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9월부터 쏟아낸 경제 정책에 부정적인 여론이 예상되는 민감한 사안들은 빼고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것 위주로 담아 벌써부터 내년에 있을 총선 모드로 접어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에는 꼭 필요한 해결책은 뺀 채, 변죽만 울리고 있다는 비판이다.

정부가 지난 9월부터 이달 17일까지 발표한 경제 정책 가운데 굵직한 것은 ▲기획재정부 주재 범정부부처 태스크포스(TF)의 ‘인구구조 변화 대응방향’ 4대 정책(9월18일~ 11월 13일) ▲국토교통부의 ‘광역교통 2030’ 비전(10월 31일) ▲국토부의 분양가 상한제(11월 6일) 등이었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문제인 고령화와 인구감소, 일부 지역의 과도한 집값 상승으로 인한 거주 불안 등 구조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내용을 다루는 정책들이었다.

전문가들은 최근 발표한 정책에 ‘한국 경제 구조 개혁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지지율 하락을 불러올 법한 부분’은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분양가 상한제의 경우 시장의 움직임과 괴리돼 있어, 의도대로 효과를 내지 못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면서 "최근 발표된 정책을 보면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방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국가에서 무언가를 주는, 즉 대중적인 인기와 관련돼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인근 부동산.

◇분양가 상한제에 민주당 지역구는 열외, 조정 지역은 해제

최근 부동산 시장을 뜨겁게 달군 것은 국토부가 이달 6일 발표한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과 조정대상지역 해제 지역이다. 국토부는 최근 집값 추이와 규정에 따라 분양가 상한제 적용 대상 지역을 선정했다고 밝혔지만, 총선을 염두에 둔 결정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대표적인 지역이 강남구다.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으로 지정한 서울 강남구 내 동(洞)은 8개로, 전체 14개 동 중 절반 이상이다. 강남구 14개 동 중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지 않는 6개 동은 신사·논현·자곡·세곡·율현·수서다. 6개 동은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전현희 의원의 지역구인 ‘강남 을’(개포·일원·자곡·세곡·율현·수서)에 포진해 있다. 나머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 대상 동인 개포·대치·도곡·삼성·압구정·역삼·일원·청담동은 이종구 자유한국당 의원의 지역구인 강남 갑(신사·압구정·청담·논현·역삼)과 이은재 자유한국당 의원의 지역구인 강남 병(삼성·대치·도곡)에 대부분 포함된다.

같은 날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지역구 경기 고양시(일산서구·고양 정)와 ‘총선 격전지’로 꼽히는 부산 동래·수영·해운대구 등 3개구가 청약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된 것도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조정대상지역은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이 제한되고, 청약과열지구와 똑같은 청약 규제를 받는다. 이 같은 제한이 풀리면 해당 지역의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는 효과를 내기 때문에, 지역 민심이 민감하게 움직인다.

국토교통부의 ‘광역교통 2030’ 비전도 ‘총선을 앞둔 선심성 대책’ 논란을 피해가기 어려웠다. 2030년까지 수도권 서부지역에 광역급행철도(GTX)를 신설하는 등 수도권 광역거점 간 통행 시간을 30분대로 줄인다는 내용이다. 주요 내용은 ‘GTX D’노선을 추가한다는 것이다.

GTX A 노선은 현재 막 짓기 시작했고, B·C노선은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갓 통과했는데 새 노선을 추가한다는 것이다. 대규모 신사업을 추진하면서 사업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예산이나 구체적인 일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진행을 검토한다’ ‘추진한다’는 확답하기 어려운 대책을 줄줄이 내놓았다.

◇인구 대책, 곪은 부분 도려내는 정책은 빠져

정부는 지난 4월 범정부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낮은 출산율과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대책을 올해 9~11월 순차적으로 발표했다.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무척 빠른데다, 지금까지 내놓은 출산율 제고 정책들이 하나같이 효과를 내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합계 출산율이 1미만(0.98·2017년 기준)인 국가로, OECD 회원국 평균치인 1.65에 한참 못 미친다.

하지만 정부의 이번 대책은 국가 재정을 투입해 고령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주를 이룬다. 주택연금 수급 대상 확대, 노동자를 60세 정년 이후에도 일정 기간 고용하면 기업에 지원금을 주는 ‘계속고용제도’ 등이 포함됐다. 고령화로 부담이 점점 커지는 국민연금 개혁, 노인 연령 상향 등 반발이 예상되는 내용은 대책에 포함되지 않았다.

인구구조 변화 대응방향의 주요 내용

정부가 국민연금 재정 개혁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집권 초기였던 2017년 12월에는 국민연금 고갈을 막기 위한 민·관 합동기구인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도 설치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뾰족한 묘안 없이 공을 사회적 합의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이어 국회로 돌렸다. 하지만 정치권도 4월 총선을 앞두고 인기 없는 사안인 ‘국민연금 개혁’에는 손대고 싶어하지 않는 상황이다.

만 65세로 돼 있는 ‘노인’ 연령을 상향하는 것도 ‘인기는 없지만 꼭 논의해야 할’ 정책이다. 노인복지법상 노인은 기준은 기대 수명이 66.1세였던 1981년에 정한 기준이다. 평균 기대수명이 80세 이상인 현실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만 65세를 앞둔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노인 연령을 올리면 연금 수령과 복지혜택 수혜 시점이 늦어진다.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 수가 많은 연령대인 베이비붐 세대를 자극하지 않고자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는 "불황에 정부 지출을 늘려 수요를 진작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현금 지급성 복지보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는 선 굵은 대안들이 필요하다"이라면서 "하지만 최근 발표된 정책들은 대부분 ‘돈을 쓰는 것’에 대한 논의만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