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될 때 크게 이득을 봤던 파트너(증권사)들이 우리가 어려워지니까 등을 돌립니다."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서 열린 국내 사모(私募) 헤지펀드 1위 라임자산운용의 기자간담회장에서 이 회사 최고투자책임자(CIO)인 이종필 부사장은 짧은 사과 후 곧장 업계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했다. 1조3000억원이 넘는 고객 자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할 위기에 처한 운용사 책임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업계에서도 "사석에서나 할 법한 푸념을 기자간담회에서 쏟아냈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 부사장의 불만 가득한 표정을 보는데 문득 요즘 겪은 몇몇 장면이 떠올랐다. 모두 증권사 관계자들과의 만남이었고, 모든 자리의 대화 주제에 최근 업계에서 터진 사건·사고가 포함됐다. 라임 사태는 물론 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S·DLF) 손실, 유령채권 논란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런데 각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회사에 속한 이들의 입에서는 "운용 쪽에서 잘 알아봤어야지" "걔가 혼자 오바하다가 그 사달이 난 거야" "당신네 회사는 물린 게 적어서 부럽다" 등의 말만 나왔다. 어디에도 자성(自省)의 목소리는 없었다.

금융투자업계의 남 탓 분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운용사는 판매사를 탓하고, 판매사는 책임을 운용사로 돌린다. 여러 금융투자사가 모이면 누가 가장 더러운 똥을 밟았는지 따지면서 손해 순위를 매기고, 자기 회사 사고에 대해서는 직원 개인의 돌출행동으로 깎아내린다. 그러면서도 정부 규제와 그에 따른 애로사항을 말할 때는 일사불란한 조직력과 단합을 과시한다.

한국 자본시장에서는 올해도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쉴 새 없이 터졌다. KB증권이 판매한 호주 부동산펀드는 현지 투자자의 대출약정 위반으로 자금 회수에 문제가 생겼고, 신한금융투자도 DLS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해 만기를 연장했다. 미래에셋대우는 전산장애로 고객 불만을 야기했고, 한국투자증권은 실제 보유 물량의 1000배에 달하는 채권 매도 주문 실수를 했다. 지난해 삼성증권과 유진투자증권의 유령주식 사태가 채권 버전으로 재현될 뻔했다. 은행권에서는 DLF 손실 사태로 대형 시중은행이 신뢰도에 치명상을 입었다.

어떤 종류의 금융 사고라도 해당 서비스나 상품을 설계했거나 팔았거나 관리했다면 그들은 모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해당 금융회사를 믿고 찾은 고객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건·사고가 터졌을때 "우리가 잘못했다"는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반성이 실종된 자본시장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