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인수로 재계 순위 33위→18위로 도약
1996~1998년 현대차 회장 역임 등 제조업 잔뼈 굵어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 컨소시엄이 아시아나항공 우선순위 협상자로 선정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정몽규 HDC 회장의 집념에 있다.

정 회장은 이달 초 본입찰을 앞두고 "그룹 재도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회사다. 반드시 인수해야 한다"며 입찰 금액을 높일 것을 지시했다. HDC는 2조5000억원에 육박하는 금액을 제시하면서 1조7000억원을 써낸 애경-스톤브릿지캐피탈 컨소시엄을 압도했다. 당초 입찰가가 1조5000억~2조원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했던 재계와 투자은행(IB) 업계의 관측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

정 회장이 이렇게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규모 자금을 동원한 것은, 건설업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호기(好機)로 보았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원래 현대자동차에서 핵심 경력을 쌓았다. 1991년 현대자동차 상무에 올랐고 1993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만 34세였던 1996년엔 현대자동차 회장직을 맡았다. 아버지 고 정세영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현대차의 운전대를 잡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현대그룹이 분리되는 과정에서 현대차 경영권이 정몽구 회장에게 넘어갔고, 정몽규 회장은 현대산업개발을 받게 됐다. 정 회장은 2005년 선친이 타계한 이듬해 선친의 별칭을 딴 '포니정 재단'을 만들어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정 회장은 대우자동차 인수 후보에 오르내리거나 인터넷 자동차 판매업 진출을 모색하는 등 자동차 산업 진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영창악기 인수, 현대아이파크몰을 통한 유통업 진출도 도모했는데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후 정 회장은 건설업에 매진해 현대산업개발을 국내 10대 건설사로 성장시키며 기반을 닦았다. 그리고 여기서 쌓은 넉넉한 자산으로 아시아나항공을 손에 넣게 됐다. HDC는 2018년 말 현재 현금성 자산을 1조3500억원 보유했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11.4%로, 대형 건설사 중 최고 수준이다.

정 회장에게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비건설업종에서 틀이 갖춰진 회사를 사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기회였다.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에 이은 항공업 2위로, 지난해 7조1800억원의 매출을 거둬 28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항공산업에 진출할 경우 대한항공이 항공기 부품 제조업과 해운, 물류업체까지 거느리는 것처럼 연관산업에 진출하기 용이하다. HDC가 건설업을 기반으로 유통이나 레저 업종에 진출했었던 이전보다 훨씬 더 다양한 업종에 진출할 수 있고, 그만큼 성과를 낼 확률도 높아진다.

이번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실무 차원에서 진두지휘한 현대산업개발 정경구 경영지원본부장(CFO)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배경에 대해 "본업인 건설업보다 항공업의 리스크가 작다고 판단했다"고 말한 것도 정 회장의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정 회장은 12일 서울 용산구 HDC 사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HDC현대산업개발은 앞으로 항공산업 뿐이 아닌 모빌리티 그룹으로 한걸음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가 기간산업인 항공산업이 HDC현대산업개발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부합한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라 입찰에 참여했다"고 인수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HDC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서 HDC의 재계 순위는 2018년 현재 33위에서 18위 정도로 껑충 뛰게 된다. 2018년 현재 계열사 총자산(10조600억원)에다가 아시아나항공의 자산 8조1900억원을 더하면 18조8000억원 가량이 되는데, 이는 17위 LS(22조600억원)와 18위 대림(18조원) 사이가 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집계하는 대기업집단 순위는 계열사 자산을 별도재무제표 기준으로 합산한 것이기 때문에 재무제표 상의 아시아나항공 자산 규모와 차이가 있다. 하지만 계열사 별도 합산의 경우 자산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고, 자잘한 계열사 자산을 합쳐도 LS를 자산순위에서 제칠 가능성은 낮다.

아시아나항공 사무실.

이와 함께 지난해 '부동산114' 인수로부터 시작된 미래에셋증권과의 협업도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서 성공 요인으로 작용했다. HDC는 4월 한솔 오크밸리 인수에서도 미래에셋과 함께 했다. 미래에셋은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하겠다는 전략을 올해 4월부터 세우고 파트너가 될 전략적투자자(SI)를 찾고 있었다. 정 회장(1962년생)과 박현주 미래에셋회장(1958년생)은 고려대 경영대 동문으로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있다. 미래에셋의 제안에 HDC가 응하면서 컨소시엄을 구성하게 됐다. 최훈 미래에셋 IB3부문 대표(부사장)과 정경구 경영지원본부장(CFO) 등 HDC-미래에셋 컨소시엄 구성원들은 오크밸리 인수에서부터 함께 일해와 원활하게 협업 체제를 구성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