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멧돼지가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을 옮기는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안팎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멧돼지 포획·사살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멧돼지를 잡아 ASF 전파를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산과 저 산을 거침없이 이동하는 멧돼지를 모두 잡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방법보다는 산에 사는 멧돼지들이 돼지농장이나 민가 근처로 내려오는 것을 막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다."

멧돼지 포획전문가 이종본씨가 자신이 개발한 포획틀을 이용해 잡은 멧돼지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멧돼지 포획 전문가 이종본(56)씨는 "ASF 확산 방지를 위해 정부가 선택한 ‘무차별적인’ 멧돼지 사냥에 대해 회의적"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급습한 지난 11일 경기도 양평군 옥천군의 한 농가. 농장 한켠에 놓인 사각의 포획틀에 몸통길이 1m 남짓한 멧돼지가 갇혀 있었다. 얼굴은 집에서 키우는 돼지보다 길었다. 전체적으로 사납고 거칠어 보였다. 오랜 기간 운동한 복서 같은 느낌이었다. 이 녀석은 기자를 보자마자 경고라도 하듯 ‘씩씩’ 거친 숨소리를 내쉬었다. 이를 무시하고 틀에 가까이 가자 중저음의 ‘꿱 꿱’ 소리를 냈다. 순식간에 주둥이로 포획틀을 ‘꽝’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들이 받았다. 틀에 갇힌 멧돼지였지만 섬뜩했다.

돼지 사육농장에서는 잠잠하지만 야생 멧돼지 사체와 생체에서 빈번하게 발견되는 ASF 확산을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해 멧돼지 포획전문가 이종본씨를 만났다.

그는 원래 토종벌을 키우고, 고로쇠 수액·산나물·장뇌삼 등을 채취하거나 재배하는 산골 농부였다. 하지만 2년 6개월전부터 20년 이상 하던 일을 접었다. 대신 멧돼지 포획틀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한다. 이씨가 직접 만든 포획틀로 잡은 멧돼지는 모두 130여마리에 달한다. 1년에 50마리 이상의 멧돼지를 포획한 셈이다. 내로라 하는 포수들도 어려운 전국 최고 수준이다.

이씨는 잡은 멧돼지를 손질해 동네 노인정에 드리거나 이웃들과 나눠 먹는다. 포획한 멧돼지의 경우 자가소비할 수 있지만 영리를 목적으로 팔 수 없기 때문이다. 매립이나 소각도 정부가 지정한 곳에서만 가능하다.

이씨가 영리를 목적으로 팔지도 못하는 멧돼지를 잡는 이유가 궁금했다. 또 ASF 확산의 주범으로 인식되는 멧돼지를 어떻게 관리해야 효율적인지에 대해서도 들었다.

멧돼지를 포획하게 된 배경은.

"고향이 경기도 양평이고, 20여년 전부터 산을 임대해 농사를 지었다. 늦겨울과 초봄 사이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고, 토종벌도 많게는 150통쯤 키웠다. 또 틈이 날 때마다 임대한 산에서 나물을 뜯고 버섯을 따 돈을 벌었다. 그런데 토종벌의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이라고 불리는 봉화낭충부패병이 퍼지면서 기르던 토종벌이 모두 죽었다. 지구온난화로 겨울 평균 기온이 올라가면서 고로쇠를 채취할 수 있는 기간도 과거의 절반으로 확 줄었다. 설상가상, 천적이 없어지면서 급증한 멧돼지가 고로쇠 수액 채취를 위해 설치한 호스와 수집통을 모조리 망쳐놓기도 했다. 한 해 농사를 망치면서 고로쇠 수액 채취 농사를 포기했다. 멧돼지가 너무 미웠다. 이후 포획틀을 만들어 멧돼지를 잡기 시작했다."

팔지 못하면 잡은 멧돼지를 어떻게 처리하나.

"사냥 관련 법에 따르면 포획한 멧돼지는 자가소비할 수 있지만 팔 수 없다. 잡은 사람이 집에서 먹거나 남에게 나눠줄 수는 있다. 그래서 포획한 멧돼지는 집에서 주로 소비하거나 동네 어르신들이나 이웃들에게 공짜로 나눠주고 있다."

그럼 생계를 어떻게 유지하는가.

"사실 경제적으로 한동안 어려웠다. 사실 지금도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내가 만든 멧돼지 포획틀의 성능이 우수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멧돼지 피해를 많이 본 농가의 주문이 늘고 있다. 직육면체 철재 포획틀 1개 가격이 100만원쯤 하는데 이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처음에 포획틀을 만들기 쉽지 않았을텐데.

"20여년간 산에 기대 생계를 유지하면서 멧돼지를 많이 봤다. 하지만 말 그대로 그냥 봤을 뿐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안했다. 멧돼지를 잡는 방법도 전혀 알지 못했다. 고로쇠 수액 채취를 망치는 멧돼지를 잡아야겠다고 결심한 이후 멧돼지 포획틀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포획틀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만든 포획틀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시험하다가 오른손 검지손가락이 잘릴뻔한 적도 있다.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도 마음처럼 멧돼지가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멧돼지 생태를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그리고 이를 포획틀에 적용하니 멧돼지가 하나둘 잡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멧돼지가 살고 있는 것만 확인되면 100% 잡을 수 있다. 틀을 설치한 뒤 멧돼지가 잡히는 시간도 점점 짧아지고 있다. 빠르면 2~3일이면 멧돼지가 잡히기도 한다."

어떤 원리를 적용했나.

"돼지처럼 멍청하다고 하지만 멧돼지는 사람으로 치면 5살 아이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똑똑하다. 후각이 예민해서 쇠 냄새도 잘 맡는다. 초기에는 쇠로 만든 틀에 잘 들어가지도 않았다. 유인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틀에 들어간 멧돼지가 나오지 못하도록 가두는 것보다 멧돼지를 포획틀 안으로 유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멧돼지를 유인하는 방법은 산에서 사는 멧돼지가 염분을 섭취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 착안했다. 멧돼지가 먹이를 구하기 위해 민가 근처로 내려와 농작물에 피해를 끼치고, 질병을 옮기는 것은 민가 근처에서 염분을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멧돼지가 포획틀 안에서 염분을 섭취할 수 있도록 해 유인한다."

포획된 멧돼지가 갈기를 세우며 기자를 경계하고 있다.

멧돼지가 ASF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철책을 설치하고 총기 사냥을 허용하는 등 대대적인 개체수 줄이기 작업이 진행 중이다.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나.

"멧돼지는 많게는 30~40마리가 모계 중심의 집단을 이룬다. 이 녀석들은 하루에 40~50km를 이동할 정도로 건강하다. 건강한 녀석들이니 질병에 잘 걸리지도 않는다. 워낙 도망도 잘가고, 주변환경에 예민해 총을 이용해도 잡기가 쉽지 않다.

골칫거리는 건강하지 못해 무리에서 퇴출된 뒤 한 곳에 머무는 토착화된 멧돼지들이다. 이 녀석들도 짝짓기를 하고 토착화된 무리를 이루기도 한다. 토착화된 녀석들은 운동량이 많은 멧돼지들보다 상대적으로 면역력이 약하다. 부모로부터 야생에서의 생존기술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먹이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다. 민가에 접근하고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것은 주로 이 녀석들이다.

나는 이 녀석을 대상으로 포획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토착화된 녀석들도 잡기가 어렵다. 건강하지 못해 무리에서 퇴출됐다고 하지만 이 녀석들도 위험에 처하면 2m 정도의 철조망을 어렵지 않게 뛰어 넘는다. 철조망 아래 땅을 파고 도망치기도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멧돼지 개체수를 줄여 ASF 확산을 막는 것도 좋지만 ASF에 걸린 멧돼지가 양돈장이나 민가에 내려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양돈장이나 민가로 내려 오는 멧돼지들의 접근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산에서는 염분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 멧돼지를 포함한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다. 이 점을 활용하면 좋다. 멧돼지가 염분 섭취를 위해 민가나 양돈장 근처로 내려올 일이 없도록 산에 비가림 시설을 해놓고, 소금 덩어리를 땅에 묻어 멧돼지들이 그 땅을 파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