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카카오 주력 사업 넘어 AI 사업에 승부수
미래에셋⋅소프트뱅크⋅SK텔레콤 합종연횡 가속

1990년대 말 창업해 회사를 대기업으로 일군 인터넷 벤처 1세대들이 ‘인공지능(AI)’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AI 분야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투자, 합병, 지분교환, 분사 등 다양한 전략을 과감하게 추진하는 모양새다.

인터넷 포털, 모바일 메신저 등 현재 주력 사업을 넘어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선 AI를 놓칠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넷스케이프의 설립자 마크 안드레센(Marc Andreessen)이 주장한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 치운다(software is eating the world)’는 유명 명제가 ‘AI가 소프트웨어를 먹어 치운다’로 바뀌고 있다고 전한다.

네이버 이해진 AI 비전… 日 소프트뱅크 손잡고 매년 1조 투자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라인(메신저)과 야후재팬(인터넷 포털)의 경영 통합을 결단한 배경엔 네이버를 창업한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의 ‘AI 비전’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네이버가 구상 중인 AI 기술 생태계 마련을 위해선 몸집을 키울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조선DB

라인과 야후재팬 운영사인 Z홀딩스의 경영을 통합하면 AI 사업에 필수적인 데이터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고, 소프트뱅크 창업자 손정의의 비전펀드가 투자한 AI스타트업과 탄탄한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구글, 페이스북, 알리바바 등 미·중 거대 기술 기업과도 맞설 체급이 된다는 분석이다. 라인과 야후재팬의 일본·글로벌 이용자 수를 모두 합하면 2억5000만명에 달한다.

19일 네이버 관계자는 "네이버는 단순한 인터넷 포털을 넘어 전자상거래, 클라우드, AI 분야 강자인 알리바바를 롤모델로 하고 있다"며 "미래에셋과 손잡고 출범한 네이버파이낸셜도 은행 개념이 아니라 커머스(전자상거래) 기반 금융"이라고 설명했다.

라인-야후재팬 통합 법인은 매년 1000억엔(약 1조700억원)을 AI 분야에 투자할 예정이다. 이데자와 다케시 라인 사장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세계 최고의 AI 기술 기업이 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네이버 기술 자회사인 네이버랩스의 석상옥 대표는 지난 10월 28일 코엑스에서 개최한 개발자 콘퍼런스 ‘데뷰(DEVIEW) 2019'에서 "장기적으로 네이버의 AI 연구 벨트가 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을 필두로 한 미국, 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화웨이 중심의 중국 기술력에 견줄 수 있는 새로운 글로벌 흐름으로 부상할 수 있도록 청사진을 그려 나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SK텔레콤 잡은 카카오... AI랩 독립으로 힘 실어

서울대 공대 86학번 동기이자 이해진 GIO와 함께 네이버를 키운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역시 카카오의 지속 성장을 위한 AI의 중요성을 깨닫고 일찌감치 관련 분야에 투자해왔다.

2017년 카카오I(아이)라는 AI 플랫폼을 선보이며 AI 분야에 대한 도전을 시작한 게 대표적이다. 조각조각 시도됐던 AI 기술들을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방향으로 개편하고, 1차 AI 서비스 분야로 정보(검색), 관리(IoT 플랫폼), 엔터테인먼트(멜론 뮤직 등), 커뮤니케이션(카카오톡) 4가지를 설정했다. AI 기술 고도화, 적용 분야 확대, 새로운 시도를 지속적으로 추구한다는 전략이다.

최근 SK텔레콤과 진행한 3000억원 규모의 지분 교환과 관련해서도 김 의장의 ‘AI 빅 피처(큰 그림)’가 영향을 줬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모빌리티(카카오택시-T맵 택시), 콘텐츠(멜론-Flo) 등 AI를 활용하는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출혈 경쟁 방지, 데이터 확보 같은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픽사베이

안재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SK텔레콤의 가입자 3124만명과 카카오 MAU(월 활성 이용자 수, 4417만명)를 합치면 7541만명에 달한다"며 "AI와 게임, 모빌리티, 챗봇, 자율주행 등 양사가 공통적으로 주목하는 중장기 신사업 영역에서 다양한 협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카카오는 다음달 사내독립기업(CIC)인 ‘AI랩’을 자회사 ‘카엔(가칭)’으로 분리해 AI를 기반으로 한 기업 간 거래(B2B) 사업 전반에도 힘을 실을 예정이다.

민간 연구개발 기업인 인공지능연구원의 원장을 지낸 김진형 중앙대 석좌교수는 "네이버, 카카오 등 인터넷 업체들 입장에선 AI가 혁신의 도구이고, 인터넷 사업에서도 활용할 여지가 많다. 구글이 AI 기술을 집중적으로 개발해 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며 "비즈니스 차원에서도 글로벌 기술 업체와 경쟁하려면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고, 합병 등으로 규모를 키우는 전략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