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파티 열고, 맥주 덕후 가리고…
유통업계, 마니아 공략하니 매출이 '쑥'

12일 논현동에서 열린 홈플러스 '와인클럽 연말파티'에서 한 참석자가 와인을 시음하고 있다.

"자, 먼저 스파클링 와인으로 가볍게 시작하시죠."

12일 저녁 7시, 서울 강남구 논현동 골목의 한 레스토랑은 파티 열기로 가득했다. 홈플러스 와인 클럽 '와인에 반하다'가 주최한 연말 파티장이다. 드레스코드에 맞춰 빨간색 옷으로 입은 수십 명의 참석자 사이, 머뭇거리는 기자에게 한 참석자가 말을 건넸다. "저도 이런 자리는 처음인데요, 일단 잔 하나 들고 저쪽 테이블로 가보세요."

이번 파티에는 홈플러스가 운영하는 모바일 앱 마이홈플러스를 통해 응모한 530여 명의 고객 중 총 35명이 초대됐다. 동반자 없이 당첨자 혼자 참석하는 행사였지만, 노쇼(예약 부도) 없이 모두 자리를 채웠다. 이 중엔 대구에서 온 참석자도 있었다.

행사에선 홈플러스가 영국 와인유통회사인 베리 브라더스 앤 러드로부터 독점 수입·판매하는 와인 14종이 소개됐다. 스파클링 와인인 프로세코를 시작으로 꼬뜨 드 가스꼰느, 네로 다볼라, 꼬뜨 뒤 론, 바롤로 등이 다양한 요리와 함께 등장했다. 와인 가격대는 1만2900원부터 9만9000원 선. 와인 전문가가 알려주는 와인 클래스와 퀴즈 이벤트, 베스트 드레서 시상식도 진행됐다. 회사 측은 "가성비 와인부터 프리미엄 와인까지 500여 종의 세계 와인을 판매한다는 걸 알리기 위해 행사를 진행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시음할 와인을 소개하는 와인 클래스.

몸에 알코올이 돌기 시작하자 행사장의 열기는 더 뜨거워졌다. 참석자들은 원래 알던 사이인 양 함께 인증 사진을 찍고 '우리 남편, 우리 아들'의 이야기도 서슴없이 털어놨다. 와인 전문가에게 평소 궁금했던 질문을 하기도 했다.

회사원 이정훈(49) 씨는 "얼마 전 오래된 와인 20여 병을 버렸는데, 와인에도 유통기한이 있는지 궁금하다"며 전문가를 소환했다. 한우성 홈플러스 차주류팀 바이어는 "와인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단, 코르크가 말라 부서져 내용물이 오염되지 않도록 습한 곳에 보관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주부 서은영(50) 씨는 "예전엔 소주로 고기를 재웠는데, 이제는 와인으로 고기를 재운다. 요리하고 남은 와인을 한 두잔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했다. 자신만의 꿀팁도 전수했다. "뱅쇼(따뜻하게 데워 마시는 와인)를 만들면 와인이 걸쭉해지는데, 여기에 스파클링 와인을 타 먹으면 맛이 한결 좋아지죠."

와인 파티는 예정 시간인 10시를 훌쩍 넘긴 11시 반에야 끝이 났다. 그나마도 막차 시간에 맞춰 어쩔 수 없이 종료된 것이다.

이날 파티에선 홈플러스가 독점 판매하는 와인 14종이 소개됐다.

대형마트인 홈플러스가 소규모 와인 파티를 개최한 이유는 마니아층의 충성도가 매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덕후(한 분야에 깊이 빠진 사람)' 마케팅이다. 홈플러스는 모바일 앱 마이홈플러스를 통해 와인, 고기, 건강, 맥주, 반려동물 등 7개의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총 24만 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각 클럽은 매월 쿠폰을 제공하는데, 그때마다 해당 카테고리의 매출이 평소보다 10% 가까이 오른다.

마니아들의 열정은 상품 개발에도 반영된 된다. 맥주 덕후 고객들이 정기시음회를 통해 높은 점수를 준 독일 예버 필스너, 영국 고스넬스 맥주 3종의 경우 출시 2주 만에 매출 중상위권에 오르며 성장세를 보였다.

실제 와인 파티 참석자 중엔 지난 6월 열린 '맥믈리에 콘테스트'에 참석했던 이도 있었다. 30대 직장인 장재현 씨는 "맥주, 고기, 와인 등의 클럽에 가입해 다양한 정보를 얻고 있다. 다음에도 이런 행사가 열리면 참석하고 싶다"고 밝혔다.

홈플러스 외에도 유통가는 덕후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중이다. 나를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하고 자신의 관심사에 과감히 투자하는 덕후들이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르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배달 앱 배달의민족은 팬클럽 '배짱이', 편의점 CU는 밀착형 서포터즈 'CU덕후'를 운영 중이다.

이와 관련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저서 '2020 트렌드 코리아'에서 '팬슈머(팬+소비자를 결합한 신조어)'를 내년도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로 뽑았다. 김 교수는 "소유에서 경험으로 이동한 소비의 패러다임이 다시 경험에서 '관여'로 발전하고 있다"며 "팬슈머의 관여 열기가 기획과 제조, 유통과 홍보 등 시장의 전반적인 과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