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간 대량 거래에 사용되는 D램(DDR4 8기가비트 기준)의 10월 고정 거래 가격이 2.81달러로 떨어졌다. 경기가 정점을 찍었던 1년 전보다 62%나 하락한 수치다. DDR4 8기가비트 기준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16년 6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작년 가을부터 시작된 메모리 반도체 시장 불황이 최악 수준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반도체 업계에선 희망적 반응이 나오고 있다. "드디어 최저점을 찍었다"는 바닥론과 함께 내년 1분기부터 업황이 살아날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세계 메모리 업계 1·2위 삼성전자·SK하이닉스도 "실적 악화의 주범이던 재고량이 감소하고 있다"고 밝혔고 산업연구원 등 국책·해외 연구기관들도 반도체 시장이 내년부터 반등한다는 분석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메모리 업계 "재고량 감소… 바닥 봤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해 3분기 실적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삼성전자의 올 3분기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은 3조500억원으로 작년 3분기의 5분의 1 수준(22%)에 불과했다. SK하이닉스도 3분기 영업이익이 4726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93%나 줄었다. 하지만 두 업체 모두에서 긍정적인 신호가 나오고 있다. SK하이닉스는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2분기 말 재고량이 약 7주치였지만 3분기 말에는 5주치로 감소해 사실상 정상 수준을 회복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도 콘퍼런스콜에서 "낸드플래시는 올 3분기 재고 정상화가 됐고 D램은 출하량이 예상보다 크게 늘어 큰 폭으로 재고가 감소했다"고 밝혔다. 지난 1년 내내 반도체 업황 악화를 불렀던 재고량이 올 3분기에 처음으로 감소한 것이다.

산업연구원도 3일 보고서에서 "반도체 경기가 올해 2월 바닥을 찍고 하락세가 진정됐으며 7월부터는 한국 반도체 수출이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D램 가격이 계속 하락하는데도 경기 바닥을 2월로 본 것에 대해 업계에서는 "작년 하반기, 특히 10월까지 반도체 경기가 전례 없는 초호황기였던 점을 고려할 때 올 하반기 반도체 수출·경기는 우려했던 것보다는 낫다"고 분석했다. 작년 반도체 경기가 너무 좋아 역기저효과가 생겼다는 것이다. 산업연구원은 "올 9월까지 반도체 수출액은 714억달러로 작년 동기 대비로는 25.4% 감소했지만 2014~2017년 평균치보다는 많다"며 "내년에는 다시 본격적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트너·IC인사이트·IHS마킷 등 주요 글로벌 시장조사기관들도 올해 마이너스(-)였던 반도체 시장 성장률이 내년에는 4.8∼10.2%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PC·스마트폰·서버 수요 모두 늘어

반도체 바닥론이 힘을 얻고 있는 이유는 PC·스마트폰·서버 등 3대 시장에서 수요 증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선 고가·대용량 제품을 많이 쓰는 서버 업체들이 주문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IT(정보기술) 산업 불황을 우려했던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 등 클라우드(가상 저장공간)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면서 이들에게 납품하는 대만·중국·미국 등의 서버 업체들이 속속 D램·낸드플래시 선구매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5G(5세대 이동통신) 시대 본격화도 호재다. 5G 스마트폰은 LTE(4세대 이동통신) 제품보다 대용량·고성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D램·낸드플래시 탑재량이 많다. 내년 5G 스마트폰 시장 규모도 올해보다 최대 10배 커진 2억대 이상으로 예상된다. 5G가 AI(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자율주행 등의 발전을 가속하면서 반도체 수요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인텔·AMD의 치열한 CPU(중앙처리장치) 경쟁이 격화하며 PC 가격이 낮아져 PC용 반도체 수요도 늘 전망이다. 최근 인텔은 AMD를 견제해 10세대 CPU인 코어 i9 시리즈의 가격을 이전 제품의 절반으로 내렸다.

산업연구원은 "2020년 도쿄 올림픽 효과에 따른 전자기기 수요 증가도 호재"라며 내년 한국의 반도체 수출은 2017년(979억달러)과 비슷하거나 웃돌 것으로 전망했다. 한 반도체 업체 고위 관계자는 "반도체 업황이 개선되면 수출 증가, 국내 투자 확대 등으로도 이어져 한국 경제 성장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