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은 올해도 중국 정부라는 진출 장벽(障壁)을 넘지 못할 전망이다. 국내 게임 업계는 지난 23일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에 마지막 기대를 걸었지만, 이날 회담에서 아예 '게임'이 주요 안건은커녕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며 "다만 문화·체육·교육·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 협력을 강화하자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게임은 제대로 언급조차 안 됐다는 것이다. 한한령의 최대 피해자인 국내 게임 업계에선 "문 대통령이 워낙 친(親)게임적 행보를 보여와 한가닥 기대를 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게임이 외면당하는 현실만 재확인했다"는 푸념이 나온다.
중국 정부는 3년 전 사드 갈등이 불거지자, 한국 게임의 중국 내 영업 허가증(판호·版號) 발급을 중단했다. 벌써 2년 9개월째 한국 신규 게임은 한 건도 중국 시장에 진출조차 못 했다. 중국은 국내 게임 업계엔 북미나 유럽, 일본보다 더 큰 시장이다. 신규 게임의 진출 규제로 잃은 '기회 비용'만 2조~4조원에 달할 것이란 게 업계의 추정이다. 문제는 중국 정부가 올해 들어 일본이나 미국 게임에는 한 달에도 수십 건씩 영업허가증을 내주면서도 유독 한국 게임만 막고 있는 것이다. 한 게임 업계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중국에 항의를 하거나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데 팔짱을 낀 채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親게임 정부라더니…
당초 게임 업계는 이번 정권을 '보기 드문 친게임 정부'로 봤다. 문 대통령의 아들인 문준용씨가 게임 개발업체를 창업한 경력이 있는 만큼, 게임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전임 대통령보다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 "게임을 마치 마약처럼 보는 선입관이나 편견이 달라져야 한다" "부정적 인식으로 중국에 추월당했지만, (규제를) 제대로 풀어주면 다시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올 초 청와대에서 열린 기업인과의 대화 때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를 옆자리에 앉히기도 했고, 방준혁 넷마블 의장과는 청와대 경내를 함께 산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국내 게임 업계에 절실한 현안 해결에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달 11일 한국게임학회는 "지난 대선에서 게임 산업 부흥의 적임자로 문재인 당시 후보를 지지했는데, 이 정부의 외교부는 허가증 차별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내놓고 있지 않다"는 성명서를 냈다. 중국의 영업허가증 문제만이 아니다. 중국의 무분별한 국산 게임 표절 행태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는 해법은커녕 공식 항의조차 안 하는게 현실이다. 참다못한 넥슨·넷마블·크래프톤·위메이드 등 국내 업체들은 중국산 '짝퉁 게임'에 법적 소송을 걸기 시작했다. 짝퉁 게임에 따른 피해만 누적 수십조원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정부의 해법을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이다. 한 게임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고질적인 표절 행위가 벌써 20년 정도 지속되고 있지만,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항의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국가 간 외교적인 해결에 대한 기대는 접은 지 오래"라고 말했다.
◇실적 추락하는 국산 게임
한 중소 게임 업체의 대표는 "말로만 '게임 육성'을 외칠 뿐, 행동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예컨대 지난 5월 세계보건기구(WHO)가 사실상 한국 게임을 타깃으로, 게임 중독을 공식 질병으로 분류할 때도 정부 차원의 공식 입장 발표조차 없었다. 한 게임 업계 관계자는 "문체부와 보건복지부가 질병코드 도입과 관련, 엇박자를 내는 가운데 정부 입장이 뭔지조차 알 수 없어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지원 예산도 줄고 있다. 정부의 게임 산업 육성 예산은 지난 2018년 554억6600만원에서 내년 447억700만원으로 3년 연속 줄고 있다. 정부의 정책이 대통령의 친게임 발언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게임 무관심 속에 국내 대표 게임 업체의 실적은 줄줄이 꺾이고 있다. 국내 최대 게임 업체인 넥슨은 지난 3분기에 전년 대비 매출이 20% 이상 급감하는 '어닝쇼크'를 겪기도 했다. 최대 시장인 중국이 막힌 상황에서 흥행 신작을 내놓기조차 쉽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한국 안방 시장에는 중국 게임들이 아무런 규제 없이 진출해, 속속 매출 상위권을 꿰차고 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은 "중국 정부의 한국 게임 차별 정책은 국산 게임의 경쟁력을 크게 약화시키는 악재"라며 "지금이라도 공평한 무역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한국 게임의 글로벌 진출은 헛된 꿈으로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