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2월 첫째 주…올해는 "언제 날지 모르겠다"
인사 미뤄질 때마다 대규모 물갈이·조직개편 있어
'60세 룰' 적용되는 계열사 CEO만 11명

삼성그룹의 사장단 및 임원 인사가 미뤄지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은 통상 12월 첫째 주 수요일에 다음 해 사장단 인사를 발표해왔는데, 올해는 언제 인사가 날 지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등 주요 계열사 안팎에서는 조직 개편을 동반한 대규모 인사 가능성을 점치는 관측도 나온다.

당초 재계는 삼성이 12월 초에 사장단 인사를 낼 것으로 보고 있었다. 12월 첫 수요일에 인사를 내던 관행을 감안하면, 지난 4일께를 예상하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지난주에 접어들면서 "언제 인사가 날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삼성 내부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올해를 넘겨 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실정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삼성 사옥.

2010년 이후 삼성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12월 초 즈음에 사장단 및 임원 정기 인사를 발표해왔다. 사장단 인사를 먼저 하고 3∼4일 뒤 후속 임원(부사장 이하) 인사, 다시 3∼4일 후 주요 계열사 조직개편을 단행하는 방식이다. 2000년대에는 1월 중순경에 해왔는데, 지난 2010년 3월 이건희 회장이 경영일선에 복귀한 뒤부터는 40일 가량 앞당겨졌다. 2017년에는 11월 중순, 2018년에는 12월 초에 발표가 이뤄졌다.

삼성의 임원 인사가 언제 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이 된 이유로는 먼저 이재용 부회장과 주요 임원이 연루된 재판이 이번달과 내년 1월에 줄줄이 있는 것이 꼽힌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국정농단 뇌물사건’ 관련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련 재판은 오는 9일에는 증거인멸 관련 1심 선고가 내려지고, 내년 1월에는 분식회계 관련 재판이 시작된다. 재판 진행 상황을 지켜보다가 그에 맞춰 이달 하순 이후 임원 인사를 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반면 재판과 상관없이 인사가 날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한 재계 관계자는 "임원 몇 명이 재판에 엮여있다고 조직 전체 방향을 좌우하는 인사를 미룰 수는 없을 것"이라며 "검찰 수사 및 재판이 진행되면 관련 임원들이 업무에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장기간 그러한 상황을 방치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재판 때문에 인사 필요성이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정현호 사장이 이끄는 사업지원TF의 경우 상당수 임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에 엮이면서 업무 수행 능력이 뚝 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사가 미뤄지면서 사장단 및 임원 인사 폭이 커질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인사 폭이 커지면서 발표 시점이 순연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광폭 인사설’이 나오는 배경 가운데 하나는 지난해 인사가 소규모로 그쳤던 것이다. 2018년 인사에서 삼성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는 모두 유임됐다. 승진 인사도 사상 최소 규모였다. 2년간 최고위 임원 구성이 바뀌지 않았다는 얘기다.

대규모 인사 이동 및 CEO 교체가 없을 경우 상당수 조직은 3년 연속으로 같은 인물이 이끌게 된다. 늘 변화와 신상필벌(信賞必罰)을 내세워 조직 내 긴장을 유지해왔던 삼성 입장에서 그런 상황을 가급적 피하려 할 것이다.

그동안 인사를 미룰 때마다 대규모 조직 개편과 고위 임원 교체가 있었던 것도 올해 인사 폭이 클 것이란 의견에 힘을 싣고 있다. 삼성이 인사 시기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2008년, 2011년, 2016~2017년이었는 데 그때마다 인사폭이 컸다.

2008년에는 그해 4월 발표한 조직 쇄신안에 맞춰 5월에 대규모 인사가 있었다. 2011년에는 총 6차례 계열사 사장 인사가 있었고, 주력 계열사 삼성전자는 7월에 임원인사를 냈다. 그 전해에 복귀한 이건희 회장이 경영 체제 정비에 나서면서다.

최순실 씨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뇌물 사건이 터진 2016년에는 인사가 다음 해 5월로 미뤄졌는데, 미래전략실 해체를 비롯한 대규모 조직 개편이 동반됐다.

삼성 사장단에 적용되어 온 ‘60세 룰’도 대규모 사장단 교체 가능성을 높이는 이유다. 삼성은 그동안 사장급 이상 최고경영자(CEO)가 만 60세 이상이 되면 대부분 일선에서 물러나게 했다. 현재 삼성 계열사 CEO 중에서 2020년에 60세 룰이 적용되는 사람은 11명에 달한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61세)을 비롯해 이영호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60세), 현성철 삼성생명 사장(59세), 전영현 삼성SDI 사장(59세), 남준우 삼성중공업 사장(61세), 이윤태 삼성전기 사장(59세), 홍원표 삼성SDS 사장(59세),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59세), 최성안 삼성엔지니어링 사장(59세), 육현표 에스원 사장(60세),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62세) 등인데 이들 중 상당수는 교체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사장단이 대거 바뀌면 임원 인사 폭도 커질 수 밖에 없다.

삼성이 순차적으로 인사를 낼 가능성도 있다. 이달 10일께부터 다음 달까지 두세 번에 걸쳐 인사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전자, 금융, 물산 등 계열사별로 나눠서 사장단 및 임원 인사를 하는 방안도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