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보톡스'라는 보툴리눔 톡신은 주름을 펴는 미용 성형용으로 많이 쓰인다. 그런데 보톡스의 새로운 쓰임새, 즉 흉터 개선 등 치료용 보톡스가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대웅제약이 지난 7일 보툴리눔 톡신 제품인 '나보타'가 흉터 개선에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앞서 한림대 의대 연구진은 갑상선 제거 수술 환자의 흉터에 대웅제약의 나보타를 투여하는 임상 시험을 진행했다. 나보타를 투여한 부분의 흉터가 더 빨리 아물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연구 결과는 '미국성형외과학회지(PRS)' 10월호에 발표됐다. 치료용 보톡스 시장이 커지면서 국내외 제약사들도 보톡스를 이용한 질병 치료제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질병 치료 주목받으며 시장 급성장

보툴리눔 톡신은 보툴리눔이라는 균(菌)에서 독성을 띠는 단백질을 추출한 것이다. 이 독소를 피부 밑에 주입하면 미세한 근육 마비를 일으키는데 이때 잔주름이 펴진다. 보톡스라는 이름은 미국 앨러간이 이런 보툴리눔 톡신으로 만든 제품명이다. 한국은 아직 보툴리눔 톡신의 피부 미용 수요가 90% 정도지만, 미국 등 선진 제약 시장에선 치료용 수요가 60%를 넘는다. 근육을 마비시켜 근육과 혈관을 이완시키는 원리를 이용해 질병 치료에 쓰는 것이다. 뇌성마비, 편두통, 과민성 방광 등의 질병뿐 아니라 암세포와 연결된 신경을 차단해 위암 치료제로도 개발되고 있다.

치료용 보툴리눔 톡신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 분석 업체 '대달 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49억달러 규모인 글로벌 보툴리눔 톡신 시장에서 치료제가 27억달러로 미용(22억달러)보다 규모가 크다. 2021년에는 치료제 시장이 32억달러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치료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보툴리눔 톡신 제조사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앨러간의 보톡스는 미국에서 눈꺼풀 경련, 만성 편두통, 방광염 등 14가지 질환에 대해 치료제를 허가받았다. 앨러간은 1989년 보톡스에 대해 눈꺼풀 경련과 사시 치료제로 허가를 받은 이후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해오고 있다.

국내 업체들도 질병 치료제 개발에 적극적이다. 휴젤은 '보툴렉스'로 눈꺼풀 경련과 뇌졸중 관련 근육 경직 등 4가지 질환 치료 효과를 인정받았다. 메디톡스는 국내에서 보툴리눔 톡신 제품 '메디톡신'을 첨족 기형(뇌성마비 환자의 까치발 기형) 등 5가지 질환에 대한 치료제로 허가받았다. 현재 편두통과 다한증 치료에 관한 임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대웅제약은 '나보타'에 대해 현재 사각 턱 치료 효과에 대한 임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탈모나 눈물 흘림증, 안면 홍조 등에 대해서도 보톡스 치료제를 연구 개발 중이다.

해외로 진출하는 국내 제약사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보톡스 치료제 시장은 1000억원 규모다. 작은 시장을 놓고 경쟁이 달아오르면서, 법적 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대웅제약과 메디톡스는 보툴리눔 독소의 균을 놓고 국내와 미국에서 법적 분쟁 중이다. 메디톡스는 "우리 균을 대웅제약이 훔쳤다"고 주장하고 대웅제약은 "우리가 자체 개발한 균"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 시장은 여러 업체들이 난립하면서 포화 상태"라면서 "치열한 경쟁 때문에 법적 분쟁도 발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제약사들은 좁은 국내 시장을 벗어나 글로벌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전 세계 보툴리눔 톡신 시장은 약 4조원 규모로 미국 시장이 2조원 이상을 차지한다. 미용 성형 시장이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은 보툴리눔 톡신 시장이 1조원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은 전 세계 보툴리눔 독소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고, 중국은 정식으로 허가를 받은 회사가 앨러간과 란저우연구소 두 곳뿐"이라고 말했다. 대웅제약은 지난 1월 미 FDA(미 식품의약국)로부터 나보타(미국 출시명 주보)를 미간 주름 개선에 사용할 수 있도록 판매 허가를 받아 5월부터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주보의 올해 3분기 매출액은 1320만달러(약 150억원)를 기록했다. 중국에서도 미간 주름 개선 치료제로 허가받기 위해 임상 3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2023년 중국 시장 진입이 목표다.

휴젤은 지난 4월 중국에 '보툴렉스'에 대해 시판 허가 신청을 했다. 휴젤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에 판매 허가를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또 휴젤은 보툴렉스를 유럽과 미국에 각각 2021년과 2022년에 출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