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분쟁 획기적 발전 어려워…저성장 대응할 정부 능력 저하"
"韓정부 재정능력 높게 평가"…국가채무 2022년 GDP 42% 전망
'긍정적' 평가 기업 전무…"수출 환경 악화·과거 과잉 투자 영향"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내년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경제여건을 비관적으로 평가했다. 내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2.1%로 올해(2.0%)보다 높게 제시했지만 올해 수출과 반도체 업황이 크게 악화됐던 '기저효과'의 영향이 크다고 봤다. 또 우리나라 기업들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 추세가 내년에 더 강해질 것으로 본데 이어 업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업종은 하나도 없다는 분석을 내놨다.

무디스는 19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한국신용평가와 공동으로 '2020년 한국 신용전망 컨퍼런스'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무디스는 지난 9월 우리나라의 내년 경제성장률을 2.1%로 전망했고, 국가 신용등급은 2015년 12월 이후 'Aa2(안정적)'으로 유지해오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와 한국신용평가가 19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공동으로 '2020년 한국 신용전망 컨퍼런스'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컨퍼런스에서는 글로벌 경제전망이 정치적 환경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한국은 무역의존도가 높아 이같은 흐름을 피해갈 수 없다고 진단했다. 내년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2.1%로, 올해보다는 높였지만 이는 기저효과와 정부지출의 영향일 것으로 봤다.

크리스티안 드 구즈만 무디스 정부신용평가담당 이사는 "2020년 글로벌 경제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건 정치적 환경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저성장 위험에 대항할 정부의 능력이 저하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올해처럼 수출과 반도체 부문에서 대폭 축소되는 모습이 내년에는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기저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며 "정부지출이 확대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는 부분을 고려해 2020년 미미한 성장을 전망한다"고 했다.

무디스는 올해 우리경제의 가장 큰 위험요인이있던 미·중 무역분쟁이 내년 획기적으로 호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봤다. 최근 1단계 합의에 대한 기대감이 형성되고 있지만 두 나라 간의 무역분쟁이 순수하게 무역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구즈만 이사는 "2020년 글로벌 경제는 미·중 무역분쟁 때문에라도 급격하게 호전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최근 두 나라간의 합의 가능성이 획기적으로 발전되는 형태로 가지는 않을 것이어서 내년에도 글로벌 성장세는 상당기간 둔화된 형태로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

무디스는 우리나라의 재정 능력을 상당히 높게 평가하면서도 국내 정치환경을 리스크 요인으로 지목했다. 구즈만 이사는 "한국의 정책입안자들이 높은 재정능력을 활용해서 외부적인 성장압박을 상쇄하고 있는 것은 제도적인 강점"이라며 "정치적인 갈등이 지속되고 있어 추가경정예산을 비롯한 일부 정책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다만 무디스는 기저효과와 정부지출로 성장률은 소폭 올라가겠지만 이것이 궁극적인 구조개선으로 이어지지는 못할 것으로 봤다. 또 재정확대가 지속되면서 2022년경 GDP대비 국가채무는 42%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했다.

크리스 박 무디스 기업평가담당 이사는 "내년 한국의 성장률 상승은 산업의 구조적인 개선을 가져올 수 있는 요인은 아니다"라며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나 성장압력 등 기업들에게 부담이 되는 요인은 상존해 있다"고 했다.

무디스는 내년 우리나라 산업·기업 전망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무디스가 신용등급을 부여하고 있는 27개 한국 비금융기업(비상장 공기업 제외) 중 단기 전망이 긍정적인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24개 비금융 민간기업 가운데 14개 기업이 '부정적'으로 평가됐다. 미·중 무역분쟁이 수출 환경을 악화시키고 있는 데다 과거 호황기에 기업들이 공격적인 투자를 벌인 것도 현재 개선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또 15개의 주요 업종 중 유통, 자동차, 항공, 철강, 디스플레이를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조선, 메모리 반도체, 정유, 음식료 등 나머지는 ‘안정적’으로 봤다. 주요 업종 중 ‘긍정적’으로 평가된 것은 없었다.

박 이사는 "무디스가 평가하는 27개 기업 대부분이 수출 주도 기업이어서 미·중간 무역분쟁이 이들 기업들의 수익성을 제한할 것"이라며 "반도체, 배터리, 정유 등 많은 업종의 기업들이 지난해부터 공격적인 투자와 기업인수를 해온 것도 부정적인 전망에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무디스는 내년 우리나라 기업들의 등급을 추가적으로 하향 조정할 가능성도 내비쳤다. 저성장 기조에 글로벌 수요부진이 지속되는 데 이어 내수시장이 정체된 가운데 경쟁이 심화되는 흐름도 계속될 것으로 봤다.

유건 한국신용평가 본부장은 "등급 하향조정 기조는 기업의 실적·재무 부진에서 출발했지만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수출 부진, 정체된 내수시장에서의 경쟁심화, 산업 패러다임 변화 등으로 기업의 재무부담이 더 커지고 있다"며 "이로 인해 내년 하향조정 강도가 더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