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사의 '해양 플랜트 악몽'이 재연됐다. 해양 플랜트는 2010년 이후 고유가 시대에 한국 조선 업계를 먹여 살릴 효자로 꼽혔지만, 건조 과정에 잦은 설계 변경, 공정 관리 실패로 비용이 눈덩이처럼 늘고 유가 폭락으로 천문학적 부실을 안겨준 주범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은 이달 초 노르웨이 시추 회사 노던드릴링의 자회사인 웨스트코발트와 맺은 드릴십 1척에 대한 매매 계약 취소를 통보받았다. 드릴십〈사진〉은 깊은 수심의 해역에서 원유·가스 시추 작업을 할 수 있는 선박 형태의 설비다. 노던드릴링은 "대우조선의 계약 위반을 포함한 여러 이유 때문에 계약을 취소했다"며 "손해에 따른 배상을 청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우조선은 지난 2013년 미국의 밴티지(Vantage)드릴링으로부터 드릴십을 수주했지만, 대금을 받지 못해 2015년 계약을 해지했다. 이후 노던드릴링에 3억5000만달러(4100억원)에 매각하기로 했다. 2021년 1분기 인도할 예정이었지만 노던드릴링이 갑자기 계약 취소를 선언한 것이다. 대우조선은 노던드릴링이 발주한 또 다른 드릴십 2척과 미국의 엔스코(ENSCO)가 발주한 드릴십 2척도 건조 중이다. 대우조선은 2013년 수주한 앙골라 국영 석유회사 소난골의 드릴십 2척을 수년 늦은 올 상반기에 잔금을 받고 인도했다.
삼성중공업도 지난 23일 "오션리그가 발주해 건조 중인 드릴십 2척에 대해 선주사가 계약 이행 포기 의사를 밝혔다"고 공시했다. 삼성중공업은 2013~2014년 14억3000만달러 규모의 드릴십 2척을 수주했고, 올해와 내년 인도 예정이었다. 회사 측은 "선주사의 계약 해지를 받아들일 경우, 선박 소유권과 이미 받은 대금 포기 등 보상 범위에 대해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삼성중공업은 오션리그로부터 선수금으로 5억2000만달러를 받았다. 계약이 해지되면 남은 9억1000만달러는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다. 삼성중공업은 미국 퍼시픽드릴링(PDC), 노르웨이 시드릴(Seadrill)에서 수주한 드릴십 3척도 계약이 취소된 상태다. 다른 선주에게 매각을 추진 중이다.
드릴십 계약 포기가 잇따르는 것은 저유가 탓이다. 육상 유전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비용이 많이 드는 해양 시추는 유가가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수익이 나는 구조다. 하지만 미·중 무역전쟁 등 여파로 세계 경기 회복이 더디면서 예상과 달리 유가가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2015년 80%에 육박하던 드릴십 가동률은 꾸준히 하락했고, 작년 하반기 반등 조짐을 보이더니 9월말 현재 60% 아래로 떨어진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계약이 취소되더라도 드릴십을 완성해 제삼자에게 매각하면 큰 손실은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유가 하락 등으로 드릴십 매각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