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식 맥킨지 한국사무소 대표(왼쪽), 성정민 맥킨지 글로벌연구소 부소장

아시아 디지털 경제가 '춘추 전국시대'를 맞이했다. 중국의 디디추싱, 인도네시아의 고젝, 싱가포르의 그랩, 인도의 올라. 각 나라를 대표하는 모빌리티(이동 수단) 서비스 업체다. 창업자는 모두 1980년대생 현지인이다. 국가별 맹주들이 천하를 나눈 모습이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국경을 초월한 합종연횡(合從連衡)의 관계가 얽혀 있다. 그랩에는 일본의 소프트뱅크와 도요타, 중국의 알리바바와 디디추싱의 자본이 투입됐다. 고젝에는 중국의 텐센트와 징둥닷컴이, 올라에는 한국의 현대·기아차가 투자했다. 그랩과 고젝은 모빌리티를 기반으로 금융, 음식 배달, 뉴스, 게임 등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수퍼앱(superapp)으로 진화 중이다. 이는 중국의 알리페이나 위챗의 성장 모델과 유사하다.

이처럼 자본과 비즈니스 모델은 이웃 아시아 국가에서 들여오고, 서비스는 현지 고객 수요와 법규에 맞게 바꾸는 '멀티 로컬(multi-local)' 혁신 네트워크가 아시아에서 뜨고 있다.

◇아시아, 2040년 전 세계GDP 절반

아시아 경제는 세계 GDP(구매력 평가 기준)의 42%(2017년)를 차지하고 있으며, 2040년에는 50%를 넘을 전망이다. 아시아의 인터넷 사용자는 2000년 대비 20배 이상 증가한 23억명으로 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의 절반을 차지한다. 중국과 인도만 합쳐도 15억명에 이르고, 인도네시아·일본·방글라데시 등은 인터넷 사용자가 각각 1억명 안팎이다. 베트남·필리핀 등 신흥국 인터넷 보급률도 70%에 달한다.

중국판 '우버(Uber)'로 불리는 차량 공유 업체 디디추싱은 작년 일본 최대 IT 기업이자 투자회사인 소프트뱅크와 함께 택시 호출 플랫폼을 출시했다. 사진은 작년 일본에서 소프트뱅크가 주최한 IT 박람회에서 이스라엘 기업이 내놓은 목표 인식 및 추적 기술을 시연하는 모습.

아시아인들은 인터넷 몰입도도 높다. 필리핀·태국·인도네시아의 평균 인터넷 사용 시간은 전 세계 상위 5개국에 든다. 중국과 베트남의 인터넷 사용자 중 30~40%는 e스포츠를 시청한다. 이는 미국의 5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변화의 속도도 놀랍다. 아시아 특허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5%(2015~ 2017년 연평균)로, 10년 전(2005~2007년 연평균) 52%이었던 것과 비교해 크게 늘었다. 연구·개발(R&D) 투자(구매력 평가 기준)도 같은 기간 전 세계 비중 31%에서 41%로 늘었다. 10년 전까지 시가총액 기준 세계 10대 기술 기업 중 아시아 기업은 한 곳도 없었지만, 지금은 삼성전자,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 중국의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네 곳이다. 전 세계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기업)의 36%가 아시아에서 나왔고, 유니콘 탄생 속도도 미국이나 유럽보다 30~40% 더 빠르다.

◇4개의 아시아, 상호 보완 관계

맥킨지 글로벌연구소(MGI)는 경제 규모 및 발전 수준, 역내 국가와의 교류 정도 등을 기준으로 아시아를 네 그룹으로 나눴다. ▲선진 아시아(한국·일본·싱가포르 등) ▲중국 ▲신흥 아시아(주로 역내 교류 비중이 높은 동남아 국가) ▲인도 및 프런티어 아시아(주로 역내 교류 비중이 낮은 남아시아 및 중앙아시아 국가) 등이다. 이들은 2040년 각각 11조달러, 36조달러, 7조달러, 13조달러 규모로 성장해 각각이 '대륙'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한 운전자가 동남아 모바일 결제시스템인 그랩페이(GrabPay)로 전기차를 간편하게 충전하고 있다.

네 개의 아시아는 인구 차원에서 상호 보완적이다. 중국과 선진 아시아는 급격한 인구 노령화가 진행 중이지만, 나머지는 도시화와 생산가능인구 증가가 이뤄지고 있다. 예컨대, 중국 샤오미는 현지의 노동력과 수요를 활용하기 위해 인도에 7번째 생산기지를 구축 중이다.

혁신도 마찬가지다. 선진 아시아는 지식 기반과 인재 풀(pool)이 탄탄하다. 중국 역시 디지털, 인공지능 분야에서 선두주자다. 선진 아시아 및 중국의 특허 규모는 나머지 아시아의 20배를 웃돈다. 반면, 신흥 및 프런티어 아시아는 이러한 혁신이 활용될 기회의 장을 제공한다. 그 결과, 2016~2018년 사이 신흥 아시아의 스타트업(초기 벤처회사) 수는 10년 전(2006~2008년)보다 18배, 프런티어 아시아 내 스타트업 수는 8배 늘었다.

◇자본, 아시아에서 아시아로

이 같은 상호 보완성이 창출하는 기회는 자본을 아시아에서 아시아로 흐르게 한다. 실제 아시아가 전 세계 스타트업 투자의 41%를 차지하고, 이 중 약 70%가 아시아 역내에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중국 자본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알리바바는 인도네시아의 전자상거래 업체인 토코피디아와 부칼라팍, 동남아의 라자다에 투자했다. 텐센트는 이들과 경쟁하는 싱가포르 전자상거래 업체 쇼피의 모회사이자 게임업체인 시(Sea)에 자본을 투입했다. 중국 회사들은 인도에서도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 중이다. 알리바바는 전자상거래 및 결제 업체인 페이티엠, 음식 배달 업체인 조마토, 물류회사인 엑스프레스비스 등에 투자했다.

일본 투자회사 소프트뱅크는 동영상 공유앱 '틱톡' 운용업체인 중국의 바이트댄스, 홍콩 여행업체 클룩 등 아시아의 혁신 기업의 주요 주주가 됐다. 국내 기업도 움직이고 있다. 미래에셋과 네이버는 아시아 성장 펀드를 출범했고, 카카오도 계열사를 통해 베트남 광고 대행업체 애드소타에 투자하고, 필리핀 핀테크 업체 SCI에 지분 투자했다.

◇더욱 강해지는 아시아 네트워크

아시아 국가 간 역내 무역 비중은 아시아 전체 무역의 60%에 이르고, 아시아 국가의 외국인 직접투자(FDI) 중 역내 투자 비중도 59%에 달한다. 아시아 국가 간 다양한 혁신 네트워크와 도시의 등장은 국경과 산업을 넘는 다양한 파트너십 기회를 만들어 낼 것이다. 예컨대, 텐센트는 홍콩의 금융 스타트업 EMQ와 함께 중국 메신저 위챗을 통해 홍콩 거주 17만여 명의 필리핀인을 대상으로 대기 시간과 수수료를 대폭 낮춘 송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 금융업체 핑안은 동남아 그랩과 함께 온라인 헬스케어 관련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그랩은 또 태국의 카시콘뱅크와 손잡고 디지털 결제시스템을 출시했다. '진열타철(趁熱打鐵)'. 쇠가 달구어졌을 때 두드리라는 중국 성어다. 한류가 아직 인기가 있고, 한국의 지식과 자본이 힘을 발휘할 수 있을 때 아시아 혁신 네트워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자카르타·양곤… 새롭게 떠오르는 아시아 실리콘밸리들]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는 어디가 될까. 맥킨지 글로벌연구소(MGI)는 특허 출원 건수, 지식산업 투자, 상위 500대 대학 수, 유니콘 기업 수, 인터넷 보급률 등을 바탕으로 아시아의 50개 혁신 도시들을 분석했다. 그 결과 베이징, 선전, 싱가포르 등 널리 알려진 도시 외에도 중국 우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미얀마 양곤, 인도 하이데라바드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었다.

중국 우한(武漢)은 자동차, 제약 등의 전통 산업과 광전자공학·생명공학·신소재 개발 등 첨단 신산업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2007년부터 2017년 사이 우한 소재 기업이 출원한 특허 수는 연평균 32% 증가했다. 국책 개발 구역 3곳, 과학 및 기술 개발 단지 4곳, 350개 이상의 연구기관, 1656개의 첨단 기업을 유치해왔다. 한 달 사용자가 1억6000만명에 이르는 중국 스트리밍 기업 도유(Douyu)의 본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는 인도네시아 5개 유니콘 기업(부칼라팍·고젝·토코피디아·트래블로카·오보)이 모두 본사를 두고 있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지원 기관)와 반둥공과대학 등이 배출하는 인재를 활용해 혁신 생태계를 조성 중이다. 지식집약적 부문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지난 10년 동안 연평균 20% 증가했다. 정부의 '스타트업 1000개 양성' 계획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다.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은 기술 허브로서, 디지털 혁신을 목표로 민간 및 공공 부문의 다양한 참여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새로운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테크 허브인 판디야르(Phandeeyar), 스위스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와 함께 양곤혁신센터(YIC)가 설립됐다. 유엔 등 국제 기구와 삼성 등 다국적 기업 역시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인도 하이데라바드에는 인도 내 2만 개의 스타트업 중 3000개가 위치했다. 미국 인베스코와 페이스북이 혁신 허브를 설립하기도 했다. 2017년 1400건 이상의 특허를 출원했고 지식집약적 부문에 대해 17억달러의 FDI를 유치했다. 정부는 IT 단지 및 교통 인프라를 위한 토지 할당 관련 지원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15~30일 내 투자 프로젝트 승인을 보장하는 '속도전'으로 기업 유치에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