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0년 이상 주택을 보유한 다주택자에게 집을 팔 퇴로를 열어줬다. 그러면서 종합부동산세 세율을 높이고 다주택자의 세부담 상한을 상향 조정하면서 이들의 보유세 부담은 확 높였다. 주택 취득 10년 미만의 다주택자는 오히려 주택 보유 부담이 커진 셈이다.

정부는 16일 발표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통해 공시가 9억원 이상의 주택 보유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세율을 0.1~0.3%포인트, 3주택 이상 보유자와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에 대해선 0.2~0.8%포인트 인상했다. 과표 94억원(1주택 162억1000만원 초과·다주택 157억8000만원 초과)을 초과하는 경우 최고 4%의 종합부동산세율이 적용된다.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의 세 부담 상한도 기존 200%에서 300%로 확대된다.

10년 이상 집을 보유한 다주택자에게 양도세 중과 배제라는 퇴로를 열어줬지만, 정작 이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 다주택자는 보유세 부담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정부 시나리오대로라면 공시가 20억원어치 주택을 보유한 3주택자 또는 조정지역 2주택자의 종부세는 현행 1036만원에서 1378만원으로 33% 증가한다. 공시가가 30억원 이상이면 2440만원에서 2962만원으로 21.4%, 50억원 이상이면 5248만원에서 6130만원으로 16.8% 높아진다. 공시가가 100억원 이상이면 1억4690만원에서 1억7510만원으로 19.2% 증가한다.

내년 공정시장가액비율이 90%로 올해보다 5%포인트 높아지고, 공시가 시가 반영률도 높아지는 추세라 종부세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종부세는 공시가격에서 9억원을 뺀 다음 공정시장가액비율(현재 85%)을 곱한 값을 과세표준으로 한다. 정부는 이날 "2020년 공시는 시세변동률을 공시가에 모두 반영하고 특히 고가주택 등을 중심으로 현실화율을 우선 높이겠다"고 밝혔다.

특히 서울 등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의 세부담 상한이 기존 200%에서 300%로 높아진 것이 보유세를 바로 끌어올릴 전망이다. 기존 방식대로라면 공시가격과 세율이 올라 보유세 산출세액이 커져도 전년의 두 배까지만 세금이 늘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세 배까지 늘 수 있도록 열려 당장 내년부터 이들의 종부세는 예상보다 더 빠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다주택자에 대한 채찍질만 가한 건 아니다. 다주택자가 조정대상지역에 10년 이상 보유한 주택을 양도하는 경우 한시적으로 양도소득세 중과를 배제하고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적용하는 ‘퇴로’를 마련했다. 이는 17일부터 2020년 6월 말까지 양도하는 주택에 적용된다. 6개월 정도 퇴로를 열어준 셈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한시적 배제보다는 주택 보유에 따른 막대한 부담을 물린 것이 핵심이라고 보고 있다. 공시가격 현실화로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부담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절세 혜택을 노리는 매물이 나오면 거래에 숨통이 트이고 집값 상승세가 꺾일 가능성도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1세대 1주택자의 장기보유특별공제에 거주기간을 요건으로 추가하면서 다주택자도 양도세 중과 배제라는 기회를 준 것으로 보인다"며 "단 10년 이상 보유한 사람들에게만 이런 퇴로를 열어주며 장기보유에 따른 인센티브를 줬는데, 이런 매물이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조정대상지역 다주택자들은 내년 6월 말까지 집을 매각하면 양도세 중과를 피할 수 있어 10년 이상 보유한 주택을 중심으로 매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