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에 열광하는 1020대 겨냥해 '헤리티지' 찾는 패션업계
휠라·챔피온 등 유산 앞세워 부활...프로스펙스, 내년부터 전 제품에 옛 로고 사용

스포츠 브랜드 프로스펙스는 내년부터 오리지널 상품군에만 사용해온 옛 로고를 전 제품에 적용한다고 밝혔다.

뉴트로(새로운 복고)를 선호하는 젊은이들이 늘면서 패션계가 브랜드의 유산(헤리티지)을 강화하고 있다.

38년 역사를 지닌 스포츠 브랜드 프로스펙스는 12년 만에 'F' 로고를 다시 쓴다고 밝혔다. 프로스펙스는 1981년 학이 날아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로고(일명 누운 F 로고)를 처음 선보인 이래, 2008년부터 여러 차례 로고를 바꿨다.

하지만 2017년 뉴트로 열풍에 맞춰 과거 상품을 재해석한 오리지널 라인을 출시하면서 F 로고를 다시 선보인 후, 옛 로고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했다. 내년부터는 프로스펙스와 프로스펙스 오리지널로 이원화했던 로고를 하나로 합쳐 전 제품과 매장에 F 로고를 적용할 방침이다.

이상훈 LS네트웍스 홍보팀장은 "2017년 F 로고 상품을 재출시할 때만 해도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실제론 젊은 고객들에게 더 호응을 얻었다"면서 "내년에는 옛 로고를 중심으로 브랜드를 통합해 현재 1500억원 수준의 연매출을 1700억원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했다.

(왼쪽부터) 1981년~2007년, 2008년~2011년, 2012년~2019년 프로스펙스 로고. 맨 오른쪽은 내년부터 적용할 로고로 옛 로고를 재해석했다.

올해 46주년을 맞은 아웃도어 브랜드 코오롱스포츠도 상록수 로고를 내세웠다. 지난달 청계산 입구에 로고를 한글로 형상화한 '솟솟' 카페를 개장하고, 브랜드 역사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공간을 꾸몄다. 옛 등산 장면을 담은 사진과 1970년대 출시했던 등산복을 전시해 '토종 아웃도어 브랜드'임을 강조했다.

30년 차를 맞은 캐주얼 브랜드 빈폴은 한국의 유산과 결합했다. 이전에는 트래디셔널 캐주얼(전통 캐주얼)임을 강조하기 위해 아래 영국과 미국 등의 문화를 차용했지만, 로고를 한글로 바꾸는 등 한국적인 요소를 적용해 브랜드 이미지를 새로 짰다. 박남영 빈폴사업부장은 "앞으로 30년을 논하기 위해서는 뿌리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광고도 달라졌다. 블랙야크는 브랜드 모델인 배우 이승기 대신 브랜드의 상징인 야크와 등산인을 앞세운 TV 광고를 선보였다. 특정 상품 판촉을 위한 기존의 광고에서 벗어나 '아웃도어'라는 정체성을 알리기 위해 50벌만 출시된 고기능성 등산복을 강조했다.

패션계가 유산을 성장동력으로 내세운 이유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역사와 전통을 다시 보는 뉴트로 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휠라는 로고를 강조한 1990년대풍의 '어글리 슈즈'가 10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경영 위기에서 벗어났다.

1919년 출범한 챔피온은 최근 10대 청소년들에게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로 주목받고 있다.

브랜드 유산이 중요한 건 해외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1900년대 초 출범한 챔피온(1919년)과 러셀 애슬레틱(1902년)이 부활했다. 'C' 로고로 유명한 챔피온의 경우 매출이 2010년 6억 달러(약 6900억원)에서 지난해 14억 달러(약 1조6200억원)로 급증했다. 멋진 로고와 유산을 지닌 스트리트 패션으로 10대 청소년들에게 주목받으면서다.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의 추종자(팔로워)만 571만 명. 2022년에는 20억 달러(약2조3100억원)의 매출을 바라본다.

남윤주 블랙야크 마케팅팀장은 "이제 특정 상품을 대물량 출시해 스타 모델을 앞세워 판매하는 전략은 통하지 않는다. 밀레니얼 소비자들은 브랜드의 정체성과 독창성, 스토리텔링이 더 가치를 둔다"고 했다.

신생 브랜드의 경우 헤리티지를 산다. 디스커버리, 내셔널지오그래픽, 라이프 등은 오랜 역사를 지닌 미디어 채널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헤리티지를 장착한 의류 상품을 선보여 조기에 시장 안착에 성공했다.

올해 트렌드 코리아에서 뉴트로를 키워드로 제시한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뉴트로가 일시적인 트렌드가 아닌 하나의 장르이자 문화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며 "과거를 파는 게 아니라, 과거를 빌려 현재를 파는 것이다. 본질을 유지하되 현대화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