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 거리 곳곳에 공장 매각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지만, 첨단소재 제조 기업 풍원정밀 옆에선 연면적 5000㎡ 규모의 제2공장이 지어지고 있었다. 이 회사는 올해 초 스마트폰 화면으로 쓰이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전류가 흐르면 빛을 내는 유기물질) 패널 생산에 필수품인 파인 메탈 마스크(Fine Metal Mask·FMM)를 개발했다. 유명훈 풍원정밀 대표는 스마트폰 화면 크기의 FMM을 들어 보이며 "이 작은 판에 눈에 보이지 않는 구멍이 440만개 있는데, 그 구멍의 크기가 일정치 않거나 하나라도 막히면 스마트폰은 불량품이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11일 경기도 안산의 첨단 소재 제조 기업 풍원정밀 생산라인에서 유명훈 대표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생산에 필요한 파인 메탈 마스크(FMM)의 원료인 금속 박막을 살피고 있다.

풍원정밀은 일본이 석권하고 있는 FMM 시장에 독자 기술로 도전하고 있다. 지난 9일 중소벤처기업부는 국내 기업의 소재·부품·장비 분야 기술 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강소기업 100 프로젝트'의 대상 기업으로 풍원정밀 등 55곳을 선정했다. 선정된 업체는 앞으로 5년간 기술 개발과 사업화 등에 최대 182억원을 지원받는다. 올해 선정하지 않은 나머지 45곳은 내년에 추가로 선발된다. 유 대표는 "정부 지원 덕분에 국산 FMM 양산 체제 구축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잠깐 뒤처지고 10년 잃어버려

1996년 문을 연 풍원정밀은 2000년대 초반 수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PM OLED)용 FMM을 내놓으며 시장을 주도했다. OLED 패널에 FMM을 대고 그 위에 화소형성 소재를 뿌리면, 촘촘한 구멍 수백만 개를 통해 소재가 패널에 안착한다. 이 소재가 전류를 받으면 다양한 빛을 내며 생생한 영상을 구현한다. 풍원정밀은 2005년 기준 글로벌 PM OLED FMM 시장의 90%를 석권했다.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이 등장하며 OLED 역시 빠르게 진화했다. 작은 화면에 생동감 있는 영상을 구현하기 위해선 그만큼 높은 사양의 FMM이 요구됐다. 유 대표는 "당시 우리가 만들던 FMM의 구멍 수는 지금 개발한 제품의 5분의 1 수준"이라며 "2008년쯤 고사양 FMM 개발을 위한 공격적인 연구·개발을 했어야 하는데, 자금 부족으로 때를 놓쳤다"고 했다.

실기(失期)의 대가는 컸다. "2008년 이후 스마트폰용 FMM 시장은 일본의 다이닛폰프린팅(DNP·대일본인쇄)에 모두 빼앗겼다"고 했다. 2000년대 초반 80억원에 달하던 연매출은 2009년 30억대까지 떨어졌다.

"日에 뺏긴 시장 찾아오겠다"

유 대표는 절치부심(切齒腐心)하며 스마트폰용 FMM 개발에 나섰지만, 첫 단추부터 쉽게 꿰이지 않았다. 개발을 위해선 스마트폰용 FMM의 원료가 되는 금속 박막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하는데, 종이보다 얇은 25㎛(마이크로미터) 두께의 박막은 일본의 히타치금속이 사실상 독점 생산하고 있었던 것. 히타치금속은 박막을 다이닛폰프린팅에만 판매했다. 유 대표는 "그러나 대기업인 현대비앤지스틸의 도움으로 현재의 FMM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했다. 현대비앤지스틸 정일선 사장이 풍원정밀의 사정을 듣고 "국가 산업 발전을 위해 우리가 손실을 보더라도 FMM용 박막을 개발해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애써 개발했는데 품질에 대한 시장의 눈높이가 높아지며 FMM을 다시 개발한 경우도 많았다. 유 대표는 "무엇보다 FMM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 업체가 OLED 업체들로 하여금 우리와 계약을 하기 어렵게 한 측면도 컸다"고 주장했다. 풍원정밀은 2013년 OLED TV용 금속박(Metal Foil)을 개발하며 연매출이 400억원대로 성장했고, 이를 통해 생긴 자금력을 FMM 개발에 쏟아부었다. 풍원정밀은 지난 2017년 이후에만 매년 80억원씩 FMM 설비투자를 단행했다. 풍원정밀 측은 "이미 주요 스마트폰 제조사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며 "조만간 양산에 들어가 일본 기업에 빼앗겼던 FMM 시장을 되찾을 것"이라고 했다.

☞FMM(파인 메탈 마스크·Fine Metal Mask)

TV·스마트폰의 화면으로 쓰이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생산에 필요한 정밀 소재. 얇은 금속 박막에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구멍이 일정하게 뚫려 있다. OLED 패널에 FMM을 대고 화소형성 소재를 뿌리면 일정한 크기와 간격으로 화소형성 소재가 패널 표면에 안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