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의 변신: 소비재(B2C)에서 산업재(B2B)로'.

지난달 24일 오전 8시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서울대 공대 건설산업최고전략과정(ACPMP) 조찬 포럼. 두산가(家) 4세 경영자 중 한 사람인 박태원(50) 두산건설 부회장이 이런 주제로 이색 강연을 열었다. 박용현 전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인 그는 현재 두산그룹을 이끌고 있는 박정원 회장의 사촌 동생이다. 그는 최근 두산 사례 연구로 프랑스의 케지 비즈니스 스쿨(KEDGE Business School)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내 재벌가에서 집안이 경영하는 기업의 사례로 논문을 써서 박사 학위를 받은 건 그가 처음이다.

두산가 4세, '두산의 변신' 사례 연구로 박사 학위 받아

123년 역사의 국내 최고(最古) 기업 두산은 잘나가는 그룹 주력사를 선제적으로 매각해, B2C 회사에서 B2B 회사로 변신에 성공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1990년대만 해도 재계 서열 20위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자산 28조원, 재계 서열 15위로 도약했다. 박 부회장은 두산의 변신 이야기를 당시 컨설팅회사 보고서와 내부 보고서, 의사 결정에 참여했던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당시 두산그룹 부회장) 등 최고경영진과의 심층 인터뷰 등을 통해 자세하게 분석했다. 그동안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도 많았다.

박태원 두산건설 부회장이 최근 서울 강남구 두산건설 본사에서 자신의 박사 논문을 보여주며 '두산의 변신'을 설명했다. 그의 사무실에는 '수분가화(守分家和·너 자신을 알고 분수를 지켜야 가정이 화목하다)'라는 가훈이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박 부회장은 두산이 구조 조정에 나선 주요 원인으로 '100년 된 기업병'을 꼽아 눈길을 끌었다. "계속된 성공 신화로 근거 없는 자만심이 가득해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독일 엔지니어가 수율(收率)을 높이는 새로운 생산 방식을 조언했지만 무시하고 늘 하듯이 공장 증설에만 나서 차입금 부담이 점점 커졌습니다."

이런 원인 분석은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박 부회장은 "100년 기업병에 걸린 두산은 더 이상 민첩하게 대응해야 하는 소비재 사업을 할 수 없었다"며 "빠르게 변하는 소비재 사업보다는 장기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제품 라이프 사이클이 긴 사업을 물색했다"고 분석했다. 콜라, 맥주 팔던 회사가 굴착기 등을 파는 ISB(인프라 지원 사업) 회사로 탈바꿈한 배경으로 '100년 기업병'을 든 것이다.

박 부회장은 "1998년 매출 3조4000억원에 불과했는데 계열사는 29개에 달해 29명의 사장과 비서, 29개의 기획부, 경리부가 존재하는 등 복잡성 비용이 증가했다"며 "이에 대한 반성으로 '규모의 경제'가 있는 조(兆) 단위 제조 사업을 물색했다"고도 분석했다.

"독특한 지배 구조가 M&A 성공 요인"

박 부회장은 완전히 다른 기업으로의 변신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두산의 독특한 지배 구조를 꼽았다. 그는 "두산은 가문 중 한 명을 '선량한 관리자(stewardship·스튜어드십)'로 임명해 그룹 전체 실무를 관장하고 모든 계열사 CEO(최고경영자)를 관리한다"고 했다. 이를 통해 오너 가문과 전문경영진이 서로 견제하는 구조가 됐고, 다른 대기업과 달리 '대리인 문제'(전문경영인과 같은 대리인이 회사나 주인이 아니라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행동할 때 발생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지금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박 부회장은 또 "123년 전 창업 당시에는 가훈이 근자성공(勤者成功·근면한 사람이 성공한다), 박두병(창업 2세 회장) 할아버지대에는 인화(人和)였는데, 형제의 난을 겪은 이후 가훈을 수분가화(守分家和·너 자신을 알고 분수를 지켜야 가정이 화목하다)로 바꿨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그가 보는 두산의 미래는 어떨까? 박 부회장은 "전 세계 가족 기업 중 4세대에 가면 3%만 살아남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두산도 1세대 포목상에서, 2세대 OB맥주를 중심으로 한 B2C 기업, 3세대 인프라 사업을 중심으로 한 B2B 사업, 4세대에는 수소연료전지, 협업로봇, 연료전지드론, 물류자동화 사업 등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으로 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업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