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와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함께 그리는 인터넷 제국의 지향점은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이다. 네이버의 라인과 소프트뱅크의 야후재팬을 통합하기로 발표하면서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내건 비전은 '세계를 리드하는 AI 테크 컴퍼니'였다. 통합 법인은 이를 위해 매년 1000억엔(약 1조700억원)을 AI 분야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AI 공룡으로 거듭나고 있는 미국의 구글·아마존, 중국의 알리바바·텐센트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AI 테크 컴퍼니'로 세계 도전

18일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 라인과 소프트뱅크의 자회사 Z홀딩스(야후재팬의 모회사)는 통합 기본 합의서를 체결했다. 양측은 다음 달 중에 최종 계약을 체결하고, 내년 3월 주주총회를 거쳐 통합 법인을 출범시킬 계획이다. 이후 10월까지 자회사 간 주식 교환 같은 후속 작업을 마무리한다. 지난 7월 첫 논의를 시작한 이후 단 8개월 만에 아시아 인터넷 판도를 뒤흔들 거대 인터넷 기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두 회사가 밝힌 통합 배경은 "세계 인터넷 시장에서 미·중을 중심으로 하는 해외 기업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기업 규모를 비교해도 일본 기업과는 큰 격차가 벌어진 현실"이었다. 일본 1위 모바일 메신저(라인), 일본 1위 포털(야후재팬)이라는 현실에 집착하다간 세계의 변방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작년 말부터 올 상반기에 걸쳐 라인과 소프트뱅크는 일본 시장에서 간편 결제 라인페이와 페이페이에 마케팅비를 각각 수천억원 쏟아부으며 피 터지는 경쟁을 펼쳤다. 양사는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통합으로 경영 자원을 집약하고 신규 사업에 투자하며 혁신 모델을 만들어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나가는 AI 테크 컴퍼니가 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라인과 야후를 합친 규모라야 미·중의 경쟁 상대가 되고, 일본 시장에 투자하던 자원을 모두 AI 투자로 전환하기로 한 것이다.

통합 방식은 네이버와 소프트뱅크 산하에 중간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합작 법인을 두는 것이다. 라인은 현재 네이버가 지분 73%를 보유하는데, 나머지 주식을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함께 공개 매수한다. 이후 라인은 상장폐지하고, 중간 지주회사로 변신한다.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Z홀딩스 주식은 중간 지주회사로 넘긴다. 현재 라인에서 사업 부문은 다시 떼어내 Z홀딩스의 자회사로 둔다.

통합 법인의 공동 대표는 라인과 Z홀딩스의 현 대표가 맡는다. 이사회 멤버는 양측이 3인씩 동수다. 경영권은 딱 절반씩 나누지만, 향후 글로벌 사업과 신규 전략은 라인 출신이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통합 법인의 이사회 밑에 '프로덕트위원회'을 신설하고 신중호 라인 공동 대표가 상품최고책임자(CPO) 겸 위원장을 맡는다.

프로덕트위원회는 양측 중복 사업을 조율하고 신규 사업의 기획·개발과 예산·인원 배분과 같은 의사 결정을 맡는다. 프로덕트위원회 표결에서 양측이 동수일 경우 신 CPO가 최종 결정을 내리는 구조다. "투자는 하되, 경영은 현장 성공을 일군 창업자에게 맡긴다"는 지론을 가진 손정의 회장이 라인에 결정권을 양보한 모양새다. 네이버에 매각된 검색 엔진 '첫눈'을 만든 개발자 출신인 신 대표는 라인을 일본 최대 메신저로 키운 주역이자, 현재 네이버의 AI 개발 조직인 서치앤클로바 대표이기도 하다.

◇日최대 인터넷·모바일 기업 탄생

통합 법인은 당장 일본에선 포털·모바일메신저·전자상거래·간편결제·인터넷은행뿐만 아니라 모빌리티와 같은 O2O(온·오프라인 연계) 사업을 망라하는 모든 인터넷·모바일 사업 영역의 강자로 부상한다. 야후재팬은 포털 이용자 6743만명이고, 보유한 다른 앱까지 합치면 사용자가 1억4000만명에 이른다. 여기에 라인이 보유한 일본 내 이용자 8200만명, 해외 이용자 1억400만명이 더해진다.

미·중 IT 거인들과 벌일 싸움은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구글은 연간 200억달러 이상을 연구 개발에 쓰고 이 가운데 AI 투자 비율이 작지 않다. 라인·야후재팬이 내세운 연간 1조원 투자로는 따라잡기 쉽지 않다. 주목할 부분은 소프트뱅크그룹의 비전펀드가 그동안 수많은 인공지능 스타트업에 100조원 안팎을 쏟아부었다는 점이다. 스타트업의 AI 기술을 가져와, 통합 법인 이용자 1억~2억명에게 신규 상품으로 제공하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통합으로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와 신중호 라인 대표는 현금을 3000억원 이상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이해진 창업자는 라인의 459만주(1.9%), 신 대표는 476만주(1.97%)를 보유하고 있는데 공개 매수가(제안가 5200엔)를 적용하면 2500억원을 웃돈다. 여기에 스톡옵션도 공개 매수 대상인데, 신 대표는 이런 스톡옵션도 300만~400만주 정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