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모 전문 자산운용사 G사에 합류한 1세대 헤지펀드 매니저 K씨는 미국 증시와 한국 증시를 넘나드는 구조의 롱숏펀드(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은 사고(long) 주가가 내릴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은 미리 빌려서 팔아(short) 차익을 남기는 펀드)를 설계했다.

미국 아마존에 투자자금이 몰리면 아마존 주식을 매수하면서 반대로 한국 유통주를 공매도하고, 미국 디즈니 주가가 오를 땐 한국 미디어 콘텐츠주를 공매도하는 방식이다. K씨는 "최근 수년간 수치를 보면 매해 꾸준히 10~30%의 수익을 달성하는 것으로 나왔다"고 했다.

그러나 G사의 상품은 판매사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은행이나 증권사 지점 등 판매사는 "사모펀드 최소 투자금이 3억원으로 상향 조정되고 정부 규제가 잇따르는 상황이라 부담스럽다"고 했다. K씨는 "사고는 은행과 일부 운용사가 쳤는데, 그 피해는 멀쩡히 사업하는 소규모 운용사들이 입고 있다"고 말했다.

26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G사처럼 '회심의 상품'을 준비해왔던 운용사 중 상당수가 판매사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들에게 평가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상황이다.

메자닌(전환사채 등 주식과 채권의 중간 성격인 상품)이나 파생상품은 취급하지 않고 가치주 중심으로 투자하는 A사도 한차례 흥행에 성공했던 펀드의 2호 상품이 판매사와 협의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A사는 "특히 은행은 한번 사고가 터지면 극단적으로 보수적으로 돌아선다"면서 "은행은 이번 사모펀드 사고 때문에 더더욱 '슈퍼 갑'이 됐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투자자들이 사모펀드 상품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판매사들이 소극적으로 나서면서 사모펀드 판매대금이 대폭 줄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신규 설정된 사모펀드 원본은 5조3092억원으로 3개월 연속 10조원 미만을 기록했다. 한 관계자는 "메자닌이나 파생상품이 아닌 순수한 구조의 주식투자형 상품까지 취급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사모펀드 최소 투자금을 현재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것은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사안이다. 이 때문에 아직은 적용되는 규제가 아니지만, 은행 등이 선제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판매사 측은 당연히 조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한 은행 관계자는 "불완전판매 논란이 있다 보니 상품을 권하는 것은 물론 설명하는 것까지 일선에선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상품 하나에 3억원을 투자할 수 있는 고객군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당연히 예전보다는 상품 구성을 적게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이다 보니 연말을 기점으로 사모 전문 운용사 중 상당수가 폐업의 길을 밟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체 275개 자산운용사 중 48%인 133개 운용사가 올해 적자를 기록 중이다. 이 가운데 대부분이 2~3년째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2015년 사모 전문 운용사 문턱이 완화된 후 등장한 사모펀드 중 아직 대형화에 성공하지 못한 운용사들은 대부분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산운용사 전환을 추진하던 투자자문사들도 일단은 지켜보겠다는 분위기다. 메자닌 전문 투자자문사였던 H투자자문은 "사모전문 운용사로 전환해 리테일(개인 대상)을 강화할 계획이었으나 3억원 이상 기준은 너무 높다고 판단해 당분간 투자자문사로 기관 영업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