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16일 발표한 부동산 대책에서 종합부동산세 세율을 높이겠다고 밝힌 데 이어, 17일 재산세·종부세 등 보유세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도 내년부터 고가 주택 중심으로 시세 대비 70~80% 수준까지 올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다주택자는 물론, 집 한 채 가진 1주택자도 내년 보유세가 상한선(전년 세금의 1.5배)까지 급등하는 가구가 속출할 전망이다. 국토교통부는 17일 공시가격의 시세반영률(현실화율)을 높이고 산정 과정에서 신뢰성을 확보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2020년 부동산 가격 공시 및 공시가격 신뢰성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내년 공시가격은 올해 공시가격 현실화율에 조정분을 더한 수치를 올해 말 시세 가격에 곱해서 산정한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보유세는 낮고 양도소득세 등 거래세가 높았다. 하지만 현 정부는 거래세는 그대로 높게 유지하면서 보유세도 급격히 올려 국민 조세 부담을 과도하게 올린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내년 9억원 이상 아파트 공시가격, 시세 70~80%까지 올린다

핵심은 아파트 등 공동주택과 단독주택의 경우 공시가격의 현실화율을 가격대별로 차등해 목표치를 설정하는 내용이다. 대상은 시세 9억원 이상 고가 주택에 한정된다. 비싼 집일수록 현실화율 상향 목표치에 미달하면 공시가격을 집중적으로 올리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가격대별로 시세 9억원 이상~15억원 미만은 공시가격 시세 반영률이 올해 66.6~66.8%에서 내년 70%, 15억~30억원 미만은 올해 67.4%에서 75%로 오른다. 30억원 이상 주택은 올해 69.2%에서 내년에는 80%까지 상향될 계획이다.

다만 공시가격 급등을 막기 위해 현실화율이 단번에 목표치까지 오르진 않을 전망이다. 현실화율 조정분에 상한선을 뒀기 때문이다. 현실화율 조정분 상한은 9억~15억원은 8%포인트, 15억~30억원은 10%포인트, 30억원 이상은 12%포인트다. 예를 들면, 올해 시세 대비 공시가격이 60% 수준인 12억원 아파트는 내년 현실화율 목표치가 70%이지만, 조정분 상한으로 인해 실제로는 68%까지만 올라가게 된다. 단독주택의 경우에도 시세 9억원 이상에 한해 공동주택과 동일한 방식으로 내년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55%(올해 53%) 수준까지 높아진다.

1주택자도 내년부터 보유세 50% 올라

정부 발표대로라면, 당장 내년부터 서울 강남권과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등에서는 공시가격이 시세 상승률보다 더 많이 오르고, 보유세도 50% 오르는 아파트 단지들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어 강남구 A 아파트 전용 84㎡를 보유한 1주택자의 경우 시세는 지난해 말 17억6000만원에서 올해 말 23억5000만원으로 33% 올랐지만, 공시가격은 올해 11억5200만원에서 17억6300만원으로 53% 오른다. 재산세·종부세를 합친 내년 보유세는 올해(420만원)보다 210만원 늘어난 약 630만원을 내야 한다. 보유세 부담이 상한선인 전년의 150%까지 커지는 것이다.

강남권에 아파트 두 채를 보유한 2주택자, 3주택자의 경우 내년 공시가격이 전년보다 40%가량 뛰고 보유세는 올해보다 배가량(100% 안팎) 늘어나게 된다.

보유세 더 올라… "양도세는 낮춰야"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정부가 공시가격 인상으로 내년엔 더 큰 보유세 상승을 예고한 것"이라며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몇 년간 보유세 부담이 계속해서 커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실화율 상향으로 공시가격 자체가 오르는 데다, 올해 85%인 공정시장가액비율(공시가격에 적용되는 일종의 할인율)이 2022년까지 100% 수준으로 오르기 때문이다. 여기에 12·16대책을 통해 정부는 종부세율을 인상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우리나라가 외국에 비해 보유세가 낮다는 점을 인상(引上) 명분으로 내세운다. 실제 작년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동산 보유세 비율은 0.8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36국 중 15위다. 하지만 양도세 비율은 1.01%로 스웨덴(1.37%)에 이어 2위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지구상에 보유세도 높고 거래세도 높은 나라는 거의 없다"면서 "보유세를 높인다면 동시에 양도세 등 거래 비용을 낮춰야 조세 형평에 맞을뿐더러 거래가 늘어 집값도 안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