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에 피해 전가" vs "O2O 혁신 서비스 제공" 의견 갈려

국내 1·2위 배달앱인 ‘배달의 민족(우아한 형제들)’과 ‘요기요(DH)’의 인수합병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독과점 논란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배달앱 시장 점유율 100%에 달하는 거대공룡을 탄생시킬 이번 합병을 공정위가 허가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가 하면 최근 신산업에서 유연성을 강조하는 공정위 기류를 고려했을 때 다른 판단이 나올 수 있다는 예상도 있다.

공정위는 내년 중점 추진 업무로 신산업 분야 독과점 규율 체계 마련에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획일적으로 적용하던 기준을 벗어나 기술혁신을 통한 소비자 후생을 극대화시키면서 선발 사업자의 과도한 시장 독과점을 방지할 수 있는 묘안을 만들겠다는 게 공정위의 다짐이다.

이 때문에 ‘배민·요기요’ 합병 이슈는 앞으로 공정위가 플랫폼·O2O(온오프라인 연계서비스) 사업자 등 신산업 분야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 지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배민·요기요 로고

◇배민·요기요(DH), 쿠팡의 경쟁자로 볼지 관심

배달의 민족과 요기요의 합병이 확정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 심사 문턱을 넘어야 한다. 만약 공정위가 이번 합병으로 배달앱 시장의 독점이 강화된다고 판단하면 기업 결합 불승인 결정이 나올 수 있다. 높은 시장점유율 자체가 공정거래법 위반은 아니지만 시장 경쟁을 저해하는 기업 결합은 금지한다는 것이 공정위 원칙이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에 따르면 국내 배달앱 시장은 배달의민족(55.7%), 요기요(33.5%), 배달통(10.8%)순이다. 배달의 민족과 요기요의 점유율이 89.2%에 달하고, 업계 3위인 배달통도 DH 소유라서 이번 합병이 성공하면 DH의 국내 배달앱 시장 점유율은 100%가 된다. 독점 논란을 피하기가 어렵다.

과거에도 공정위는 독과점으로 소비자 피해가 우려되는 대형 M&A는 불허했다. 공정위는 2016년 이통업계 1위인 SK텔레콤(017670)과 케이블산업 1위였던 CJ헬로비전의 기업결합 신고를 "업계 1위간 결합이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승인하지 않았다.

반면 공정위는 지난달 8일 LG유플러스(032640)·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과 SK브로드밴드·티브로드의 합병은 승인했다. 3년 전과는 방송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에 사업자들이 이에 대응하고 혁신 경쟁을 촉진한다는 취지를 내세웠지만, IPTV 2, 3위 업체들이 인수 주체로 나섰기 때문에 합병 승인이 가능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번 합병의 ‘경쟁제한성’은 공정위가 시장의 범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시장획정 범위가 배달앱으로만 좁혀지면 요기요 운영사인 독일계 딜리버리히어로(DH)가 국내 배달앱 시장의 100% 가까이를 점유하니 시장을 독점하는 것으로 결론날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을 O2O 업계로 확대한다면 시장점유율 계산은 달라진다. 배민, 요기요, 배달통 등을 인수한 DH가 쿠팡 등 다른 사업형태를 갖고 있는 O2O 사업자들과 경쟁관계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배달의 민족 측이 C사(쿠팡)을 언급하며 거대자본과의 경쟁에 따른 합병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향후 거대 경쟁자 등장에 언제든지 사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배달앱 자체가 전통 산업이 아닌 O2O서비스를 제공하는 신산업인만큼, 단순히 시장점유율만을 놓고봐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있다. 두 회사가 합병을 통해 소비자에게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기업심사를 할 때 점유율이 과반이더라도 효율성 증대효과가 경쟁제한 폐해보다 크면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신산업의 경우 시장이 얼마나 유연하게 변화하는지, 신규사업자의 원활한 진입이 가능한지 등 동태적인 측면을 두루 따져야 한다"이라고 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도 "공정위는 (기업결합 심사를 통해) 혁신을 촉진하기도, 가로막기도 한다"며 "(두 회사 합병이)혁신을 촉진하는 측면과 독과점이 발생해 소비자에게 피해가 될 수 있는 측면을 균형 있게 따져보겠다"고 밝혔다.

배민 라이더스VS쿠팡 로켓배송.

◇"배민·요기요 합병으로 소비자에 피해 돌아갈 것" 지적도

경쟁법 전문가들은 배달의 민족과 요기요의 합병에는 혁신과 독과점 요소가 모두 존재하기 때문에 섣부른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고 하면서도, 배민 측이 내세운 논리로는 시장의 독과점 우려를 해소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우선 배민 측이 내세운 대로 시장을 전체 O2O사업자로 확대한다고 해도 쿠팡과 같은 ‘잠재적 경쟁자’의 역할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는 또다른 문제다. 경쟁제한성은 현재 경쟁사업자와 잠재적인 경쟁사업자를 모두 고려해 결정한다. 이때 통상적으로 잠재적 경쟁사업자는 향후 1년 안에 발생할 것이 분명한 범주안에서만 판단한다. 즉 쿠팡이 향후 1년 안에 배달앱에 진출해 배민과 요기요를 견제할 수 있는 지위를 획득해야 경쟁제한성이 상쇄된다는 얘기다.

합병 이후 별개 법인으로 운영해 경쟁체제를 유지하겠다는 주장도 ‘독과점 논란’을 불식시키기에는 모자라다. 일각에서는 DH의 우아한형제들 인수를 두고 1998년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 사례를 언급한다. 현대·기아차 역시 별개 법인이지만, 합병 후 국내시장 독과점 체제가 형성돼 자동차 가격이 연이어 오르는 등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됐다. 배달앱 합병이 공정위와 경쟁법 학계 내부에서 대표적인 인수합병 허가 오판 사례로 꼽히는 ‘현기차’ 합병과 비슷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쟁법 전문가는 "국내 배달앱 시장을 DH가 장악하면 배달료 인상, 할인정책 축소, 배달수수료 인상 등 경쟁제한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결국 소비자와 가맹점주, 배달노동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배달의 민족은 합병 후에도 향후 2년간 배달 수수료를 올리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독과점적 지위를 형성하고 난 후에는 그 지위를 이용해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황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가격 인상 여부는 합병 이후 언제든지 번복할 수 있고, 한번 독점적 지위가 형성되면 그를 이용해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매우 많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