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사업인 반도체 경기 침체, 중국 화웨이 스마트폰의 위협, 글로벌 IT 기업의 총공세….

삼성전자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16일부터 닷새간 경기도 수원 본사와 화성 사업장, 용인 인재개발원에서 '하반기 글로벌 전략회의'를 개최한다. 삼성전자 글로벌 전략회의는 매년 6월과 12월 상·하반기에 전 세계에 나가 있는 해외 법인장과 부문별 주요 임원을 모아 사업 현황을 점검하고, 미래 전략을 짜는 핵심 회의다. 이번 전략회의에는 400여명이 참석했다. 올해 글로벌 전략회의는 예년과 다른 분위기다. 보통 하반기 글로벌 전략회의는 연말 정기 인사 이후 새로 사업을 책임지는 수장들이 모여 다음 해 전략을 짠다. 하지만 올해는 삼성그룹 전체 인사 없이 진행된다. 인사 없이 글로벌 전략회의가 열린 건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진 2016년 이후 3년 만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올해도 참석하지 않는다.

◇3년 만에 인사 없는 글로벌 전략회의

삼성그룹은 매년 12월 중순 전에 정기 인사를 했다. 계열사별로, 사업 부문별로 새로운 수장이 임명되거나 기존 수장이 자리를 지키면서 다음 해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챙기는 방식이었다. 11월 말~12월 초 일찌감치 정기 인사를 끝낸 다른 주요 그룹과 달리 삼성그룹은 아직 정기 인사를 하지 않았다. 국내 4대 그룹 중 유일하다. 정기 인사 없이 삼성전자 전략회의가 열리는 건 '최순실 게이트' 검찰 수사가 한창이던 2016년 말 이후 처음이다.

재계에서는 국내외 위기 속에서도 삼성 인사가 늦어지는 것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잇따른 형사공판 일정에서 찾는다. 지난 9일 삼성바이오로직스 증거인멸 관련 1심 공판에서 부사장 3명에게 실형이 선고됐고, 지난 13일에는 삼성물산 리조트 부문 노조 와해 사건이 그룹 차원의 조직적인 범행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17일에는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설립 방해 의혹 사건 1심 공판이 열린다. 내년 1월 17일에는 이재용 부회장의 국정 농단 사건 관련 파기환송심 4차 공판이 진행되고, 곧이어 파기환송심 최종 결론이 나올 전망이다. 이런 여러 재판에는 이 부회장은 물론 이상훈 이사회 의장,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 정금용 삼성물산 리조트 부문 대표 등과 주요 임원들이 연관돼 있다.

재계에서는 삼성그룹이 재판이 마무리되는 내년 초에 대규모 인사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그룹 차원에서 중요한 재판 결과가 잇따라 나올 예정이어서 사장단 인사를 진행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며 "내년 1~2월이나 되어야 계열사별 인사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위기 대응 위해 머리 맞대

재계 관계자는 "삼성 정기 인사가 지연되면서 글로벌 전략회의도 연기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올해와 내년 시장 상황이 매우 급하게 전개되면서 인사와 무관하게 예정대로 회의를 강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만큼 삼성전자의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뜻이다. 하반기 글로벌 전략회의의 핵심 키워드는 '위기 대응'이다. 삼성전자의 핵심 사업인 반도체 업황은 올해 극심한 부진을 겪은 데 이어 내년 전망도 불투명하다.

메모리 반도체인 D램 가격은 1년 사이 반 토막이 났다. 이는 삼성전자 실적에도 곧바로 영향을 미쳤다. 올 3분기(7~9월) 영업이익은 작년보다 56% 급감했다. 내년 봄부터 반도체 수요가 살아나며 시장이 다소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삼성전자는 여전히 긴장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회의에서 내년 메모리 사업 부문에 어떻게 대응할지 몇 개의 시나리오를 두고 검토할 계획이다. 비메모리 사업 부문에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사업을 키우고, 세계 1위인 대만의 TSMC를 따라잡을 구체적인 전략도 짤 예정이다. 올해 2년 만에 휴대폰 연간 판매량 3억대를 재돌파한 모바일 부문은 내년 출시 예정인 '갤럭시 S11'과 폴더블폰 시장 공략법을 세운다. 본격적인 5G(5세대 이동통신) 시대 개막에 맞춰 중국의 화웨이와 경쟁 중인 5G 통신 장비 시장 전략도 논의할 예정이다. TV·가전 부문에서는 차세대 TV 개발과 생활밀착형 가전 전략,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활용법을 논의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올해는 정기 인사가 나지 않은 상황에서 글로벌 전략회의가 진행돼 예전과 비교해 다소 차분한 분위기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