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사채(CB)는 만기까지 보유하면 애초 약정한 이율을 지급하는 사채(채권)이지만, 주가가 오르면 주식으로 전환해 차익을 낼 수도 있는 상품이다. 주가가 떨어져도 주식 전환가를 최대 70%까지 조정(리픽싱)할 수 있어 설령 주가가 반토막 나도 주식 매매 차익을 꾀할 수 있다. 전환가가 낮아질수록 발행 규모는 늘어나기 때문에 기존 주주들만 손해를 보는 구조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이런 구조의 상품이 없다. 미국의 CB는 리픽싱이 없고, 심지어 전환가는 주가보다 높다. 사채로서 안정성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전환가가 주가보다 높아야 한다는 이유다. 설명을 듣다 보면 우리나라만 왜 이런 것인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자도 받고 매매 차익도 노릴 수 있는 CB에 대한 투자 열기가 불면서 자금 쏠림 현상이 발생했다. 2015년부터 잇따라 출범한 사모전문 운용사는 대부분 메자닌(채권과 주식의 중간 단계에 있는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을 취급하면서 덩치를 불렸다. 지난해 나온 정부 주도의 코스닥벤처펀드는 수급을 더욱 왜곡시켰다. 2015년 3조2139억원이었던 CB 발행 규모는 작년에 5조3398억원까지 늘어났다. 멀쩡히 돌아가는 기업은 대부분 사채이율이 0%다. 너도 나도 우리회사한테 제발 CB를 넘겨달라고 하면서 과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돈이 왕창 몰리면서 원래는 CB 발행이 안 됐을 기업도 자금 조달이 가능해졌다. 이른바 'M&A 선수들' 사이에서는 "CB만 찍으면 원금을 회수할 수 있으니까 기업 재무제표가 나쁜 코스닥기업을 인수해도 된다"는 풍토마저 생겼다고 한다. 최근 구속된 상장사 L사 대표이사 또한 일단 껍데기 회사를 인수한 뒤, 한 운용사를 대상으로 CB를 발행하고 이 자금을 횡령해 붙잡혔다.
이런 분위기이다 보니 메자닌에 주로 투자해 회사를 키워온 헤지펀드 1위업체 라임자산운용 사태는 진즉부터 예고됐던 것이나 다름없다. 라임운용의 펀드는 무려 1조3000억원이나 최대 5년간 상환되지 못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올해 들어 코스닥 시장이 부진했고, 이 때문에 라임운용이 인수한 CB는 평가손실이 발생했다. 주가가 80% 넘게 떨어진 기업이 있을 정도다. 이런 판국이니 지금 환매하려고 매도했다가는 손실이 확정된다. 라임운용은 손절매하는 것보다 그냥 만기까지 들고 가자고 투자자들을 설득했다.
CB는 만기까지 보유하면 사채처럼 상환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잘 설득되지 않자 금융당국과 조율해 환매 중단을 선언해버렸다. 만기까지 들고 간다면 정상 상환될 것이라는 게 라임자산운용의 입장이다.
하지만 여기엔 한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그 기업들이 만기 때 투자금을 상환하거나 재발행이 가능해야 한다. 벌써부터 메자닌 전문 운용사들 사이에선 자금이 마르고 있다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묻지마 CB 파티'를 너무 오랜 기간 방치하고 있던 데서 출발했다. 고통은 조금 있겠지만, 지금이라도 CB 제도를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 유동성 위기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차일피일 미뤄봐야 폭탄이 터지는 시점을 뒤로 늦출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