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직후 '30주년'보다 조용한 분위기
컨트롤타워 '증발'에 IT 업황 악화 때문
다음달 1일 창립 50주년을 맞이하는 삼성전자(005930)가 조용하게 '지천명(知天命·50세를 가리키는 단어로 논어에서 유래)'을 맞이하게 됐다. 경기도 수원 본사에서 김기남 부회장을 비롯한 임직원 500명이 참석한 조촐한 기념식을 열고 50주년 사사(社史)를 내는 정도다. 2009년 창립 40주년에 이건희 회장이 발표했던 '비전 2020'과 같은 미래 사업 전략 발표도 없을 예정이다.
삼성전자 안팎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11월 1일 수원 삼성디지털시티에서 김기남 부회장 주재로 임직원 500명이 참석한 창립기념식을 개최한다. 올해 창립기념식으로 삼성전자는 설립 5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1969년 1월 설립된 삼성전자공업주식회사를 '시작점'으로 보는 데, 창립기념일은 1988년 삼성반도체통신주식회사를 합병한 11월 1일로 삼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사업이 차지하는 위상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올해 창립기념식을 49주년이었던 지난해 수준으로 치른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들에 따르면 "반(半)세기를 보내고 다음 반세기를 맞이하는 데 따른 메시지는 있겠지만 장기 비전 선포 등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김기남 부회장, 김현석 사장, 고동진 사장 등 각 사업부문별 대표가 CEO(최고경영자) 자격으로 임직원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불참한다. 이밖에 50주년 사사가 발간되는 정도다.
삼성전자는 10년 전인 지난 2009년 10월 30일 '창립 40주년 기념식 및 비전 선포식'을 성대하게 치렀었다. 'Inspire the World, Create the Future(미래사회에 대한 영감, 새로운 미래 창조)'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2020년까지 당시 매출의 6배인 4000억원을 달성하겠다고 목표를 제시했다. IT업계 압도적 1위, 글로벌 10대 기업 등 구체적인 업계 '순위'와 소프트웨어·솔루션 사업 강화와 의료·바이오, 환경·에너지 등 신산업 추진 방안도 담겨있었다. 기념식에 전현직 사장이 모두 참석하고 거물급 외부 인사에게 축하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IMF 외환위기 여파로 고전하던 1999년 '30주년'의 경우 거창한 기념식은 없었지만, 다음 10년에 대한 비전과 목표는 발표됐다. 당시 윤종용 부회장은 수원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디지털 컨버전스(융복합) 혁명을 선도하는 기업이 되겠다"며 `SAMSUNG DIGITall, everyone's invited(삼성의 디지털 세상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멀티미디어 종합 업체로 변신해 2005년 매출 70조원, 이익률 12%의 세계 3대 종합 전자업체로 발돋움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올해 50주년 기념식은 40주년은 물론, 30주년 기념식보다 더 '조촐하게' 치러지게 되는 셈이다. 이처럼 삼성전자가 조용하게 '지천명'을 맞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삼성전자 수뇌부가 연루된 재판이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길어지면서 삼성전자와 계열사를 포괄하는 장기 계획을 세울 수 없다는 데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삼성전자 내 사업지원TF(태스크포스)의 주요 임원들이 대거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사실상 사업지원TF가 와해되다시피 한 게 대표적이다. 사업지원TF는 과거 미래전략실의 후신(後身)격 역할을 하는 조직이다. 검찰은 지난 28일 재판에서 사업지원TF 소속 임원 여러 명에게 징역 1~4년을 구형(판사에게 형량을 요구하는 것)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뇌물공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데,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결정을 내리면서 2017년 초 이후 만 3년에 가깝게 '리걸 리스크'를 겪게됐다. 파기환송심은 지난 26일에 처음으로 열렸다. 이 밖에도 이명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다스(DAS) 소송비용 대납', 삼성전자 노조 와해 시도 등과 관련된 재판도 계속되고 있다. 결국 삼성전자와 계열사를 아우를 의사결정을 내릴 사람이 증발하면서, 현재 삼성전자와 그 계열사는 현재 사업을 하던 대로 계속하는 '각자도생'만 유일한 선택지로 남아있게 된 셈이다.
IT업황 악화도 기념식 규모가 축소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삼성전자는 31일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이 7조78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5.7% 줄었다고 발표했다. 매출은 62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3% 감소했다. 실적 악화는 지난해까지 폭발적으로 늘었던 반도체 수요가 급감하면서 판매 단가가 떨어졌고, 스마트폰 사업도 시장 성숙과 경쟁 격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주요 원인이다. 통상 이렇게 주된 사업이 흔들릴 경우 최고경영자가 과감한 사업 조정과 신사업 투자 내지는 M&A(인수합병) 방침을 발표한다. 그런데 이재용 부회장 이하 주요 임원들이 모두 '리걸리스크'에 시달리게 되면서,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창립 50주년을 그저 조용히 넘어갈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