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배상면 회장의 장녀, 배혜정 (주)배혜정도가 대표 배중호 국순당 대표가 오빠, 배영호 배상면주가 대표가 동생 배 회장의 유작인 ‘우곡주’를 대중화한 ‘우곡생주’로 올해 우리술품평회 대상 수상 무감미료 우곡생주는 물보다 쌀이 많아 걸쭉, 알코올 도수는 10도 ‘유리병 막걸리’ 국내 최초로 내놓아...사업 시작부터 막걸리 고급화 전략 “오빠, 동생도 막걸리 시장 가세했지만 괘념치 않아, 집안 제사 때는 백세주 써”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매년 11월에 공동주최하는 ‘대한민국 우리술 대축제’ 행사의 최대 이벤트는 올해 최고의 전통술을 뽑는 행사다. 우리술의 품질향상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취지다. 올해도 약 100개의 우리술 제조업체가 참가했다.

지난 17일 막을 내린 ‘2019 대한민국 우리술 대축제’에서는 영예의 대상(대통령상)에 ‘세종대왕어주 약주'(농업회사법인 장희)가 선정됐다. 그리고 탁주부문 대상에는 경기도 화성의 배혜정도가에서 만든 ‘우곡생주'가 대상을 차지했다. 우곡생주의 앞글자인 ‘우곡(다시 태어나더라도 누룩 개발에 전념하겠다는 뜻)은 평생을 누룩과 술 개발에 쏟은 고 배상면 회장(2013년 작고)의 호다. 그의 큰 아들이 배중호 국순당 대표, 둘째 아들이 배영호 배상면주가 대표다. 배 회장은 전통술을 현대화한 공이 크다. 이번에 탁주부문 대상을 받은 우곡생주는 그의 장녀인 배혜정 (주)배혜정도가 대표가 만든 술이다. 배혜정도가는 국내 막걸리 시장 고급화의 선두주자로, 우리술 선진화에 앞장서온 술도가의 정신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는 양조장이다. 배혜정 대표의 오빠가 배중호 대표, 동생이 배영호 대표다.

올해 4월에 출시된 우곡생주는 배상면 회장의 유작인 우곡주와 깊은 인연이 있다. "1998년에 아버지가 막걸리 사업을 제게 맡기셨어요. 오빠와 동생은 백세주(국순당 대표상품)와 산사춘(배상면주가 대표상품) 같은 약주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거던요. 그러면서 아버지가 직접 만든 술이 2009년에 나온 우곡주예요. 쌀의 단맛과 유산균의 신맛이 조화를 이룬 프리미엄 탁주입니다. 이번에 대상을 받은 우곡생주는 아버지가 만든 우곡주를 바탕으로 좀더 대중화시킨 술입니다."

경기도 화성에 있는 배혜정도가의 배혜정 대표는 “아버지의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내 이름을 회사이름에 썼다"고 말했다. 그가 손으로 잡고 있는 두 술 중 왼쪽이 선친인 고 배상면 회장이 만든 우곡주, 오른쪽이 배 대표가 만든 우곡생주다.

배혜정 대표는 우곡생주 포장 병에도 이런 사연을 표기해 일반에 알리고 있다. "우곡생주는 일생을 전통주를 위해 헌신한 고 배상면 회장의 생애 마지막 역작인 우곡주를 바탕으로, 딸인 배혜정 대표가 아버지 이념을 계승하여 만든 프리미엄 생탁주입니다."

기자는 2012년에 배상면 회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작고하기 일년 전이었다. 둘째 아들인 배영호 배상면주가 대표가 배석한 자리에서, 고인에게서 한시간 내내 누룩 얘기만 들었던 기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술 맛은 누룩이 결정한다. 세계시장에 당당히 내놓을 명주를 만들 수 있는 누룩을 아직도 만들지 못했다. 최고 품질의 누룩과 술 개발에 마지막 힘을 쏟겠다"는 말씀이었다. 나중에 배영호 대표에게서 들은 얘기지만, "(아버지는)돌아가시기 4시간 전까지도 누룩을 손에서, 머리에서 놓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본인이 만족할 만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양조용 미생물과 술 개발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배상면 회장은 일생을 바쳐 일궈놓은 누룩사업을 장녀인 배혜정 대표에게 넘겼다. 그리고 자신이 마지막으로 개발한 프리미엄 탁주 ‘우곡주’ 역시 딸에게 생산을 맡기면서 막걸리 사업을 지원했다. 배 회장이 우곡주를 만든 것은 2009년. 그러나, 알코올 도수 13도인 우곡주는 높은 도수와 가격(375ml 한병에 1만4000원) 때문에 대중화는 이루지 못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공동주최한 ‘2019 대한민국 우리술 대축제’에서 탁주부문 대상에 배혜정도가의 ‘우곡생주'가 대상을 차지, 배혜정 대표가 수상하고 있다.

우곡주가 나온지 꼭 10년만인 올해 2019년에 배혜정 대표는 우곡생주를 세상에 내놓았다. 대중화에 실패한 우곡주를 감안해, 우곡생주는 도수도 10도로 낮추고 재료인 쌀도 일반쌀(우곡주는 귀한 유기농쌀 사용)을 쓰는 등 가격을 최대한 낮춰 소비자 눈높이에 맞추려고 애를 썼다. 750ml 한병에 6500원. 1000원 정도면 살 수 있는 막걸리 제품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은 가격이지만, 물보다 쌀을 더 많이 사용했을 정도로 생산단가 자체가 월등히 높다. 배혜정 (주)배혜정도가 대표를 경기도 화성의 양조장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기자는 고 배상면 회장, 배중호 국순당 대표, 배영호 배상면주가 대표 인터뷰에 이어 배혜정 대표까지 인터뷰한 드문 이력을 갖게 됐다. 한 집안에서 술 사업을 한 네 사람을 모두 인터뷰한 것이다. 배혜정 대표 만남은 배영호 대표가 연결시켜줬다.

배혜정 대표는 막걸리를 만드는 배혜정도가, 그리고 누룩 중심의 미생물 배양 사업을 하는 한국발효 두 곳의 대표를 맡고 있다. 두곳 다 공장은 경기도 화성에 있다. 배혜정도가 연 매출은 20억원 남짓, 한국발효는 이보다 세배 가량인 50억~60억원 정도다. 한국발효에서 만드는 누룩은 배혜정도가, 국순당, 배상면주가뿐 아니라 전국 대부분의 양조장이 쓰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 상을 받은 우곡생주와 아버님이신 고 배상면 회장의 유작인 우곡주는어떻게 다른가?

"우곡생주는 중소기업청(지금의 중소벤처기업부) 지원을 받아 2년간 연구개발을 거쳐 만든 제품이다. 감미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쌀의 단맛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올 4월에 출시했다. 생탁주이기 때문에 유통기한은 한달이다. 살균처리를 하지 않아 유통기한은 짧지만, 막걸리 본연의 맛을 그대로 즐길 수 있다. 유산균과 효모의 공생발효 작용으로 빚은 프리미엄 생탁주다.

우곡주는 아버님이신 고 배상면 회장님의 마지막 작품(2009년 출시)으로서, 쌀의 단맛과 유산균의 신맛이 맛의 조화를 이룬 프리미엄 탁주다. 살균 탁주로 1년간 유통할 수 있다. 반면에 우곡생주는 신맛이 도드라지지 않고 쌀의 단맛을 극대화한 술로서, 두 제품은 맛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 알코올 도수도 차이가 있다. 우곡주는 13도, 우곡생주는 10도다.

물론 공통점도 있다. 우곡생주 역시 우곡주와 동일한 양조 미생물로 자연의 단맛을 낸 생막걸리로, 회장님의 뜻을 이어받아 ‘우곡생주'라 이름지었다."

경기 화성의 배혜정도가 시음실에 진열돼 있는 배혜정도가 제품들. 6도 막걸리부터 13도 막걸리까지 다양하다. 증류주 ‘로아’도 19도, 40도 2 종류가 있다.

우곡생주, 우곡주의 제조법은?

"우곡생주는 양조 미생물을 이용해서 자연(쌀)의 단맛을 내기 위해 집중한 제품으로 고두밥을 찌고 삼양주(3회 발효)로 담금을 하는데, 쌀의 함량이 물보다 많아 바디감(술을 입 안에 머금었을 때 느껴지는 술의 질감, 농도)이 높다. 농도가 걸쭉해서 뻑뻑하다고 느낄 술이다. 또 대중성을 띄기 위해(가격을 낮추기 위해) 찹쌀이 아닌 일반 멥쌀을 사용했다. 알코올 도수는 10도, 소비자 가격 6500원. 프리미엄 중의 프리미엄 제품인 우곡주는 유기농쌀(강화 매화마름쌀)을 쓴다. 이양주로, 쌀과 물의 함량이 동일한 것이 특징. 쌀의 함량은 우곡생주가 더 많지만 알코올 도수는 우곡주가 높다."

배혜정 대표의 자서전(막걸리 CEO 배혜정)에는 고 배상면 회장이 장녀인 배혜정 대표에게 막걸리 사업을 권하는 대목이 잘 나와 있다.

"혜정이, 너 이제는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 뭔가를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네가 막걸리를 빚어라. 내가 약주를 개발하고 연구했지만 늘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는 건 막걸리야. 막걸리야말로 우리 민족의 혼이 배어 있는 전통주잖니. 나의 꿈은 막걸리다. 막걸리에서 약주가 나오는 거니까."

사업을 하기 전 평범한 주부였던 배혜정 대표는 현대건설 일본 지사장을 지낸 남편을 따라 일본에서 몇년을 지냈다. 그리고 귀국 후인 1998년, 나이 마흔에 막걸리 사업에 뛰어든다. 주류업계 최초의 여성 CEO였다. 배혜정 대표는 "아버지는 막걸리에 대한 애착이 유난하셨다"며 "막걸리 사업을 권하는 아버지 말씀에 별 고민없이 고개를 끄덕인 것이 마흔에 사업을 시작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우곡주 병 라벨에는 글루코아밀라제가 함유돼 있다. 감미료의 일종인가?

"그렇지 않다. 글루코아밀라제는 감미료가 아니라 누룩과 같은 균의 일종으로 미생물로 만든 효소다. 당화를 촉진하는 효소다. 우곡주, 우곡생주 두 제품은 무감미료 제품이다. 그리고 국내 최초의 유리병 막걸리 제품인 ‘부자’ 시리즈는 합성감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제품이다. 자연에서 만든 당(고과당)을 일부 첨가한다."

우곡주, 우곡생주는 값도 비싸지만 파는 곳도 많지 않다. 현재 판매처는?

"우곡생주는 롯데프리미엄슈퍼, 메가마트, 서울시내 백화점에서 판매하고 있다. 우곡주는 판매처가 더 적어 인천공항 면세점, 신라호텔 정도다. 우곡주는 한때 수출도 잘되던 제품이지만 워낙 가격이 높아 대중성은 떨어지는 제품이라 입점했다가도 판매가 잘 안되면 매장철수를 할 수밖에 없어 ‘들어갔다 나왔다’를 여러번 반복해야 했다."

우곡주는 품질, 가격면에서 사케, 와인, 위스키 못지 않다. 시장 반응은?

"아직 막걸리 시장이 그리 크지 않지 않은가. 그래서 우곡주를 맛보면 ‘맛은 정말 좋다'는 반응이 많지만 가격 부분에서는 갸우뚱하는 유통업체, 고객이 많은 게 사실이다. 대중성이 있는 제품이 아닌 건 사실이다. 현재 시중에 가장 많이 팔리는 막걸리의 가격(병당 1000원), 맛(인공적 단맛과 탄산이 강한)에 길들여 있는 막걸리 소비자 입장에선 우곡주가 가격뿐 아니라 맛, 도수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반응은 국내뿐 아니라 외국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외국 백화점에도 들어갔지만, 판매가 안되니까 오래 버틸 수가 없었다. ‘막걸리가 왜 이렇게 비싸지?’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현재 우곡주는 수출실적이 거의 없고, 부자 막걸리 시리즈는 꽤 수출이 되고 있다. 수출이 많을 때는 연간 100만 달러까지 갔었는데, 현재는 20만 달러 수준이다. 우곡주는 프랑스와 홍콩에 소량 수출되고 있다. 요즘 수출 상담이 들어오고 있어 내년에는 다소 나아지리라 기대한다."

배혜정 대표를 만난 후 돌아와 우곡주와 우곡생주 맛을 봤다. 먼저, 알코올 도수 10도인 우곡생주. 우곡생주는 투명한 플라스틱 병에 들어 있다. 병 윗부분을 하얀 종이천으로 감싸 비주얼부터가 고급스럽다. 병을 흔들지 않아도 이미 병 속이 뿌옇다. 그만큼 쌀 성분이 많기 때문이다. 술잔에 따르자 술이 천천히 흘러내린다. 조금 과장하면 걸쭉한 정도가 떠먹는 요구르트에 가깝다. 색깔은 뽀얀 사골국물 같다. 마시기도 전에 코로 쌀의 단맛이 강하게 느껴진다. 한모금 들이킨다. 목 안으로 알코올이 확 들어온다. 단맛이 도드라지지만, 10도인 알코올 도수의 무게가 만만찮다. 750ml 한병에 6500원. 프리미엄 막걸리임에는 틀림 없지만, 지인들과 수다떨며 마실 만큼 편한 술은 절대 아니다. 한두잔 맛을 보는 정도로만 그쳐야 할 것 같다. 우곡생주는 우곡주를 대중화한 술이지만, 우곡생주 역시 대중화는 쉽지 않아 보인다.

올해 대한민국 우리술 대축제’에서 탁주부문 대상을 차지한 배혜정도가의 ‘우곡생주'.

그 다음은 투명 유리병에 담긴, 알코올 도수 13도의 우곡주. 용량도 375ml(1만4000원)로 일반 막걸리의 절반이다. 가격은 10배 이상 비싸다. 색깔은 미색인 일반 막걸리에 가깝다. 걸쭉한 정도는 우곡생주와 비슷하거나 약간 덜하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도수는 더 높은데도 우곡주(13도)는 우곡생주(10도)보다 목 넘김이 훨씬 부드럽다. 13도라는 높은 도수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단맛과 신맛이 각자 도드라지지 않고 적절히 조화를 이뤘기 때문일 것이다.

2009년에 세상에 나온 이 술은 고 배상면 회장의 유작이다. 고인은 평생을 누룩과 술 연구에 바쳤다. 그는 죽기 일년 전인 2012년에, 기자를 만나 "내가 평생을 술과 누룩연구에 몸바쳤지만, 세계시장에 내놓을 명주는 만들지 못했다"며 "죽기 전에 꼭 그런 술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세계를 놀라게 할 술을 끝내 만들지 못했다. 그가 만든 백세주는 전통술의 현대화에는 크게 기여했지만, 품질 면에서는 세계에 내놓을 정도는 못된다. 반면에, 우곡주는 세계명주 반열에 가깝다. 그런데, 과연 우곡주가 배 회장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술인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깊다.

배혜정도가의 첫 제품인 ‘부자’ 시리즈 막걸리는 페트병 일색이던 국내 막걸리 시장에 유리병을 처음 도입했다. 사업 시작부터 고급화 전략을 편 이유는?

"오래 전이지만 남편이 현대건설 지점장으로 근무한 인연으로, 일본에 몇년 살았다. 일본에 살면서 유심히 보니, 일본 사람들은 참 하찮은 것에 대한 존중이랄까, 소소한 것을 오랫동안 소중히 여기고, 이런 전통에 굉장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보고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다. 지역의 오랜 술도 그렇고,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떡, 과자, 찐빵 하나도 굉장한 자부심을 갖는 것 같았다. ‘이 과자는 우리 가문이 수백년째 만들어오고 있다'는 식의 대단한 역사의식과 스토리텔링 같은 것에 감명을 받았다.

처음부터 고급 막걸리 사업에 뛰어들게 된 것은 집안 사정도 크게 작용했다.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오빠(국순당 배중호 대표)나 동생(배상면주가 배영호 대표)에게 ‘고급 막걸리를 만들어라'고 당부했지만 1990년대 중후반 당시만 해도 백세주(국순당 대표상품), 산사춘(배상면주가 대표상품) 같은 약주가 워낙 잘 나가던 시절이라 이미 술사업을 시작한 오빠, 동생은 고급막걸리 만들 엄두를 못내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보고 ‘그럼 니가 한번 해봐라'고 막걸리 사업을 권하신 것이 내 나이 마흔에 막걸리 사업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막걸리 시장에는 늦게 뛰어들었지만 남들과는 차별화된 것을 하자는 생각에서 고급화를 처음부터 지향했다."

경기도 화성에 있는 배혜정도가 양조장 입구. 2016년도에 정부로부터 ‘찾아가는 양조장'에 뽑혔다.

우곡은 고 배상면회장의 호다. 고인께서는 술 맛을 좌우하는 누룩개발에 평생을 바쳤다. 누룩 열정에 관한 고인의 일화를 소개해달라.

"아버지는 자식들과의 대화에도 소재의 99%가 누룩 아니면 술이었다. 내가 막걸리 사업을 시작할 당시 집안의 누룩사업을 나에게 넘기셨다. 그래서 강원도 국순당에 있던 누룩배양 공장을 이곳 경기도 화성으로 옮겼다. 미생물이라는 게 배양 장소를 옮기면 적응하는데 적잖은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화성으로 미생물 공장을 옮긴 초기, 아버지 나이는 이미 80대 초반이었다. 그런데도 거의 매일 공장으로 출근하셔서 계속 미생물 실험을 하셨다. 저녁이 돼도 퇴근도 안하시고 밤 늦도록 미생물 연구에 물두하셨다. 강원도에 있던 미생물 공장이 경기도로 옮기다보니 공기, 물을 비롯한 여러가지 환경이 바뀌었고, 이것들이 미생물 개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아버지가 직접 다 챙겼던 것이다.

이 미생물 개발 회사가 ‘한국발효’이고, 전국 대부분의 양조장에서 이곳 누룩을 쓰고 있을 정도로 양조용 미생물에 관한 한, 최고의 회사가 됐다. 한국발효 매출은 연간 50억~60억 정도 된다. 반면에 막걸리 사업을 하는 배혜정도가는 매출이 연간 20억 남짓이다."

사업 출발은 막걸리가 아닌 누룩이었는데, 막걸리는 어떻게 시작했나?

"막걸리사업의 시작은 정말 미미했다. 미생물공장인 한국발효 한 귀퉁이에서 대표인 나와 직원 한명 이렇게 둘이서 시작했다. 처음으로 내놓은 게 ‘부자’ 막걸리 알코올 16도 제품이다. 국내 최초의 유리병 막걸리였다. 자동병입 시설도 없어 일일이 손으로 병입마감을 했다. 당연히 많이 팔리지도 않아, 일주일에 한번 정도 제품을 만들었다. 지금은 막걸리 제품 수가 십여가지에 이를 정도로 알코올 도수와 맛, 가격도 다양하다."

배상면주가는 동생인 배영호 대표가 선친의 이름을 딴 회사다. 배혜정도가 역시 본인의 이름을 직접 썼다. 그 이유는?

"사업을 시작한 이상 회사를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과 술사업이라는 가업에 대한 긍지 두가지 생각에서, 아예 내 이름을 회사에 넣었다. 아버지 이름은 이미 동생(배영호 배상면주가 대표)이 써버렸고. 내 이름을 회사 명에 넣은 만큼, 내가 만드는 제품에 대한 책임감과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술 사업에 관한 한은 아버지의 명성에 누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막걸리가 ‘중장년층이 주로 마시는 값싼 술’이란 선입견이 컸다. 이를 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들었다. 어떤 제품들이 그 결과물인가?

"고급화 전략 자체가 그런 선입견을 깨기 위해서였다. 부자 막걸리 시리즈 제품이 그 결과물들이다. 가령, ‘부자 자색고구마 막걸리’, ‘부자 포도 막걸리’ 같은 술들은 쌀 외에 고구마, 포도 같은 지역특산물을 첨가해 기존 막걸리와는 색상이 너무 다르고 예쁜 술이었다. ‘부자 자색고구마 막걸리’는 2009년 이명박 대통령 당시 한일 정상 회담 건배주로도 쓰였다.

그리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탁테일(탁주와 칵테일의 합성어)이란 제품이 있었는데,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오방색에서 착안, 다섯가지 색이 들어간 딸기, 매실, 포도, 사과, 바나나 등 과일 막걸리 제품을 만들었다. 이마트에도 납품됐는데, 결정적 패착이 탁테일이 막걸리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색상을 내기 위해 첨가물을 넣었다는 이유로 막걸리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개성 있는 막걸리를 염두에 두고 만든 탁테일이 마트 막걸리 매대에 있지 못하고 눈에 띄지도 않는 귀퉁이에 둘 수밖에 없어, 결국 소비자 선택을 받는데는 실패했다. 막걸리의 다양성을 위해 첨가물을 넣었지만, 첨가물을 넣었다는 바로 그 이유로 막걸리 대우를 받지 못한 어처구니 없는 사례다."

배혜정도가의 주력 제품인 부자 막걸리는 고두밥을 찌지 않고 쌀가루를 발효에 사용하는 생쌀발효법을 쓰고 있다. 그 장점은?

"생쌀발효법은 열처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쌀 본연의 아미노산, 비타민, 식이섬유 같은 영양소가 다른 술에 비해 많이 살아 있다. 또 마실 때 목넘김이 깔끔한 것도 생쌀발효법의 장점이다. 발효 시 사용하는 누룩균주도 일반 술과 다른데, 그래서 숙취를 유발하는 물질이 적게 발생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배혜정도가는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양조장이다. 1대 고 배상면, 막걸리를 제조하는 2대 배혜정,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증류주를 제조하겠다는 3대 김백규 배혜정도가 이사(배혜정 대표 아들)에 이르고 있다. 김 이사는 배혜정도가의 증류주 사업을 맡고 있다. 증류주 브랜드는 ‘로아’. ‘흰 빛깔의 이슬’이란 뜻이다.

배혜정 대표가 아들인 김백규 이사와 제품을 들고 서 있다. 김 이사는 배혜정도가의 증류주 사업을 맡고 있다.

증류주 ‘로아’는 어떤 술인가?

"배, 사과, 포도 같은 지역의 과일을 첨가한 증류주를 만들고 있다. 사과, 포도는 100% 과일 증류주이고, 쌀로 만든 막걸리에 배를 첨가해서 증류한 제품도 있고, 막걸리에 벌꿀을 첨가해 증류한 술도 있다. 알코올 도수는 40, 19도 두 제품이다. 증류주 브랜드명인 ‘로아’는 ‘흰 빛깔의 이슬’이란 뜻이다. 이슬을 모았다는 것은 시간의 정성을 모았다는 것이다. 밤새 드린 정성이 새벽녘에 겨우 한 방울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슬과 같이, 한방울 한방울을 담는 정성의 진수를 담아 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한국적인 느림과 비움, 여유와 풍류를 담은 프리미엄 증류주다."

그러나, ‘로아’는 아직 국내 증류주 시장에 존재감이 별로 없다. 쌀을 베이스로 한 증류주에는 화요, 일품진로, 삼해소주, 문배술 등이 ‘메이저급’이다. 과일 증류주로는 사과 증류주인 추사40, 고구마 증류주인 려25, 오미자 증류주인 고운달 등이 더 알려져 있다.

배혜정도가에서 만든 증류주가 보관돼 있는 숙성실. 연구소 소속 하상형 팀장이 향을 맡고 있다. 증류주 ‘로아’는 19도, 40도 2 종류가 있다.

배혜정도가의 장점은 무엇보다 누룩발효에 있다. 그런데, 로아의 사과증류주, 포도증류주는 누룩을 사용한 막걸리를 증류한 술이 아니다. 회사가 갖고 있는 장점(누룩 막걸리)을 최대한 활용하지 않고 국내 다른 업체들이 이미 수십년 앞서 시작한, 특히 외국에서는 수백년 앞서 있는 과일증류주로 승부하겠다는 것은 다소 무모해 보였다. 하지만, 미래를 어찌 알겠는가?

배혜정도가 술은 과학화, 세분화, 세계화를 지향한다고 했다. 그 의미는?

"과학화의 의미는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미생물의 장점을 최대한 활성화시켜서 전통술을 현대에 맞게 만든다는 것이다. 전통누룩은 품질이 들쑥날쑥하지만, 우리가 쓰는 개량누룩은 품질이 일정하다. 제품의 안정성 또한 과학화와 같은 뜻이다.

세분화는 다양한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술을 만든다는 의미다. 달고 도수가 낮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술, 새콤하면서도 드라이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술, 할 수만 있다면 뚱뚱하고 키 큰 사람을 위한 술까지 세분화해서 제품을 만드려고 애쓰고 있다. 세계화는 당연히 세계적 수준의 술 반열에 들기 위한 꾸준한 연구를 지속한다는 뜻이다."

한 일간지 칼럼에서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전통주 산업의 정책과 지원방안을 체계적으로 수행할 전문기관이 없다고 했다.

"농림축산부가 적잖은 예산을 투입, 전통술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아직 체계화 부분에서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일회성이 강한 정책 집행, 연구를 위한 연구라든지 정책수행에 있어 일관성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 업계가 어떤 애로점이 있어 정부측과 접촉하고 싶어도 어디를 찾아가야 하는지를 알기 어렵다. 관련 기관들이 워낙 분산돼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비효율적인 면이 많다는 생각이다.

이제는 우리 전통주 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해 치밀한 계획과 전략 그리고 많은 투자를 통한 100년 대계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다. 우리술 사업은 종합예술사업으로서 누룩곰팡이개발, 양조용 쌀품질 규명, 현대 양조기술 개발 등의 다양한 연구뿐만 아니라 포장용기, 포장방법, 역사적 스토리, 즉 문화적 요소로서의 전통주 음용방법 등 적재되어 있는 당면과제들이 차고 넘치고 있는 현실이다.

그동안 민간 양조업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이제는 정부 차원에서 개별적인 민간의 노력을 총체적으로 지원할 전통주 전문기관이 절실하다. 전통주를 세계적 명주로 만들기 위한 종합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체계적인 전통주발전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지역특산주 업체 입장에서 볼 때 양조장이 있는 경기도 화성을 벗어난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은 일체 술 재료로 사용하지 못하는 점 역시 아쉽다. 원재료는 지역 것을 쓰고, 술의 다양성을 위한 첨가물은 외국산이 아니라면 다른 지역 것도 쓸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2016년도에 정부로부터 ‘찾아가는 양조장'에 선정된 배혜정도가 체험실에서 방문객들이 술을 빚고 있다.

같은 집안 회사인 국순당과 배상면주가는 상당기간 막걸리 시장에는 진출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막걸리 시장에서 빅 플레이어(big player) 역할을 하고 있다. 가장 먼저, 그것도 막걸리 전문 회사로 출발해 지금에 이른 배혜정도가 입장에서는 다소 아쉽지 않나?

"아쉽다는 생각은 없다. 막걸리를 비롯한 전통술 시장 규모가 워낙 크지 않기 때문에 형제라고 해서 사업영역을 나누고 다른 형제의 사업영역에는 뛰어들지 않는다는 발상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내가 막걸리 시장에 뛰어든지 20년이 지났지만 나부터가 아직 ‘마이너’를 벗어나지 못한 마당에 오빠, 동생한테 ‘막걸리 시장엔 들어오지 마라'고 할 명분도 없다."

배혜정도가 양조장의 탁주 자동 병입 생산라인.

3남매가 각기 술사업을 하는데, 집안 제사 때는 어떤 걸 쓰나?

"형제들이 다 모이는 집안 제사 때 제주는 항상 백세주를 쓴다. 장남(배중호 국순당 대표)이 만드는 술이니까."

향후 신제품 계획은?

“남들과 다른 증류주를 만들 계획이다. 공장이 있는 화성 쌀을 베이스로 한 프리미엄 증류주를 내년에 출시할 예정이다. 아무래도 우리는 남들보다 좋은 양조용 미생물들이 많으니까, 이를 사용한 막걸리를 증류해서,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증류주를 내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