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이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에 따른 경영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사실상 전기요금을 인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한국전력의 자체 신용 등급을 'BBB'에서 'BBB-'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이는 투자 적격 등급 10개 중 가장 낮은 등급이다. 탈원전 정책으로 시작된 한전의 경영 위기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한계에 처했다는 의미다. 한전은 공기업이어서 공식 신용 등급은 국가 신용도와 동일한 'AA'를 유지했지만 국내뿐만 아니라 뉴욕 증시에도 상장된 기업이어서 글로벌 투자자의 가치평가는 하락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종갑 한전 사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정부 정책에 따라 도입된 1조1000억원대의 각종 전기료 특례 할인을 모두 폐지하고, 전기요금의 원가를 공개하는 방안 등을 정부와 협의를 거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9일 한전에 따르면 김 사장은 인터뷰에서 "새로운 특례 할인은 원칙적으로 도입하지 않을 것이고, 현재 운영 중인 한시적 특례 제도는 모두 일몰(日沒)시키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전기료 특례 할인은 필수 사용량 보장 공제, 여름철 누진제 할인, 주택용 절전 할인, 에너지저장장치(ESS) 충전 할인, 신재생 에너지 할인, 전기차 충전 할인 등으로 작년 한 해 1조1434억원이 한전 비용으로 전가됐다.

한전이 전기료 특례 할인을 폐지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의 전기료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전기료 인상은 없다"고 공언해 왔으나, 한전의 반발이 임계치에 도달한 것이다. 수조원대 영업이익을 내던 한전은 탈원전 정책이 시작된 2017년 4분기 1294억원 적자로 돌아선 뒤, 작년에 2080억원, 올 상반기 9285억원의 적자를 냈다. 국내 소액 주주들은 지난 7월 여름철 주택용 전기료 할인 등을 결정한 김 사장을 업무상 배임(背任)죄로, 문재인 대통령과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강요죄로 검찰에 고발했다.

김종갑〈사진〉 사장은 작년 7월 "두부(전기)가 콩(석탄·LNG)보다 싸졌다"고 발언하는 등 그동안 전기료 인상 필요성을 줄곧 주장해왔다. 정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내년 총선이 끝나면 정부가 전기료 인상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김 사장은 "물가 상황을 봐서 전기요금을 조정하면 되는데 지금은 언제 할지 모르는 깜깜이로 가고 있어 문제"라고 했다. 이미 한전은 올 상반기 에너지경제연구원에 용역을 의뢰, 자체 전기요금 개편안을 마련해왔다. 한전은 "11월 말까지 자체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을 마련, 내년 상반기까지 정부와 협의를 거쳐 최종안을 확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사장은 인터뷰에서 "산업용 경부하 요금(심야시간대 할인 요금)과 농업용 할인 요금 조정은 여야 모두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가장 먼저 개편할 것"이라고 했다.

김 사장은 전기요금 개편 추진 과정에 정부와 이견이 있다는 점도 밝혔다. 그는 "한전에도 좋고 정부에도 폐를 안 끼치는 수준을 고민한다"며 "그 수준을 넘어서는 정부의 요청에는 어렵다고 얘기한다"고 했다.

김 사장은 정부가 사실상 막아온 전기요금의 용도별 원가 공개도 추진키로 했다. 그는 "현재 총괄원가만 공개하던 것에서 주택용·산업용 등 용도별로 원가를 공개하는 방안을 정부와 협의 중"이라며 "현재 주택용 전기료는 원가의 70%, 농업용은 30%, 산업용은 원가에 거의 근접한 수준이며, 원가와 같은 수준은 일반용(상업용) 요금뿐"이라고 했다. 이어 "야단을 맞더라도 (원가를)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상점 등에서 내는 전기료만 원가 수준이고, 주택용과 농업용 전기요금은 원가에 크게 못 미쳐 한전이 전기를 팔수록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한전의 비용 부담에 대해서도 불만을 내비쳤다. 그는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 제도(RPS)와 배출권 비용 등이 2016년 5조원에서 올해는 8조원으로 늘었다"며 "외국과 달리 한전은 소비자가격을 올리지 못하니 문제"라고 했다.

김 사장의 인터뷰 내용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정부와 협의된 사안은 아니다"라며 "전반적인 요금체계 개편의 틀 내에서 논의할 문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