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사업에 나선 서울 주요 지역 추진위원회와 조합들이 내부 갈등을 겪으며 사업을 미루거나 아예 사업을 중단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에 대한 정부 수사의뢰 여파로 가뜩이나 어려운 도시정비사업 인·허가가 더 틀어막힐 것으로 보여 이들의 어려움은 가중되는 형국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5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시공사 재입찰을 진행한 은평구 갈현1구역은 현대건설과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현대건설 입찰 무효와 컨소시엄 구성 여부 등을 놓고 조합과 조합원 사이 갈등까지 불거지고 있다. 갈현1구역은 갈현동 300번지 일대를 재개발해 4116가구를 짓는 사업으로, 총 공사비는 9200억원에 달한다.

갈현1구역은 앞서 지난 10월 현대건설의 입찰 서류에 미비한 점이 있다며 입찰 무효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일부 조합원은 조합이 사흘 만에 입찰 무효 결정을 내린 것에 문제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또 조합원들은 시공사 재입찰을 할 때 컨소시엄 형태는 불가하다는 내용을 공고해줄 것을 조합 측에 요구하고 있다. 갈현1단지 재입찰 현장설명회에는 GS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롯데건설 등이 참석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와 은마종합상가 일부 소유주들로 이뤄진 ‘은마아파트 및 은마종합상가 토지등소유자협의회(이하 은소협)’는 추진위원장 해임과 손해배상 청구소송 위임장 서명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은마아파트 재건축 사업이 지연된 데 따른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이 아파트는 1979년에 지어져 2003년 추진위를 설립했다. 국제설계공모까지 진행했지만, 서울시 ‘퇴짜’를 연이어 맞아 16년째 추진위 단계다. 양재천을 두고 마주 보고 있는 개포동 아파트들이 재건축을 통해 새 아파트로 탈바꿈하는 것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사업 진행이 늦어지는 것이다.

송파구 잠실변의 랜드마크격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도 신천초등학교 이전 문제로 교육환경영향평가 심의가 반려된 이후 사실상 재건축 사업이 중단됐다. 이 단지 역시 국제설계공모를 추진했지만, 서울시의 인·허가를 넘어서지 못했다.

현대8차와 한양 3·4·5차 등으로 이뤄진 압구정4구역은 지난달 아예 재건축사업을 중단했다. 지난달 긴급주민총회에서 추진위원장 연임 안건과 내년 사업계획건 등을 부결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은 "가뜩이나 사업 추진이 어려워 10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는 게 재개발·재건축사업인데, 최근에는 정부 규제 강화와 조합원 간 갈등으로 사업이 지연되는 단지가 잇따르면서 더욱 사업 추진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한 소유주는 "당장 인·허가 단계를 하나씩 진행하는 것도 벅차다 보니 사업이 고꾸라지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재건축이 마무리돼도 그동안 들인 시간과 수고, 비용을 감안하면 수익을 냈다고 말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함영진 직방빅데이터랩장은 "시공권 수주를 위해 시공사들이 무리한 경쟁을 벌이다보면 주택시장에 과열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도 재개발·재건축 단지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며 "사업이 지연될 수록 조합원 피해는 늘어나 갈등이 불거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