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자동차 판매 부진과 노사 갈등으로 몸살을 앓았던 국내 자동차 산업이 내년 초부터 어려운 상황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국산 자동차 5개사 중 세 곳이 결국 올해 임금협상을 끝내지 못하게 되면서 내년에도 노사간 진통으로 생산 차질을 겪을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올해 임금협상을 끝낸 곳은 현대자동차와 쌍용자동차단 두 곳 뿐이다. 기아자동차와 르노삼성, 한국GM은 이달까지 노사가 협상을 이어갔지만, 끝내 타결을 하지 못한 채 협상을 내년으로 넘기게 됐다.
지난 2017년에도 국산 자동차 5개사 중 현대·기아차와 한국GM 등 3곳이 임금협상을 연내 마무리짓지 못하고 해를 넘긴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는 이듬해 1월에 협상을 모두 타결해 별다른 생산 차질을 빚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노사가 한 차례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던 기아차와 달리 르노삼성과 한국GM은 기본급 인상과 근무형태 변경 등을 두고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자칫 올해 협상이 내년에도 상당 기간 회사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 르노삼성, 작년 임단협 끝낸지 6개월만에 파업…신차 배정 불투명
르노삼성은 올해 임금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지난 23일부터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노조는 기본급 12만원 인상과 임금피크제 폐지, 근속수당 신설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올해 자동차 판매가 크게 부진했고 실적이 악화됐다는 점을 들어 기본급을 동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6일 르노삼성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르노삼성 부산공장의 파업 참가율은 32.9%로 집계됐다. 파업 첫날인 23일은 40.9%, 24일은 37.4%로 참가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노조의 강경투쟁 노선이 조합원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파업에 따른 생산 차질은 무시 못할 수준이다. 차체와 엔진, 도장 등 각 공정에서 하나라도 파업으로 인해 작업이 꼬이게 되면 연쇄적으로 가동이 제 때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23일과 24일 부산공장의 생산차량은 200여대 수준으로 평소 생산량 600대의 3분의 1 수준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르노삼성은 지난해에도 임금과 단체협약 협상을 제 때 마무리짓지 못해 큰 진통을 겪었다. 지난해 10월 이후 7개월여간 52차례에 걸친 부분파업이 이어졌고 올해 6월 14일이 돼서야 간신히 타결에 이르렀다. 올 상반기를 노사 갈등으로 허비하면서 르노삼성은 3500억원에 이르는 생산 차질을 겪었다.
문제는 내년에도 올해 임금협상으로 인한 노사갈등이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르노삼성 노조 집행부는 내부 조합원들의 반발에 등을 떠밀려 지난해 임단협에서 회사에 '백기투항'을 했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는 조합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해도 어떤 식으로든 제 몫을 찾으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르노삼성은 오랜 기간 세단 라인업인 SM 시리즈와 SUV 모델인 QM 시리즈로 국내 시장에서 버텨왔다. 그러나 모델 노후화로 최근 판매량이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5년간 부산공장 물량의 절반을 차지했던 닛산 로그의 위탁생산 계약도 끝났다.
내년에는 새로운 크로스오버차량인 XM3의 유럽 수출물량을 배정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노사갈등이 중대한 장애물이 되고 있다. XM3 물량을 두고 부산공장과 경쟁하는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의 경우 글로벌 자동차 생산공장에서 매년 생산성 1위를 차지하고 있어 본사가 부산공장에 물량을 배정할 명분은 더욱 낮아진 상태다.
◇ 한국GM도 강성 집행부 선출로 격전 예고
한국GM 역시 내년 초부터 올해 임금협상을 두고 노사갈등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많다. 이미 기본급 인상 등으로 두고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새로 선출된 노조 집행부마저 강성 성향으로 분류돼 짧은 시간 안에 의견 절충에 이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3일 선출된 김성갑 금속노조 한국GM지부장은 자동차 업계에서 대표적인 강성 성향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노조 민주화 투쟁과 민주노조 사수 투쟁, 대우차 정리해고 철폐 투쟁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세 차례 구속 수감됐고 두 번의 해고를 거쳐 복직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김 지부장이 이끄는 새 노조 집행부가 올해 임단협 협상을 재개하면서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초반부터 파업을 포함한 강경투쟁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만약 한국GM 노조가 내년 초부터 전면파업에 나설 경우 제너럴모터스(GM) 본사에 한국 시장의 추가 구조조정을 진행할 빌미를 줄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국내 시장에서 판매하는 주력 차종이 트래버스와 콜로라도 등 미국에서 직수입하는 모델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파업이 진행되면 오히려 노조가 궁지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
기아차는 르노삼성, 한국GM에 비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노사가 도출한 잠정합의안이 한 차례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되긴 했지만, 이미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세부 합의사항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부분파업이 진행될 경우 최근 출시한 신형 K5 등 주력 차종의 생산 차질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