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구글의 한 시대가 저물었다.
1973년생 동갑내기로 구글을 함께 창업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마흔여섯 나이에 동반 은퇴를 선언했다. 두 사람은 3일(미국 현지 시각) 자신들이 맡아왔던 구글의 모(母)회사 알파벳의 최고경영자(CEO)와 사장에서 물러나고 공동 창업자이자 이사회 멤버, 주주(株主)로만 남겠다고 밝혔다.
1998년 실리콘밸리의 월세 1700달러(약 200만원)짜리 차고(車庫)에서 구글을 창업한 지 21년 만이다. 공석이 된 알파벳 CEO는 구글 CEO인 순다르 피차이가 겸직한다. 현재 알파벳의 시가총액은 8933억달러(약 1066조원). 지난 20여년간 구글은 인터넷 검색 사이트와 스마트폰 운영체제(안드로이드), 동영상(유튜브), 지도·메일 등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용자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해 천문학적 광고 수익을 올리는 IT 공룡으로 성장했다. 두 사람도 각각 자산이 70조원인 세계 6~7위 거부(巨富)가 됐다.
◇허름한 차고를 1000조원짜리 기업으로
페이지와 브린은 이날 구글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구글이 사람이라면 이제는 안식처를 떠나야 할 21세 젊은이"라며 "오랫동안 구글 경영에 깊숙이 관여해온 것은 엄청난 특권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는 매일 잔소리하기보다 조언과 사랑을 주는 자랑스러운 부모 역할을 해야 할 때"라고 했다. 페이지와 브린은 알파벳 지분을 각각 5.8%, 5.6% 갖고 있다. 하지만 주(株)당 의결권을 10개 갖는 차등 의결권 덕분에 의결권을 51% 행사할 수 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지만, 여전히 강력한 '입김'을 행사할 수 있는 셈이다. 이들은 "(알파벳·구글 CEO) 피차이와 정기적으로 만나 우리가 열정을 가진 주제에 대해 계속 대화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20대 동갑내기였던 미국 미시간주 출신 페이지와 러시아계 미국인 브린은 스탠퍼드대 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며 처음 만났다. 페이지는 내성적이고 신중한 성격이지만 브린은 외향적이고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활동적 인물이다. 닮은 듯 다른 둘은 단짝처럼 붙어 다녔다고 한다. 이들이 검색 엔진을 개발한 장소는 스탠퍼드대 윌리엄 게이츠 컴퓨터 공학관. MS 창업자 빌 게이츠의 기부로 지어진 건물에서 탄생한 구글이 훗날 MS를 위협하는 거대 테크 기업이 된 것이다. 1998년 창업 당시, 첫 사무실은 두 사람의 친구이자 인텔 직원이었던 수전 워치츠키(현 유튜브 CEO)의 집 차고였다.
구글은 망망대해 같던 인터넷 바다에서 양질의 정보를 재빨리 찾아주는 높은 검색 품질로 소문이 났고, 실리콘밸리 유력 벤처투자자에게서 거액의 투자를 유치하며 급성장했다. 셰프가 제공하는 무료 식사, 자유롭고 창의적인 회사 분위기, 업무 시간의 20%는 딴짓을 하도록 장려하는 '20% 법칙' 등은 구글의 또 다른 상징이 됐다. 2001년 투자자 요구로 전문 경영인 에릭 슈밋에게 CEO 자리를 내준 것도 성공의 요인이었다. 대신 창업자인 페이지와 브린은 수익은 크게 나지 않지만, 인류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실험적 기술을 개발하는 데 몰두했다. 미래 기술 연구 조직인 '구글X', 인류 노화와 질병을 연구하는 칼리코, 자율주행차 회사 웨이모 등이 대표적이다.
◇반독점 조사, 해체론 압박 가운데 은퇴
두 창업자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데는 최근 구글이 처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구글의 초기 모토는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였다. 2015년 모회사 알파벳이 출범하면서 '옳은 일을 하자(Do the right thing)'를 쓰고 있다. 현재 구글은 이런 모토가 무색하게 시장독점, 성추문, 임직원 간 갈등 등 여러 논란에 휩싸여 있다. 미국 연방정부와 50개 주정부가 구글의 반독점 혐의 조사에 나섰고, 유럽연합(EU)도 칼을 빼든 상태다. '안드로이드의 아버지'라는 앤디 루빈의 성추문을 처리하는 과정에 막대한 퇴직금을 안겨준 것이 드러나면서 내부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민주당 차기 대선 주자들도 공공연하게 구글, 페이스북 같은 거대 테크 기업 해체론을 밝히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창업자 두 사람이 물러나며 '구글 2.0'을 전문 경영인에게 맡긴 것이다. 이 때문에 '쇄신을 위한 퇴진'이란 평가와 함께 '책임 회피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구글 직원들 사이에서는 "회사가 가장 힘든 시기에 창업자들이 회사를 떠나는 것이 슬프다" "어차피 최근 한동안 창업자들의 존재감이 없었는데 이를 공식화한 것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