%(6870만주)를 3228억원에 인수키로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한 데 따른 것이다. 또 아시아나항공은 이날 이사회를 열고 신주를 발행해 HDC-미래에셋 컨소시엄에 4억38000만주를 2조1772억원에 넘기기로 했다. 이로써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놓고 HDC-미래에셋 컨소시엄과 금호산업 간의 협상이 마무리됐다.

정몽규 HDC 회장이 11월 12일 서울 한강로3가 HDC현대산업개발 본사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HDC는 61.5%, 미래에셋은 14.99% 가량을 각각 보유하게 된다. 미래에셋은 4900억원을 투입했다.

HDC 컨소시엄과 금호산업은 지난달 12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이른바 ‘구주(舊株)’라 불리는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 매입 가격과 아시아나항공이 향후 낼 가능성이 있는 과징금 등에 대한 손해배상한도를 놓고 이견이 커 실제 계약 체결까지 40일 넘게 시간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HDC는 금호산업에 매각 협상에 성실히 임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내기도 했다.

주식매매계약이 체결되면서 1988년 2월 창립돼 대한항공과 함께 국내 양대 항공사로 자리매김해온 아시아나항공은 창립 31주년인 올해 '주인 교체'라는 전환기를 맞이하게 됐다.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 체제를 졸업한 지 5년 만이다.

아시아나항공 사무실.

아시아나항공이 주축이었던 금호그룹은 박삼구 전 회장의 공격적인 사업 확장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겹치면서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빠졌고, 결국 아시아나항공은 2009년 12월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구조조정 방식의 일종인 자율협약 절차를 밟았다. 그룹 차원의 경영 정상화 노력으로 아시아나항공은 2014년 자율협약을 졸업했지만, 차입금 규모가 크고 부채비율이 높아 시장에서는 여전히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아시아나항공이 매물로 나오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올해 3월 감사를 맡은 삼일회계법인이 재무제표 등을 신뢰할 수 없다며 ‘한정’ 의견을 내면서다. 그리고 회계법인이 한정 의견을 내는 데에는 2018년 말 현재 아시아나항공 한 회사에서만 6조1700억원에 달했던 부채가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9월말 현재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는 별도재무제표기준 8조7900억원에 달한다. 9개월 만에 2조6200억원이 늘어난 이유는 항공기 리스(lease·설비나 기자재 등을 대여하는 것)에 대한 회계 기준 변경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은 4월 아시아나항공의 정상화를 위해 모두 1조7300억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금호산업은 7월25일 아시아나항공 매각 공고를 내고 지난달 12일 매입가로 2조5000억원을 적어낸 HDC 컨소시엄을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아시아나항공은 HDC로 ‘주인’이 바뀌고, 2조원인 넘는 자본금을 수혈 받게 됐지만 경영 정상화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다는 게 항공업계의 중론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일본, 중국 등 중단거리 노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데 올 하반기 일본 불매운동의 여파로 일본 노선이 위축된 데다 이미 단거리 노선에서는 저비용항공사(LCC)와의 치열한 경쟁에 직면해 있다. 적자 노선 조정 등을 꾀한다고 해도 단기간에 수익성을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을 전망도 많다.

또 아시아나항공의 부채 문제는 단순히 부채가 많다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현금흐름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자본금을 확충해 자기자본비율을 끌어내린다고 해결될 사안이 아닌 것이다. 1~3분기(1~9월) 현금흐름표에서 순이자비용(이자 지급액에서 수취액을 뺀 것)은 163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040억원보다 600억원 가량 늘었다. 리스부채 순상환(상환-차입) 금액은 5580억원으로 전년 동기(1830억원) 대비 3750억원 폭증했다. 사채 순상환(680억원), 자산유동화채무 순상환(3080억원) 부담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아시아나항공의 영업에서 창출된 현금흐름은 6680억원에 불과하다. 사업을 하면 현금이 들어오기는커녕 빠져나가는 구조인 셈이다.

이 때문에 HDC가 인수 이후 계열사 매각 등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항공업계에서는 나온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금호속리산고속·금호고속관광 서울법인 등 노선버스 회사를 자회사로 갖고 있는 금호티앤아이, 부동산 자산이 많은 금호리조트 등은 HDC 입장에서 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자산이라, 매각에 나설 것"이라고 봤다. 이 관계자는 "지분 100% 손자회사로 만들어야 하는 에어부산도 HDC의 자금 여력이 넉넉한 편이 아니기 때문에 매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아시아나항공은 23일부터 희망퇴직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 5월에 이어 6개월 만이다. 매각을 앞두고 인건비 절감에 나선 것이라는 게 항공업계의 시각이다. HDC가 정식으로 새 주인이 되기 전부터 구조조정이 시작된 셈이다.

HDC는 인수 자금 가운데 3000억원은 아시아나항공 자산을 기초로 교환사채(EB)를 발행할 계획이다. EB는 발행 기업이 자기 회사가 아닌 다른 기업 주식과 채권을 나중에 바꿔주겠다는 조건으로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다. HDC가 인수 과정에서 확보한 아시아나항공 주식과 자산을 이용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얘기다. 이 밖에도 HDC는 4000억원 가량은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다른 회사에 매각해 조달하는 것도 추진하고 있다. 이른바 현대백화점, 현대오일뱅크 등 범(汎)현대가 기업들을 대상으로 지분 투자를 받는 대신 항공유·면세점·기내식 등의 사업권을 보장해주겠다는 것이다. 해당 제품·서비스 조달 과정에서 경쟁입찰을 하지 않고, 전속 사업권을 부여하는 만큼 조달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회계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아시아나항공의 사업권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한편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그룹의 살림을 책임졌던 아시아나항공을 현대에 넘기면서 사세가 급격히 쪼그라들게 됐다. 한때 재계 7위를 기록했던 그룹의 위상도 아시아나 자회사까지 모두 통매각하고 나면 사실상 금호산업과 금호고속 등 2개 계열사만 남게 돼 재계 60위 밖으로 밀려날 것으로 보인다. 당장 그룹명부터 바꿔야 할 처지다. 또 아시아나항공의 매각 대금도 당초 주장했던 4000억원대보다 적은 3200억원에 불과해 내년 3월 말 만기가 돌아오는 산업은행 대출 1300억원을 포함해 차입금 상환 등에서 여전히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향후 금호가 어떤 식으로 그룹 재건에 나설지에도 업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