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게임 개발은 도시 계획과 같습니다. 수만명이 모여 경제를 일구고, 친구를 만들며 결혼도 합니다. 게이머들이 16년간 ‘이브 온라인’을 즐긴 이유는 그곳에 실제 친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15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고 있는 ‘지스타(G-Star) 2019’에서 만난 힐마 패터슨 CCP게임즈 최고경영자(CEO)는 "이브 온라인에서 가장 중요한 함선(Ship)은 우정(Friendship)"이라며 "게이머가 만들어가는 커뮤니티가 게임의 영속성을 담보한다"고 강조했다. 게임 중독이 사회 문제로 지적되지만, 도리어 더 큰 사회 문제인 ‘외로움’을 게임이 달래주고 있다는 주장이다.

15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고 있는 ‘지스타(G-Star) 2019’에서 힐마 패터슨 CCP게임즈 최고경영자(CEO)가 이브 온라인 성공 비결을 소개하고 있다.

CCP게임즈는 아이슬란드에 본사를 둔 회사다. 우주 배경 온라인 게임 이브 온라인을 2003년부터 16년째 운영해오고 있다. 1년을 못 버티고 사라지는 경우가 잦은 게임업계에서 드문 성과다. 지난해엔 ‘검은 사막’으로 유명한 한국 게임업체 펄어비스가 CCP게임즈 지분 100%를 약 2500억원에 인수했다. 누적 사용자가 4000만명에 달하는 이브 온라인 지식재산권(IP)을 한국이 거머쥔 것이다.

이브 온라인은 우주를 배경으로 한 전투를 주요 콘텐츠로 삼는다. 게임 속 우주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유저 커뮤니티인 ‘콥’ 가입이 필수다. 이브 온라인 사용자들은 투표로 의회를 구성해 제작사와 소통한다. 현실과 다름없는 사회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힐마 패터슨 CEO는 "CCP게임즈의 목표는 실생활보다 더 의미 있는 가상세계를 만드는 것"이라며 "이용자들은 이브 온라인 속에서 야망, 사랑, 배신 등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고, 게임에서 만나 실제 결혼까지 한다"고 말했다.

CCP게임즈는 현실적인 경제 체제 구축을 위해 경제학자까지 고용해 게임 내 인플레이션을 조정한다. 매달 이브 온라인 경제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할 정도다. 힐마 패터슨 CEO는 "모든 아이템은 게이머가 만들고, 생산에 많은 시간이 들어 잃으면 매우 고통스럽다"며 "이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용자 커뮤니티가 단결하고 공동체가 강화된다"고 설명했다.

이브 온라인은 높은 난이도로 유명하다. 힐마 패터슨 CEO는 이용자들이 첫 함선을 잃었을 때가 게임에 빠져드는 순간이라고 소개했다. 90%에 달하는 이용자가 이 순간 게임을 그만두지만, 타인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극복한 게이머는 그 순간 이브 온라인의 본질에 닿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최초의 역경을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극복한 게이머들은 게임 속 친구가 가상이 아닌, 실제 친구임을 깨닫게 된다"며 "가장 소중한 자원인 함선을 잃었을 때 가장 소중한 가치를 찾게 된다"고 말했다.

힐마 패터슨 CEO는 나아가 이브 온라인 속에서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갈등을 조정하는 커뮤니케이션, 커뮤니티를 이끄는 리더십, 게임 속 돈을 관리하는 자산관리, 지배권을 둔 정치, 글로벌 게이머와 대화할 수 있는 언어 등은 모두 현실에서 쓰는 능력과 다를 게 없다"며 "게임 속에서 얻은 능력을 현실의 직업에서 활용하고 있다는 게이머들의 구체적 증언이 수없이 많다"고 강조했다.

이브 온라인은 전 세계 단일 서버를 운영한다. 아이슬란드부터 한국까지 세계 각국 게이머 수만명이 한 서버에서 동시에 마주칠 수 있다. 한국 내 정식 서비스는 전날인 14일 시작했다. 영문으로 암암리에 이브 온라인을 즐겨온 게이머들은 환호하고 있다. 힐마 패터슨 CEO는 "‘전설적인’ 게임 실력을 지닌 한국 게이머들이 이브 온라인에서 큰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한다. CCP게임즈는 한국에 전례 없는 노력을 쏟고 있다"며 "한국 게이머들이 이브 온라인 내 정치·경제 지형도에 변혁을 가져오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