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61.
올 초 디트로이트 모터쇼(북미국제오토쇼)에서 공개된 신차의 숫자와 20일(현지 시각) 개막한 LA 오토쇼에서 공개된 신차의 숫자를 비교한 것이다. '더블 스코어'다. 업계에선 오토쇼에서 공개되는 신차의 수로 그 위상을 판가름한다. 오랜 기간 북미 지역을 대표하는 최대 모터쇼는 디트로이트 모터쇼였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연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는 글로벌 유수의 자동차 업체들이 참여하면서 '가전(家電)쇼'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세계 최대의 오토쇼로 변모한 지 오래다. 올해는 LA 오토쇼마저 디트로이트 모터쇼를 제치고, 미국 자동차 시장의 연말을 장식하고 있다. 자율주행차·전기차 등 미래차 시대가 열리면서, 자동차 업체들이 IT 기술이 밀집한 실리콘밸리가 있는 캘리포니아로 달려가는 것이다. '금광'을 찾아 수많은 사람이 캘리포니아로 향했던 것처럼, 자동차 시장에서 '뉴 골드러시'가 시작됐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식어가는 美 동부, 떠오르는 美 서부
이날 미국 로스앤젤레스 컨벤션센터에서 개막한 LA 오토쇼엔 완성차 브랜드 32곳을 비롯, 총 65개 부스가 차려졌다. 올 초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불참했던 아우디, BMW, 메르세데스-벤츠, 포르셰, 재규어랜드로버 등이 전부 LA 오토쇼에서 부스를 열고 친환경차와 고성능차 신차를 쏟아냈다. LA 오토쇼의 신차 수는 지난해(38종)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아우디는 중형 전기차 SUV인 'e트론 스포츠백'을 세계 최초 공개했고, BMW는 캘리포니아 부자들을 노린 고성능차인 'M2 그란쿠페'와 'M8 그란쿠페'를 최초 공개했다. 메르세데스-벤츠도 GLE 63 AMG와 GLS 63 AMG 등 고성능 중·대형 SUV를 선보였다. 디트로이트에선 볼 수 없던 차종이 쏟아지자, 업계 관계자는 "수년 전 디트로이트 쇼를 지금 LA에서 보고 있는 것 같다"면서 "요즘 자동차 실세들은 디트로이트가 아닌 LA로 모이는 것 같다"고 평했다.
친환경차들도 대거 등장했다. 포드가 공개한 '머스탱 마하-E' 모델은 전 세계 언론의 큰 관심을 받았다. 미국식 '머슬카'의 대표 주자인 머스탱의 스타일을 계승한 중형 SUV로, 고성능 배터리를 탑재해 최대 483㎞를 달릴 수 있다. 현대차는 투싼의 후속 모델인 PHEV(외부 전기 충전이 가능한 하이브리드차) 버전 콘셉트카 '비전 T'와 부분 변경을 거친 아이오닉 신차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랜디 파커 현대차 미국법인 부사장은 "친환경차 출시는 규제를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과 지구에 좋은 일을 하기 위한 것"이라며 "수소차 넥쏘 등을 앞세워 지속가능한 모빌리티를 선도하는 업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성능 전기차 스포츠카인 '타이칸 4S'를 선보인 포르셰의 올리버 블루메 회장도 "포르셰는 스포츠카이지만 지속가능성도 함께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래차 시대엔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디트로이트 모터쇼가 몰락하고, LA 오토쇼가 떠오르는 건 자동차 산업의 흐름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내연기관차 시대엔 GM·포드·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3' 업체 본사가 모인 디트로이트와 미국 동부가 중심이었지만, 자동차와 IT 기술이 융합한 자율주행차·전기차 시대엔 관련 기술이 밀집하고 수요가 높은 캘리포니아와 미 서부가 새로운 중심축이 된 것이다.
캘리포니아와 네바다는 2010년대 초반부터 자율주행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풀었고, 현재는 60곳이 넘는 IT 기업·스타트업이 관련 기술을 시험하고 있다. 현대차도 이달부터 LA 남쪽 어바인에서 자율주행 로보택시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캘리포니아는 친환경차 분야에서도 미국 내에서 가장 진보적이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환경 보호를 위해 차량 연비를 높이고 배출가스 허용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배출가스가 없는 전기차·수소차 산업을 키우려는 목적도 있는데, 이 때문에 내연기관 산업을 보호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와 소송전까지 벌이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친환경 규제를 따르는 13개 주(州)의 인구를 모두 더하면 미국 전체 인구(약 3억3000만명)의 3분의 1 수준에 달한다. BMW그룹 브랜드·세일즈를 총괄하는 피터 노타 사장은 "미국, 특히 캘리포니아는 친환경차 최대 시장"이라면서 "BMW그룹은 2023년까지 25종의 친환경차를 출시하고, 그 어떤 회사보다 더 많은 친환경차를 미국에서 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년에도 주요 업체들은 CES에 집중하기 위해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불참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디트로이트 모터쇼 사무국은 내년 행사를 1월에서 6월로 옮기기로 최근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