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장충동 현대BS&C 사옥 앞에는 최근 아담한 회색의 경비실 건물 한 채가 들어섰다. 겉보기엔 일반 경비실과 다를 바 없지만, 사실은 스타트업 '코로나'가 이 회사의 건축용 3D(3차원) 프린터로 완성한 국내 '1호' 3D프린팅 건축물이다.
넓이 10㎡(약 3평), 높이 2.2m의 이 경비실을 만드는 데 쓴 시간은 단 14시간. 거푸집을 짓고 해체하는 복잡한 과정이 필요한 전통적 건축 방식과 달리, 3D 프린터가 입력된 설계도대로 고분자 화합물이 섞인 특수 콘크리트를 착착 뿜어 구조물을 올렸다.
공사 시간이 크게 절약됐을 뿐 아니라, 공사비도 전통 방식의 10분의 1 수준으로 절감했다.
'3D프린팅 건축'은 인구 증가로 주택난이 예상되는 미래 사회에서 비싼 전통 건축물의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미국·유럽·중국 등에서 다양한 스타트업과 건설사들이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올해 300만달러(약 35억원) 수준인 글로벌 3D 프린팅 건축 시장은 2024년엔 15억7500만달러(약 1조8400억원)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국내에서는 건설기술연구원이 서울대·연세대 등 16개 기관과 함께 관련 기술을 연구하고 있고, 현대 BS&C는 지난 8일 스타트업 코로나를 인수하며 3D 프린팅 건축 시장에 진출했다.
◇주택난·노숙자 문제의 해결책으로
해외에선 이미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3D 프린팅 주택이 속속 지어지고 있다.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시에는 2023년까지 세계 최초의 상업용 3D 프린팅 주택 단지가 건설될 예정이다. 테오 살럿 에인트호번공대 교수팀은 건축설계사무소 판베이언과 함께 지난 6월 이 도시의 친환경 신도시 개발지구인 보스레이크에 1~3층 규모의 3D 프린팅 주택 5채를 지어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임대주택단지로 운영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들이 공개한 조감도에는 매끈한 곡면으로 이뤄진 바위처럼 생긴 집 5채가 보인다. 일반 건축물과 다르게 모서리가 둥글고, 벽면이 완만한 곡선이다. 지금까지 이런 모양의 집은 각 부분을 거푸집으로 만들어 이어 붙여야 하는 등,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어 기피됐었다. 하지만 3D 프린터를 이용하면 곡선을 따라 콘크리트 액체를 정교하게 쌓아 올릴 수 있어 아무리 복잡한 구조의 벽면도 쉽게 만들 수 있게 된다.
프랑스 낭트(Nantes)시의 람다니씨 부부는 지난해 6월부터 세 딸과 함께 낭트 대학의 3D 프린팅 기술로 지어진 단독 주택 '이누바'에 거주하고 있다. 부드럽게 휜 'Y'자를 닮은 하얀색 주택의 면적은 총 95㎡. 짓는 데는 단 이틀이 걸렸다. 3D 프린터가 건축 현장에서 4m 길이의 로봇팔을 움직이며 설계도면대로 벽면을 쌓아 올리고, 사람이 나서서 창호와 지붕 작업을 마무리했다. 건축 비용은 전통 방식보다 20%가량 절감됐다. 낭트대는 프랑스 북부에도 비슷한 공공주택 18채를 더 지을 계획이다.
3D 프린팅 주택은 '홈리스'의 거주 문제 해결책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시의회는 지난 9월 3D 프린터로 노숙자를 위한 미니 주택을 건설하는 계획을 공개했다. 허브 웨스 LA시의장은 "주택을 짓는 비용을 절감하는 측면에선 3D 프린터를 이용하는 게 최선"이라며 "초대형 3D 프린터를 구입하는 데 개인 소득이 100만달러 이상인 고소득층의 세금을 투입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미국의 3D 프린팅 건축업체인 '아이콘'은 이미 지난 9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시에서 노숙자를 위해 만든 '웰컴센터' 건물을 공개했다. 이 회사가 제작한 대형 크레인 모양의 3D 프린터 '벌컨(Vulcan)'으로 지은 이 건물은 46㎡ 크기로, 제작에는 27시간이 걸렸다.
앞으로 이 부지에는 480명의 노숙자를 수용할 수 있는 주택단지가 세워질 예정이다. 이 업체는 4000달러(약 430만원) 안팎의 건축비로 빈민층도 감당할 수 있는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목표다. 이들은 스타트업 '뉴스토리'와 함께 멕시코·아이티·엘살바도르 등 남미 빈곤 지역에도 저렴한 3D 프린팅 주택 800여채를 짓고 있다.
◇3D 프린팅 건축, 아직은 한계도 분명
하지만 3D 프린팅 건축 기술은 아직 한계가 명확하다.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을 수용해야 하는 도시에서 주택난을 해결하려면 고층 아파트 같은 건물이 필수다. 하지만 높은 주택을 짓기 위해서는 현재보다 훨씬 큰 초대형 3D 프린터 장비가 필요하다.
예컨대 20층짜리 아파트를 지으려면 20층 높이에서 콘크리트 액체를 뿜는 작업을 할 수 있는 3D 프린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업계에서는 "3D 프린팅 건축은 사실상 5층 안팎이 한계"라고 지적한다. 중국 장쑤성에는 건설업체 '윈선'이 지난 2015년 3D 프린팅 기술로 6일 만에 제작한 5층짜리 아파트가 있지만, 실제로 이 건물에서 거주하는 사람은 없다.
건축업계 관계자는 "대형 건축용 3D 프린터를 이동시키는 것부터 문제인 데다, 이런 공법으로 집을 높게 쌓았을 때 이 건축물이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다"며 "3D 프린팅 주택이 정말 건축 시장을 바꾸려면 좀 더 장기적으로 자세한 연구 성과가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