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합의 일방 파기는 현장 탄압이다!"

10일 현대차 노조가 사측을 규탄하는 성명을 내고 "오는 토요일(14일) 특근을 거부하고 18일 회의를 열어 향후 투쟁 계획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노조의 투쟁 명분은 '와이파이(무선 인터넷망)'다. 앞서 지난 2일 현대차 감사팀이 '안전 문제'를 이유로 '작업 시간 와이파이 차단'을 통보한 뒤, 지난 9일부터 시행에 들어가면서다. '안전'이란 이유는 바로 다수 직원이 작업 중 휴대폰 동영상에 몰입하면서 생산성이 떨어지고 사고 위험까지 생길 수 있다는 판단이다. 현대차 노조는 "2011년 노사 합의에 따라 설치된 와이파이는 전일 사용을 전제로 한다"며 원상 복구를 요구하고 나섰다. 현대차 생산 현장에서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올려치기·내려치기' 한 뒤 동영상

"휴대폰으로 축구 보다가 차가 오면 재빨리 조립하고, 다시 축구를 보더군요."

최근 현대차 울산공장을 방문했던 한 정계 인사는 본지에 "열이면 열, 상당수가 놀면서 일하고 있었다"며 "컨베이어 벨트가 정말 느리게 돌아갔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작업대에 휴대폰이나 태블릿 PC까지 올려놓고 영화·유튜브 등 각종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며 "외부인 앞에서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에 놀라웠다"고 말했다.

현대차가 울산공장(사진) 내에 설치한 와이파이를 끊겠다고 노조에 통보하자, 노조가 10일 “현장 탄압”이라며 규탄 성명을 냈다. 현대차는 작업시간에 휴대폰 동영상에 몰입하는 직원들이 많다고 보고, ‘안전 문제’를 들어 지난 9일부터 차단하고 있다.

이번 '와이파이 사태'에는 현대차 국내 공장의 경쟁력이 여지없이 투영된다. 현대차 국내 공장에는 '올려치기, 내려치기'라는 말이 있다.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면서 작업자에게 자동차가 다가오면, 5~6대를 빠르게 한꺼번에 조립하는 것이 '내려치기'다. 그러면 한참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이번엔 자동차가 5~6대 이미 지나가 있을 때, 뒤에 있는 차부터 앞차까지 빠르게 조립한다. '올려치기'다. 이런 느슨한 작업이 가능한 것은 컨베이어 벨트 속도가 느리고 잉여 인력이 많기 때문이다. 현대차 울산 공장은 차 한 대당 투입되는 노동시간이 28시간으로, 현대차 인도 공장(17시간)에 비해 11시간 길다.

또 울산공장의 편성 효율은 55% 수준으로 100명이 할 일을 200명이 하는 수준이다. 현대차 미국·인도·체코·터키 등 다른 해외 공장들의 편성 효율은 90%가 넘는다. 100명이 할 일을 110명 정도가 한다는 얘기다. 김용진 서강대 교수는 "동영상 보며 작업하는 곳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며 "현대차 국내 공장은 전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기이한 공장'"이라고 말했다.

경쟁사들은 '스마트 공장' 위한 와이파이 까는데

현대차가 2011년 범용 와이파이 설치를 하게 된 건 직원들의 요구 때문이었다. 와이파이가 없어도 개인이 데이터 요금을 지불하면 동영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대용량을 반복해서 다운 받으면 요금이 비싸지니, 노조는 이를 '직원 복지' 차원에서 요구한 것이다.

그래픽=양진경

현재 국내 다른 완성차 업체들의 공장에는 이런 범용 와이파이를 깐 곳이 없다. 현대차 해외 공장에서도 찾기 어렵다. 오히려 작업 중 휴대폰 사용을 금지하는 공장이 대부분이다. 현대차 미국 공장 직원들은 휴대폰을 개인 사물함에 넣어 놓고 작업에 임한다. 현대차 인도 공장에선 휴대폰 소지는 가능하지만 게임·동영상은 금지된다.

국내 다른 완성차 업체들 공장에서도 동영상 보며 일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한국GM은 휴대폰 사용이 금지돼 있고, 르노삼성·쌍용차는 알아서 휴대폰 사용을 자제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최근 글로벌 경쟁사들은 '스마트 공장'을 위해 공장 내 무선 인터넷망을 깐다. 단, 현대차가 설치한 범용 와이파이가 아니라, 제한된 구역에서 제한된 인력만 접속이 가능하도록 하는 폐쇄적 통신망이다. 공장 기계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한편, 내부 직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본지가 지난해 방문했던 전 세계 생산성 1위(2016 하버리포트), 르노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은 매니저들이 태블릿PC로 공장 운영과 관련된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기 위해 와이파이를 설치해 놓고 있었다. 그러나 작업 중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직원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이 같은 와이파이 사태에 대해 이상수 현대차 노조위원장 당선자(1월 취임 예정)는 "필요하면 노사 합의를 통하면 되는데 회사가 일방적으로 통보해 전국적으로 이슈화돼 창피하다"며 "품질은 현대차를 사랑하는 사람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지, 와이파이 접속 차단한다고 비용을 아끼거나 품질을 높이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