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 생산의 25%를 책임져 온 한국GM·르노삼성·쌍용차 공장이 올 한 해 절반 정도 멈췄던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1~11월 3사의 공장 가동률은 평균 59.4%였다. 이 기간 3사의 생산 능력은 109만대에 달했지만, 생산량이 65만대에 그친 것이다. 3사의 가동률이 50%대로 떨어진 건 2009년 금융 위기(약 52%) 이후 처음이다. 이에 따라 국내 자동차 생산량 중 3사의 비중은 18%로 떨어졌다. 업계에선 통상 자동차 공장 가동률이 75%가 넘어야 이익이 난다고 본다. 내년엔 이 공장들의 위기가 더 심화되며,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내년 제2의 한국GM 사태 올 것"
올 들어 11월까지 3사의 가동률은 한국GM 55.5%, 르노삼성 55.4%, 쌍용차 86.2%였다. 한국GM은 지난해 군산공장 폐쇄와 3000여명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지만, 내수 판매와 수출이 모두 급감하면서 가동률이 50%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GM은 내년 상반기 준중형 SUV 신차(트레일 블레이저)를 부평1공장에 맡겨 가동률을 높인다는 계획이지만, 신차(CUV)가 2022년에나 투입되는 창원공장은 50%대 가동률이 2년간 지속될 상황이다. 이에 한국GM은 창원공장 비정규직(도급 직원) 600여명과 계약을 해지하고, 내년부터 2교대를 1교대로 전환하기로 했다. 5년간 누적 적자가 4조원에 달하는 한국GM은 올해 손익분기점을 넘기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최근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근 업계에선 르노삼성과 쌍용차에 '제2의 한국GM 사태'가 생길 수 있다는 전망이 흘러나온다. 특히 쌍용차는 2007년 이후 딱 한 해(2016년)를 제외하고는 계속 적자를 냈다. 신차 개발·투자를 거의 못 해 내년에 딱히 내놓을 신차도 없다. 업계 관계자는 "쌍용차는 디젤 SUV 중심의 사업 구조를 하이브리드·전기차로 전환했어야 하지만, 그럴 여력이 없었다"고 말했다. 쌍용차는 내년 상반기 돌아오는 700억원대 채권 만기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최근 쌍용차 노조위원장이 인도 마힌드라그룹을 찾아 투자를 요청했지만, 경영진은 "대주주와 한국 정부가 함께 지원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산업은행이 한국GM에 8000억원을 지원하는 선례를 남기면서, 마힌드라가 똑같은 요구를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르노삼성은 생산량 절반을 차지해온 닛산 로그 위탁생산 계약이 만료되면서 생산 절벽에 직면했다. 올 상반기 르노삼성 노조의 사상 최장 파업을 목격한 르노 본사는 아직까지 부산 공장에 신차 물량을 배정하지 않고 있다. 생산 능력 30만대 공장에서 지난해 21만대를 생산했던 르노삼성은 올해 16만대, 내년엔 12만대 수준으로 급락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내년 적자 전환이 확실시되는 상황인데도 노조는 올해 기본급 12만원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준비 중이다. 르노삼성은 최근 400여명의 희망퇴직을 모집했지만, 실제 신청자는 수십 명에 불과해 인위적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생산 공장' 경쟁력의 상실
지금 글로벌 자동차 산업은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글로벌 공급 과잉이 2500만대에 달하고, 자율주행·공유차 등 미래차 시대가 오면서 자동차 수요는 계속 줄고 있다. 여기에 부품 수가 내연기관차의 3분의 1 수준인 전기차가 대세가 되면서 GM·폴크스바겐 등 전 세계 자동차 업체는 올해에만 8만여 명 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한국의 자동차 공장들은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고질적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 강성 노조와 딱딱한 노동법에 따라 구조조정에 엄두를 못 내고 있다. 특히 한국에 본사를 두고 내수 시장을 독과점하며 그나마 이익을 내는 현대·기아차와는 달리, 마이너 3사는 이미 '외자 기업의 해외 생산기지' 역할로 전락해 있다. 해외 기업 본사의 지시에 따라 위탁 생산 역할을 해야 하는 공장의 경쟁력은 바로 '생산성'이지만, 강성 노조와 고임금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경쟁력을 점차 상실해가는 것이다.
한국 완성차 5사의 평균 임금은 도요타·폴크스바겐보다 높고, 매출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도 이 기업들보다 높다. 쌍용차는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 이후, 2013년부터 해고자 복직을 진행해 올해 말까지 700여명을 복직시켰다. 경영 정상화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건비 부담이 늘면서, 신차 개발·투자를 거의 못했다. 쌍용차는 2012년 인건비 지출(2554억원)이 매출 대비 8.9%였지만, 지난해(4497억원)엔 12.1%까지 높아졌다. 그나마 높은 생산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온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지난해 집권한 강성 노조가 파업을 주도하며, 본사가 배정하는 신차 물량을 걷어차고 있는 형국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3사 통합 등 선제적 구조조정을 이미 해야 했지만, 강성 노조의 반발을 우려해 아무도 손들고 나서지 않아 지금 이런 사태까지 온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