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기업협회 "국내 콘텐츠사업자 역차별 키우는 가이드라인" 비판

정부가 약 1년 간의 준비를 통해 ‘공정한 인터넷망 계약 가이드라인’을 내놨지만 모호해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당사자인 인터넷업계는 가이드라인 제정 자체를 반대하고 있고, 통신업계도 가이드라인에 담긴 구체적인 내용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5일 방송통신위원회와 김성태 의원(자유한국당),변재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공정한 인터넷망 이용계약에 관한 가이드라인’ 제정방안 공청회를 개최했다.

국회에서 5일 ‘공정한 인터넷망 이용계약에 관한 가이드라인’ 제정방안 공청회가 열렸다.

◇가이드라인 제정 이유는

이날 반상권 방통위 이용자정책총괄과장은 "그동안 국내외 인터넷 사업자 간 망 이용조건 차별 논란 등 망 이용계약 과정에서 사업자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행위가 문제였다"며 가이드라인 제정 배경을 설명했다.

네이버·카카오(035720)·아프리카TV등 국내 콘텐츠 제공사업자(CP)가 KT(030200)·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032640)등 인터넷서비스 제공사업자(ISP)와 망 이용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해외 CP보다 불리한 조건에 있다는 것이다.

망은 온라인상에서 콘텐츠를 전송하는 도로의 역할을 한다. 그동안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국내 업체만 망 이용료를 내고 넷플릭스, 구글 등 해외 업체들은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구글 등 대다수 글로벌 CP는 국내 통신사가 제공하는 캐시 서버 이용료를 망사용료로 지급하거나 아예 망사용료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

조선DB

망 이용대가는 트래픽, 콘텐츠 경쟁력, 인터넷망 구성 및 비용분담 구조 등 여러 가지 요소에 영향을 받으며 사업자 간 사적 계약을 통해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미 국내에선 망 사용을 두고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방통위는 지난해 3월 국내 통신사와 협의 없이 해외로 접속경로를 변경해 한국 사용자에게 피해를 준 페이스북에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페이스북은 이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최근 승소했다. 또 방통위는 지난달 12일 SK브로드밴드로부터 넷플릭스와 망사용에 대한 갈등을 중재해달라는 재정 신청을 접수받았다.

국내 통신업계는 트래픽을 많이 유발하는 사업자에게 대가를 부담시키고 망 투자를 촉진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동영상을 중심으로 트래픽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 망 사용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인터넷업계는 이미 통신사업자들이 사용자들로부터 콘텐츠를 통해 요금 수익을 올리고 있는만큼 망 이용대가 면제를 주장하고 있다.

반 과장은 "이번 가이드라인은 망 이용 대가에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망 이용계약의 원칙과 절차를 정하고, 불공정 행위와 이용자 피해 방지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가이드라인 주요 내용은

가이드라인 주요 내용을 보면 계약의 원칙으로 계약 당사자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상대 사업자에게 거래상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인터넷망 이용 계약을 체결할 때 이용 대가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 그 사유를 제시하도록 했다.

무엇보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불공정 행위의 유형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가이드라인은 계약 당사자가 상대방의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하는 계약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했다.

상대방의 권리를 제한하는 계약으로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특정계약 수용을 강요하는 경우 △상대방이 제시한 안을 불합리한 사유로 지연·거부하는 경우 △제3자와의 인터넷망 이용계약 체결·거부 등을 요구하는 경우 △계약 당사자가 제3자와 공동으로 상대방에게 경쟁을 제한하는 계약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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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계약 당사자는 본인이 체결한 다른 계약 조건과 비교해 상대방에게 현저하게 불리한 이용 조건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했고, 이면 계약을 요구하는 등 상대방에게 불이익을 주는 조건도 설정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인터넷망 이용계약 과정에서 불공정 행위 여부는 △인터넷망 구성 및 비용분담 구조 △콘텐츠 경쟁력과 사업 전략 등 시장 상황 △대량구매·장기구매 등에 의한 할인율 등을 기준으로 판단하도록 했다.

이밖에 인터넷 트래픽 경로 변경이나 트래픽 급증 등으로 이용자 콘텐츠 이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예상되는 경우 콘텐츠 사업자는 통신 사업자에게 사전에 관련 정보를 제공하도록 했다.

방통위는 이후 논의 과정을 거쳐 이달내에 가이드라인을 확정할 계획이다. 가이드라인이 제정되면 1개월이 지난 날부터 시행된다.

◇가이드라인 실효성 의문

하지만 업계에선 가이드라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통신업계는 정부의 망이용계약 가이드라인 제정 취지에 공감하나, 이번 망이용계약 가이드라인이 콘텐츠사업자에 대한 품질수준 유지 의무 부분을 보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윤상필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대외협력실장은 "가이드라인이 망 이용계약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국내통신사와 직접 이용계약을 맺지 않고 수익을 올리고 있는 해외 콘텐츠사업자에는 규제가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망 이용계약 가이드라인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에 한계가 있는 만큼 가이드라인 제정에 그치지 않고, 관련 법 마련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네이버 사옥 전경.

이번 조치가 가이드라인이다 보니 글로벌 사업자가 지키지 않는다고 이를 제재할 수 없는 만큼 결국 네이버나 카카오 등 국내 사업자만 잡는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관련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김재환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정책실장은 "방통위는 해당 가이드라인을 두고 국내외 기업간 역차별을 해소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나,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며 "오히려 국내 CP에 과도한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역차별을 가중시키는 가이드라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또 김 정책실장은 "이번 가이드라인은 CP가 통신사와 계약을 하면 무조건 비용을 지급해야 하고, 그 비용은 인상을 예정하고 있다는 통신사업자 중심의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어 통신사의 이익을 위한 맞춤형 가이드라인"이라고 강조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사업자 등은 '트래픽 급증 등이 예상되는 경우 통신 사업자에게 사전에 관련 정보를 제공하도록 한 조항'에 대해 "과도하고 초법적인 조치"라고 반발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이 가이드라인이 망 이슈와 관련한 최소한의 기준이 될 수 있지만, 관련 법령 개정 등 법체계 마련과 함께 지속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